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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4619318
· 쪽수 : 28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당신들로 인해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Part 1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춤추는 것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내 사랑
열두 살 소년의 유일한 꿈은, 동생들이 죽지 않는 것
암병동의 닭살 커플
가난한 로커의 위대한 전설
저는 아프면 안 돼요, 엄마니까요
Part 2 천 가지 슬픔은 한 가지 기쁨으로 덮인다
엄마가 되고 싶은 엄지공주
바보 같은 사랑
가장 진실한 사람의 모습
‘정의의 주인공들’에게 영광을!
진실을 말한다는 것
Part 3 삶이란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것
피의 현장,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총 앞에 맨몸으로 선 여인
누구에게나 ‘그날’은 있다
가난은, 가난 때문에 울지 않는다
다큐 피디로 산다는 것
Part 4 나는 아직도 사랑이 아프다
사백삼십 일의 고군분투 끝에 얻은 이름
나는 아직도 사랑이 아프다
내 편견을 무너뜨린 스타들
그녀 생애 마지막 스캔들
에필로그. 당신의 아름다움의 순도는 몇 퍼센트인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렇게 피를 토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창원씨는 침착하게 간호사를 불러왔고 응급처치가 이뤄졌다. 한 시간의 사투 끝에야 간신히 피가 멈췄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피곤이 몰려오는 듯했다. 지친 영란씨가 눈을 붙였다. 그제야 비로소 창원씨가 큰 두 눈에서 눈물을 떨궜다. 그리고 다음날 잠시 창원씨가 병실을 비운 사이, 영란씨가 마음속에 감춰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어요. 어제 마음 같아서는 이제 정말 좀 그만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자꾸 마음이 약해져요. 끝내고 싶은데…… 포기할 수도 없고……”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 그녀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도 있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결혼식을 올려야 하나라는 의문이,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라도 더 이뤘으면 좋겠다는 응원으로 바뀌었다. 죽음이 예정돼 있다고 해서 지금의 삶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살아 있는 나날이라도 온전히 누리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이 어찌 이기심이고 욕심일까. 그것은 살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응당한 요구이고 살아 있는 자신에 대한 최선의 예의였다. - ‘암병동의 닭살 커플’ 중에서
그에게서 마음의 통증이라도 덜어주려는 거였을까. 암세포는 간까지 전이돼 뇌에도 손상을 입혔다. 언젠가부터 준호씨는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지 못했고 생각하는 단어를 글로 쓰지도 못했다. 통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어떤 날은 한 곳이 가렵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온몸으로 가려움이 번졌다. 준호씨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온몸을 미친 듯이 긁어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가려움이 준호씨를 공격한 그날, 하필이면 막내 규빈이가 병실에서 놀고 있었다. 그간 아이들 앞에서는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아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처음 봤다. 놀란 표정의 아이. 규빈이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고민하는 순간, 아이가 아빠 곁으로 다가갔다.
“제가 긁어드릴게요.”
“고마워, 규빈아.”
“간지러워?”
“응. 가려워. 규빈아, 고마워. 우리 규빈이 최고야, 우리 규빈이 최고야……”
조막만한 손으로 아빠의 몸을 긁어주던 아이. 아마 그것은 어떤 본능이었던 것 같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는 원초적인 반응. 평소와 전혀 다른 아빠의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겠지만 그 공포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이로 하여금 아빠로부터 물러서기보다 아빠에게 다가가도록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이 지니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나는 규빈이의 돌발행동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했다. 아이는 아빠의 모습이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섭지만 그래도 다가섰던 것이리라.
사랑, 하니까. -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내 사랑’ 중에서
임신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믿고 싶었을 뿐이다. 열렬히 원했을 뿐이다. 정말로 튼튼이가 선아씨 배 속에 있다고 굳게 믿으면, 아이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갸륵해서라도 아이가 들어와주지 않을까, 바랐던 것이다.
그날부터 선아씨는 소리내어 태교동화도 읽고, 십자수로 아기용품도 만들며 튼튼이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오기도 했다. 혹시나 나중에 아이가 엄마를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었다.
“마트라든지 길을 가다보면 아이들이 절 너무나 신기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했거든요. 다리 없는 아줌마다, 뭐 얼굴은 어른인데 다린 아기야. 이런…… 아이가 나중에 엄마를 창피해하면 어떻게 하나. 아이가 엄마를 피하고…… 그래서 내 위치를, 방송인으로서 입지를 더 다져놓으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 같고, 조금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그런 욕심이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걱정과 우려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모든 감정을 앞섰다. 선아씨에게 아이는 희철씨와의 사랑에 대한 징표였고, 자신도 평범한 여자일 수 있다는 증거였다. - ‘엄마가 되고 싶은 엄지공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