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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52767363
· 쪽수 : 39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
로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윽고 차분하게 물었다.
“이거 봐, 내 이야기를 믿기는 해?”
“당신 이야기라뇨?”
“내가 누군지, 내가 클레어란 마을 출신이고 그곳에 자네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는 내 말 믿어? 그건 믿겠어? 아니면 내가 그저 자네를 집으로 끌어들이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아뇨,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믿어요.”
“최소한 그건 다행이로군.”
로딩은 한쪽 눈썹을 치올리며 말했다.
“내 외모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알지만 내가 만약 그렇게 탐욕스러운 인상을 준다면 충격이 클 거야. 어쨌든 그럼 그건 됐고, 자네가 애시비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내 말은 믿어?”
술잔을 한 바퀴 빙 돌리도록 대답이 없었다.
“글쎄요.”
“왜지?”
“당신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을 본 지 한참 된 것 같던데요.”
“애시비가 되란 말이 아니야. 그냥 그 친구 비슷하게 보이기만 하면 돼. 정말 닮았다니까! 정말 얼마나 똑같이 생겼는지 몰라.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었으면 안 믿었을 거야. 이런 일은 책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자네한테 한 재산 가져다줄 거라고. 자네는 그냥 손을 내밀어서 갖기만 하면 돼.”
“오, 그건 아니죠.”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그거 모르겠어? 대략 첫 해만 제외하면 자네 이야기가 곧 진실이야. 그냥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아무리 확인해도 문제없지.”
로딩의 어조가 장난기를 띠었다.
“아니면 혹시 있는 건가?”
“아닙니다. 그건 틀림없어요.”
“그럼 됐고. 자네는 디에프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대신, 아이라 존스호를 몰래 타고 웨스트오버를 떠나기만 하면 돼.”
“그 무렵 웨스트오버에 아이라 존스란 배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알죠?”
“‘그 무렵’이라고? 나한테 너무 인색하군, 친구. 그 애가 실종된 바로 그날, 웨스트오버에 그 불쾌한 이름의 배가 있었어. 그날 거의 종일 그 배를 그리고 있었으니 내가 알아. 그림을 그렸다는 뜻으로. 내가 다 그리기도 전에 떠나더군. 채널 제도로 가는 화물선이었어. 내가 그리는 배들은 왜 늘 그림을 다 마치기 전에 떠나는지 몰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패러, 자네 무릎 위에 놓여 있는 거나 다름없어.”
“놓여 있는 건 제 냅킨이죠.”
“한 재산이라고. 근사한 토지에, 보장, 그리고…….”
“지금 ‘보장’이라고 했습니까?”
“물론 처음엔 도박을 해야지.”
로딩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를 얼핏 바라본, 색이 옅은 눈에 재미있어 하는 빛이 스쳤다.
“로딩 씨한테 도박이란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나?”
“로딩 씨는 지금 저한테 배신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전 로딩 씨의 가르침을 받아 시험에 합격하고 로딩 씨를 잊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래도 로딩 씨는 어떻게 할 길이 없죠. 이보다 더 쉬운 배신이 있을까요? 대체 어떻게 절 감시할 생각이셨죠?”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애시비가의 외모를 가진 사람은 배신자일 리 없거든. 애시비가 사람들은 무시무시하게 청렴결백한 인간들이라고.”
청년은 맥주잔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사기꾼이 된다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입니다. 점심 잘 먹었습니다, 로딩 씨. 무슨 일로 절 점심에 초대하셨는지 제가 알았다면 아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