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자연에세이
· ISBN : 9788954613019
· 쪽수 : 24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그리움들이 모여든 이야기
슈퍼울트라 고슴도치
나와 고양이의 의자
낭만적이고 맛깔스런 일
욕심 많은 노인네의 배나무밭
쉬면 되니까, 흙길
두렵도록 예쁜 수국
빨간 신호등의 안부
요강 할머니
장가든 진진이
허깨비
고라니야, 미안해
강풍
향나무집 남자
연탄 보일러
복자기 단풍나무 가지치기
기름 보일러 소리
검은 복면
진진이의 추석 쇠기
산속의 조그만 저수지
다섯 번 장가간 영수 씨
쓸데없는 생각
목수木手 강씨의 운수 없는 날
하루살이 친구
노부부의 자식
똘배나무집 노인
집 안으로 들어온 벌
통장의 포도밭
고라니와 난쟁이 유채꽃
알코올 아저씨
우주인의 훈계
진진이
‘살구’라는 이름의 강아지
밥보다 술이 좋아
도둑맞은 2만 6000원
기차역은 잘 지내는지
자라지 않는 다올이
검은휘파람새의 우주
에필로그。낮에 나온 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모과는 바람이 불어 스산한 어느 가을날 나를 불렀다. 지나가던 길손이 대문을 두드리듯 지붕 귀퉁이에 쿵! 쿵! 부딪히며 소리를 내곤 했다. 쿵! 쿵! 잊을 만하면 들려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가 ‘주인 계세요?’ 하고 나를 찾는 소리로 다가왔다. 모과는 내 집을 노크했다. 그때마다 모과는 울퉁불퉁한 상처가 생겼겠지만 나는 어느새 그 소리에 위로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가을 한낮,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한 그루 나무가 내게 관심을 보여온 것이었다. 모과나무에 깃든 절대자의 숨결이라도 좋고 정령이라도 좋았다. 나를 위해 무던히 표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것이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모과의 그리움이었다.
“채식 밥상이 이렇게 풍성하고 입맛 당길 줄은 몰랐네요!”
식사를 끝낸 밥상은 텅 빈 그릇뿐이었다. 밥 한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기에 설거지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날 하루 한 마리 가축의 살과 피를 구했고,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뱃속에 생겨나는 가스를 적게 방출시킬 수 있게 했다. 세 부부는 최고의 밥상이었다며 입이 닳도록 아내의 솜씨를 칭찬했다.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상추와 쑥갓, 깻잎과 고추를 한 봉지씩 가져갔다. 나는 그들이 들고 온 각각의 김장김치 맛을 근 일주일째 음미하며 식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김장김치는 주인의 손맛과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기에 그 맛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자기 집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또는 김치 한포기를 싸들고 오면 좋겠다. 물론 요즘 시대에 자기만의 된장과 간장을 담는 집이 흔치는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고깃덩어리를 사들고 오는 것보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맛깔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