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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예루살렘 전기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은이), 유달승 (옮긴이)
  |  
시공사
2012-05-30
  |  
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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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미지

예루살렘 전기

책 정보

· 제목 : 예루살렘 전기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서남아시아사
· ISBN : 9788952765505
· 쪽수 : 964쪽

책 소개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그곳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단순히 종교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며 목적론적 서술로 모든 역사가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옮긴이의 글

프롤로그 _ 예루살렘의 새벽

제1부 유대교
1장 다윗의 세계
2장 작은 자의 큰 성공
3장 왕국과 성전
4장 유다의 왕들
5장 바빌론의 창녀
6장 페르시아인들
7장 마케도니아인들
8장 마카베오 가문
9장 로마의 등장
10장 헤롯 왕조
11장 예수 그리스도
12장 헤롯 왕조의 최후
13장 예루살렘의 죽음

제2부 이교
14장 계속되는 유대전쟁

제3부 그리스도교
15장 비잔티움의 전성기
16장 비잔틴의 쇠퇴

제4부 이슬람
17장 아랍의 정복이 시작되다
18장 우마이야조, 성전의 회복
19장 압바스조, 원거리 군주들
20장 파티마조, 관용과 광기

제5부 십자군
21장 순례의 길을 떠난 군사들
22장 우트르메르의 부흥
23장 우트르메르의 황금시대
24장 교착상태
25장 문둥이 왕의 용기
26장 살라딘 이야기
27장 제3차 십자군
28장 살라딘 왕조

제6부 맘루크조
29장 술탄의 노예
30장 맘루크조의 쇠퇴

제7부 오토만제국
31장 술레이만
32장 신화와 메시아
33장 가문들

제8부 제국
34장 예루살렘의 나폴레옹
35장 신낭만주의
36장 알바니아 정복
37장 복음주의자들
38장 새로운 도시
39장 새로운 종교
40장 아랍 도시, 제국 도시
41장 러시아

제9부 시온주의
42장 시온,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43장 예루살렘의 우드 연주자
44장 세계전쟁
45장 밸푸어 선언
46장 크리스마스 선물
47장 승전국들과 전리품
48장 영국의 위임통치
49장 아랍의 반란
50장 더러운 전쟁
51장 유대의 독립, 아랍의 재앙
52장 종파의 분열
53장 6일 전쟁, 역전과 상실

에필로그 _ 예루살렘의 아침

부록(가계도, 지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5년에 태어났으며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곤빌앤카이어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저서로 새뮤얼 존슨상, 더프 쿠퍼상, 마시 전기상의 최종 후보작이었던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템킨》, 영국출판대상에서 올해의 역사책상을 수상한 《스탈린: 붉은 차르의 궁정》, 소설 《사셴카》 등이 있으며, 국내 출판된 책으로 《예루살렘 전기》가 있다. 《젊은 스탈린: 강철 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은 영국에서 코스타 전기문학상, 미국에서 <LA 타임스> 북프라이스의 전기문학상, 프랑스에서 정치인 전기 그랑프리, 오스트리아에서 크라이스키 정치저술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10여 년에 걸쳐 23개 도시와 9개국에서 여러 목격자와 증인, 새로 공개된 기록보관소를 통해 진행한 연구와 조사의 산물이다. 몬티피오리의 책들은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영국 왕립문학협회의 회원이기도 한 그는 아내인 산타 몬티피오리와 두 자녀와 함께 런던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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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 비친 이슬람 혁명을 보면서 ‘이란’이라는 국가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다른 길을 걷는 이란인들의 삶과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또한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전공하면 자리 잡기도 쉬울 것 같고 할 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 이란학을 전공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동정치를 공부한 후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서 외국인이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1999~2000년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초빙학자Visiting Scholar로 활동했고 2019~2020년에는 이란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교환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 《중동은 불타고 있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예루살렘 전기》(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중동의 비극》(배리 루빈 지음),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로버트 스펜서 지음), 《팔레스타인/이스라엘》(마르완 비샤라 지음) 등이 있다. 또한 ‘이란의 정치문화와 정치발전’을 주제로 영국에서 《The Role of Political Culture in Iranian Political Development》를 출간하고 이란에서 《Farhang-e Siyasi va Touse’e-ye Siyasi》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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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성전의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결정적이자 사사로운 면도 있고 생태적이자 진화적인 면도 있다. 즉 그 도시가 그만큼 오랫동안 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성스러움에는 영성과 신앙뿐 아니라 합법성과 전통도 요구된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급진적인 예언자는 이전 수 세기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용인된 거룩함의 언어(앞서 계시를 내렸던 예언자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해 이미 오랫동안 신성시되어온 장소에서 자신의 계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 들어가는 글 p.12


3세기 동안 지속된 새로운 ‘암흑기’에 히브리인들은 유일신을 숭배하며 좁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기이하고 작은 민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세계의 창조, 자신들의 기원 그리고 그들과 신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나 있다. 그들은 그 구전 기록들을 대물림했으며, 이후 신성한 히브리 문자로 기록했다. 그것이 훗날 펜타튜크Pentateuch, 즉 모세5경(구약 성서 맨 앞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 《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성서는 이 세상 최고의 책이 되었지만 하나의 문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에 알려지지 않은 필자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편집한, 뒤얽힌 텍스트들의 신비로운 도서관이다. - 제1부 유대교 pp.57~58


당시에는 그가 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건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어머니 헬레나를 숭배했는데, 헬레나는 초기 그리스도교 개종자였다. 그의 개인적 개종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바울의 개종만큼이나 극적이었다면 그의 정치적인 그리스도교 수용은 점진적이었다. … 그러나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콘스탄티누스의 개인적 변덕에 따른 것이었다. 312년 당시에는 마니교Manichaenism와 미트라교Mithraism가 그리스도교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중에 한 가지를 쉽게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유럽은 오늘날 마니교나 미트라교 국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 제3부 그리스도교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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