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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서남아시아사
· ISBN : 9788952765505
· 쪽수 : 964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옮긴이의 글
프롤로그 _ 예루살렘의 새벽
제1부 유대교
1장 다윗의 세계
2장 작은 자의 큰 성공
3장 왕국과 성전
4장 유다의 왕들
5장 바빌론의 창녀
6장 페르시아인들
7장 마케도니아인들
8장 마카베오 가문
9장 로마의 등장
10장 헤롯 왕조
11장 예수 그리스도
12장 헤롯 왕조의 최후
13장 예루살렘의 죽음
제2부 이교
14장 계속되는 유대전쟁
제3부 그리스도교
15장 비잔티움의 전성기
16장 비잔틴의 쇠퇴
제4부 이슬람
17장 아랍의 정복이 시작되다
18장 우마이야조, 성전의 회복
19장 압바스조, 원거리 군주들
20장 파티마조, 관용과 광기
제5부 십자군
21장 순례의 길을 떠난 군사들
22장 우트르메르의 부흥
23장 우트르메르의 황금시대
24장 교착상태
25장 문둥이 왕의 용기
26장 살라딘 이야기
27장 제3차 십자군
28장 살라딘 왕조
제6부 맘루크조
29장 술탄의 노예
30장 맘루크조의 쇠퇴
제7부 오토만제국
31장 술레이만
32장 신화와 메시아
33장 가문들
제8부 제국
34장 예루살렘의 나폴레옹
35장 신낭만주의
36장 알바니아 정복
37장 복음주의자들
38장 새로운 도시
39장 새로운 종교
40장 아랍 도시, 제국 도시
41장 러시아
제9부 시온주의
42장 시온,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43장 예루살렘의 우드 연주자
44장 세계전쟁
45장 밸푸어 선언
46장 크리스마스 선물
47장 승전국들과 전리품
48장 영국의 위임통치
49장 아랍의 반란
50장 더러운 전쟁
51장 유대의 독립, 아랍의 재앙
52장 종파의 분열
53장 6일 전쟁, 역전과 상실
에필로그 _ 예루살렘의 아침
부록(가계도, 지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성전의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결정적이자 사사로운 면도 있고 생태적이자 진화적인 면도 있다. 즉 그 도시가 그만큼 오랫동안 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성스러움에는 영성과 신앙뿐 아니라 합법성과 전통도 요구된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급진적인 예언자는 이전 수 세기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용인된 거룩함의 언어(앞서 계시를 내렸던 예언자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해 이미 오랫동안 신성시되어온 장소에서 자신의 계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 들어가는 글 p.12
3세기 동안 지속된 새로운 ‘암흑기’에 히브리인들은 유일신을 숭배하며 좁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기이하고 작은 민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세계의 창조, 자신들의 기원 그리고 그들과 신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나 있다. 그들은 그 구전 기록들을 대물림했으며, 이후 신성한 히브리 문자로 기록했다. 그것이 훗날 펜타튜크Pentateuch, 즉 모세5경(구약 성서 맨 앞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 《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성서는 이 세상 최고의 책이 되었지만 하나의 문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에 알려지지 않은 필자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편집한, 뒤얽힌 텍스트들의 신비로운 도서관이다. - 제1부 유대교 pp.57~58
당시에는 그가 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건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어머니 헬레나를 숭배했는데, 헬레나는 초기 그리스도교 개종자였다. 그의 개인적 개종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바울의 개종만큼이나 극적이었다면 그의 정치적인 그리스도교 수용은 점진적이었다. … 그러나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콘스탄티누스의 개인적 변덕에 따른 것이었다. 312년 당시에는 마니교Manichaenism와 미트라교Mithraism가 그리스도교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중에 한 가지를 쉽게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유럽은 오늘날 마니교나 미트라교 국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 제3부 그리스도교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