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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52768988
· 쪽수 : 52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생이 ‘잡년 조련사’의 상담자 톰 스탱스?”
그의 약간 쉰 듯한 목소리는 온화하면서도 묵직했다. 나와 똑같은 퀸즈 지역 말투였다. 난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면회실을 향했다. 목에는 클레어가 정성스럽게 고른 딱 맞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뒤쪽에서 교도관이 문을 쾅 하고 닫는 바람에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면회실에는 면회객과 죄수를 갈라놓는 쇠창살이나 삐걱거리는 문도 없었고 작은 유리창이 달린 보통 문뿐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감방이 아니라 칙칙한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놓인 시멘트 방에 있었다.
“사실 내 성은 블로흐입니다. 이름은 해리고요.”
“아, 그렇지. 나는 자꾸 까먹는다니까. 나는 대리언이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자 대리언은 껄껄 웃었다.
“꽤 오랜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말을 들어보는군.”
대리언은 양 팔을 들어 올려 수갑을 보여줬다.
“앉아요.”
나는 손을 뻗어 의자를 잡아당겼지만, 의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못질이 되어 있지. 날 포함해서 몽땅 다.”
“그렇군요.”
난 고정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 선생이 상상했던 것처럼 보이나?”
나는 무관심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점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사실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건 수많은 작가가 조만간 마주쳐야 할 당연한 의문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미치광이는 정확히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자신의 살덩어리에 갇혀 허우적거렸던 늙고 추악한 사드 후작처럼 뚱뚱한 괴물로 만들어야 하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쭈글쭈글한 괴물? 데이비드 린치가 그렇게 아꼈던 사악한 난장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이상한 안경을 쓴 채 거대한 스위치를 확 잡아당기는 미친 과학자? 드라큘라나 루시퍼에서 한니발 렉터까지 이어져 온, 단정한 얼굴에 온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악마적인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람? 아니면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범죄자?
하지만 진정한 사이코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더 깊은 딜레마를 덮기 위한 잔재주일 뿐이다. 사악함은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울에 본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책을 출근 기차 안에서 읽는다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많은 승객들 중 누가 거짓말쟁이고, 간통을 저질렀으며, 도둑질을 한 사람일까? 방화범이나 사이코패스,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먹는 놈은? 승객들 중 누구라도 그런 악당이 될 수 있다. 마땅한 이유가 없는데도 끔찍한 일을 저지른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이런 평범한 진리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일부러 돈을 주고 사서 보지 않는다. 적어도 양장본보다는 좀 저렴하지만 포켓북보다는 좀 더 비싼 대형 페이퍼백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소설은 종교와 심리학 그리고 매일 전하는 뉴스가 달성하지 못한 역설적인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사람들이 사실을 믿도록 만드는 임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