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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54617345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꿈꾼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영혼은 언제나 새로운 ‘지진’을 꿈꾼다 . . . 콤마씨의 탄생
온전한 나신만큼 수려한 화장은 없어라
누가 거울 앞에서 진심을 말하려 하는가
“검은 창의 경계” 너머 따뜻한 눈이 내릴 것이다
빗소리의 기나긴 나선 속에 누군가 헤매고 있다
당신은 곧, 나의 피로 번역될 것이다
그녀의 눈물은 기꺼이 아름다운 늪이었네
종말을 꿈꾸며
자꾸 나아가는 그림자를 향해, 끝없이 흔들흔들
언니의 말을 낳고 싶다
바람은 어떻게 허공에 뜬 묘지를 들춰냈을까
봄밤의 끝에 저승의 노래가……
시간의 등을 구부러뜨린 채, ‘그것’이 울고 있다
밤하늘의 흉터, 혹은 검붉은 낙원
인용 시 출처
보태는 말 허수경 한유주 신형철
부록 'The Ask' 가사집
책속에서
눈이 많이 내린 날, 새하얀 세상이 흐리게 보이는 건 눈 속에 감춰진 검은 세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콤마씨에게서 사라진 사람은 바로 그 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잡으려 하면 피부에 닿아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저 세상의 짧은 기별. 일상의 모든 표면에서 죽음과 좌절의 기운만 냄새 맡게 된 콤마씨에게 몸 안의 채 식지 않은 열기를 식히며 하얗고 어두운 베일처럼 깔리는 눈들은 세상 어떤 물체보다도 명징한 ‘우주의 기호’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자신의 몸, 자신의 시간, 자신의 감정 안에 잠시 머물다 떠난 사람은 사라짐 자체로 저 세상의 인물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마르지 않는 수분처럼 몸 안에 고인 채 그 자체의 형상을 지워버리는 한 사람의 흔적. 사랑이란 각자의 화분을 한 개씩 밖으로 꺼내놓고 얼핏설핏 드러나는 검은 창의 경계에서 저 세상의 기별 하나 듣기 위한 일이 아닐까.
콤마씨는 그 흔들리는 문장들을 베껴 쓰려 한다. 그러나 완전히 옮겨 쓸 수 없다. 쓰면 쓸수록 여태까지와는 다른 삶이 남아 있는 백지 위에 배어났다 지워진다. 사람이 문장을 완전히 이끈다는 건 허망한 분루에 불과하다. 진정한 문장이란 묘지에 피어난 꽃 같은 것이다. 누군가 끝끝내, 남김없이 그리려 했다가 기어코 놓치고 만 단 하나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