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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붓다의 치명적 농담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은이)
  |  
문학동네
2011-03-09
  |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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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책 정보

· 제목 : 붓다의 치명적 농담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불교철학
· ISBN : 9788954614245
· 쪽수 : 380쪽

책 소개

동양철학을 삶의 문제로 귀환시킨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해설서 두 권이 나왔다. 이번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서는 마음과 일상의 차원에서 <금강경>의 기본 정신을 해설한다. 이 책에 붙은 부제인 ‘금강경 별기’란, 곧 <금강경>에 대해 저자가 각별히 따로 쓴 ‘별도의 해설’이란 뜻이다.

저자소개

한형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동해안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산의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불교로 동양학에 입문하여, 일상에서 구원을 모색하는 유학을 공부했다. 다산 정약용의 고전해석학(經學)을 다룬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띠풀로 덮인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헤쳐왔다. 고전을 통해 삶의 길을 배우고, 문명의 비평적 전망을 탐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왜 동양철학인가>(2000), <왜 조선유학인가>(2008)>, <조선유학의 거장들>(2008), <붓다의 치명적 농담>(2011)>, <허접한 꽃들의 축제>(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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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가르침이란 본시 내 속에 있던 어떤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는, 선가의 말을 빌리면 ‘지시指示’일 뿐입니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이 하나같이 “나는 네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의발을 찾아 천리 먼 길을 쫓아온 혜명에게 육조 혜능 스님은 분명히 일렀습니다. “비밀은 이미 너에게 있다.”
저는 이런 비유를 들곤 합니다. “마음의 소식은 흡사 방 한구석에 먼지 덮여 있는 어릴 때의 장난감 같은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시선은 세상 사는 일에 고착되어 있어, 한때 순수한 기쁨이었던 그 물건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장난감은 늘 그곳에 있었다. 아련한 향수가 밀려들거나, 누군가가 일깨워줄 때, 그는 거기 그 장난감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우리의 불성 또한 그와 같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우리 자신에게 미리 알려져 있는 것들입니다. 혜능 스님의 권위를 빌리면, “보리반야의 지혜는 본래 세인들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菩提般若之智世人本自有之.” 저는 불교가 노리고 있는 그 지식이, 비록 비밀스럽다고들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특별한 오랜 수련을 통해, 그동안 꿈도 꾸어보지 못한 어떤 것들이 비로소 완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깨달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알려져 있습니다. 그 깨달음은 마음의 밝음으로서, 욕망과 분노와 무지의 먹구름 틈 사이에서 늘 빛나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관자재보살은 “이제는 자유롭게自在 사물을 볼觀 수 있게 된 분”을 뜻합니다. 자유롭게 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유롭게 본다는 것은 전망대 위의 망원경처럼 사방팔방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또 지구 저편의 누드 비치를 엿보는 엉큼한 ‘신통력’이 아니라,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관견管見’이란 말이 적실히 말해주듯,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관심이라는 좁은 대롱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우리는 사태의 다른 측면은 물론이고, 전체를 보기는 더욱 더욱 아득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보는 통찰력, 즉 일체지一切智는 여래와 부처의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생들에게 세상은 모두 나我의 이미지相로만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만 욕망과 관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사람을 만납니다. 불교는 그 좁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공을 날고, 거기서 독수리처럼 세상을 조견照見하라는 ‘조감鳥瞰의 권고’입니다. 이 조감이 무슨 이득을 주느냐고요. 그 바라봄으로 하여, 오직 그 통찰을 통해서만 인간은 일체의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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