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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54442329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최영희 - 누덕누덕 유니콘
이희영 - 피라온
이송현 - 스위치, ON
최양선 - 냄새로 만나
김학찬 - 고양이를 찾
김선희 - 시벨
한정영 - 돌아온 우리의 친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맙소사! 퍼슬이잖아! 저 징그러운 녀석이 여긴 왜 나타난 거지?”
“퍼슬이 뭔데?”
누군가가 되묻자 카일리는 몸을 일으킨 뒤 정글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공생동물이야. 유전자 설계로 인간이랑 짝을 지어서 태어나는 반려동물.”
공생동물이라면 우리도 아는 거였다. 공생동물 유니콘을 입양하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니까. 나와 같은 날 태어나서 나만 사랑해 주고 평생 내 곁을 지키다가 내가 죽는 날 같이 눈을 감는다는 유니콘 말이다. 하지만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녀석은 유니콘과 닮은 구석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녀석은 강가의 포식자로 알려진 뉴트리아와 닮은꼴이었다. 어디 시궁창을 누비다가 왔는지 정수리와 등은 개흙 범벅이었고 툭 튀어나온 앞니는 어린애들의 손가락 따위는 우습게 끊어 버릴 듯 위협적이었다. 그런 녀석이 절대 공생동물일 리 없었다. 똘똘하기로 소문난 카일리였지만 그때만큼은 카일리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퍼슬이 다가왔다.
네발로 5미터쯤 기어오다가 정글짐 밑에 다다르자 다시 두 발로 우뚝 섰다. 그러고는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정글짐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기겁하며 정글짐에서 뛰어내렸다. 하필 맨 꼭대기에 앉아 있던 나는 발이 묶이고 말았다. 퍼슬이 정글짐을 뱅뱅 돌며 올라오는 바람에 녀석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한 번에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덟 살짜리가 훌쩍 몸을 날리기엔 정글짐은 너무 높았다.
- 「누덕누덕 유니콘」 중에서
산책이라고 해 봤자 집 근처를 한 바퀴 돈 것이 전부였다. 송이는 내가 잘 따라오는지 습관처럼 확인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그렇게 짧은 산책을 끝낸 후 우리는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오늘 산책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기분 좋게 나들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송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녀석은 오래전, 산책 가자는 주인의 말에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향했다. 주위에는 전에 없던 생경한 냄새만이 풍겼는데, 주인은 어쩐 일로 거추장스러운 하네스마저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마음껏 달려 나가지 못했다. 주인이 따라오는지 확인했을 테니까. 결국 주인이 마지막으로 꺼내 든 것은 평소 녀석이 좋아했던 낡은 공이었다.
“가져와.”
누군가 힘껏 던진 공은 어둡고 음침한 공사장으로 날아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은 으스스한 공사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인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것도 따르던 녀석이니까. 그러나 당당하게 공을 물어 왔을 땐, 주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주인이 돌아오리라 믿으며 그곳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송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러고는 녀석의 까만 두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아.”
- 「피라온」 중에서
꼬부기는 늘 평화로웠다. 느리고 작은 동작으로 수족관 안을 기어 다니고, 먹이를 먹고, 나와 눈을 마주하고 일광욕도 즐겼다. 그 작은 생명체는 날 알아보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가끔 목을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날 찾았다.
“나, 여기 있어.”
작은 소리로 말해 주면 안심한 듯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잠들지 않는 밤이 계속됐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어둠에 완전히 몸이 스며들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는 나날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가끔, 아주 가끔 벽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벽장 안에는 그날 경기 이후 처박아 놓은 아이스하키 장비가 들어 있었다. 먼지가 쌓였겠지? 저 벽장문을 내 손으로 절대 열지 않으리라. 매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분명 나는 상처받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보호구도 날 온전히 지켜 주지 못했다. 나는 단단하지 않았다. 아직은 무르고 여린 존재…… 어쩌면 나 또한 꼬부기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몰랐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정체 모를 열기에 나는 운동화를 신었다. 야간 조깅을 하기로 했다.
“가자, 꼬북아.”
나는 꼬부기를 처음 만났던 해변을 향해 밤길을 달렸다. 가슴팍에 주머니가 달린 면 티셔츠를 입고 가슴에 꼬부기를 넣었다. 달리는 동안, 꼬부기가 기형이라는 그 작은 앞발로 내 심장을 토닥토닥 매만졌다. 우리는 함께 뛰고 있는 셈이었다.
- 「스위치, ON」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