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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외국희곡
· ISBN : 9788952762665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1막
2막 1장
2장
3막
4막
해설 | 피와 눈물로 쓴 슬픈 생애의 여로
유진 오닐 연보
리뷰
책속에서
에드먼드: 전 안개가 좋아요. 안개 속을 걷고 싶었어요. (표정과 목소리에서 좀 더 취기가 도는 기색이 엿보인다.)
타이론: 좀 더 분별 있게 행동해야지. 괜히 위험하게…….
에드먼드: 분별 따위는 엿 먹으라 그러세요! 다들 미쳐 돌아가는 판에 분별 있어서 뭐하게요? (조소 어린 투로 다우슨의 시를 낭송한다.)
“울음과 웃음,
사랑과 욕망과 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가 그 문을 지나고 나면
그것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리니.
술과 장미의 나날들은 오래가지 않으리.
우리의 길은
아스라한 꿈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꿈속에서 끝나리니.”
(무대 전면을 응시하며)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 길을 반쯤만 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아요. 이 집이 여기 있다는 것도 알 수 없게 되죠. 마을 길가에 있는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예요. 바로 코앞의 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가는 길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요. 모든 게 다 비현실적인 것들처럼 보이고 들렸어요. 실체는 하나도 없었죠. 제가 원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요. 진실이 진실이 아니고 삶이 저 자신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속에 홀로 있는 것. 항구 저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난 곳에 이르렀을 때는 땅바닥을 밟고 있다는 느낌조차도 사라졌어요. 안개와 바다는 한 몸인 것 같았죠. 그건 마치 심해 밑바닥을 걷는 것과 흡사한 기분이었어요. 마치 오래전에 익사한 것 같은 느낌. 저는 안개에 속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 같은……. 유령 속의 유령이 되니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편안하더라고요. (아버지가 걱정을 하면서도 마뜩잖은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조롱하듯 히죽이 웃으며) 미친놈 보듯이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온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우리네 삶은 고르곤 셋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나 같아요.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버린다는 그 괴물들 말이에요. 아니면 판 신 같죠. 판을 보면 우린 죽어요, 우리 안의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유령으로 살아가게 되죠.
타이론: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마뜩잖아 하면서) 너는 시인 기질이 다분하긴 하지만 병적인 냄새가 너무 짙어! (억지로 미소 지으며) 고약한 염세주의지.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저조하구먼. (한숨을 쉰다.) 그런 삼류 시들은 집어치우고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나 외우렴. 그 대사들 속에서는 네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찾아낼 수 있으니까. 근사한 잠언들은 거기 다 있어. (낭랑한 목소리를 구사해서 낭송한다.) “우리는 꿈같은 존재요, 우리네 짧은 생애는 잠으로 마무리되리니.”
에드먼드: (빈정대며) 근사해요! 아름다워요. 하지만 제가 말하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에요. 우리는 똥 같은 존재들이니 실컷 퍼마시고 다 잊어버리자. 이게 제 생각에 더 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