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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 ISBN : 9788954622233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_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1장 정보, 전력과 전략을 빈껍데기로 만드는 힘
패배는 소리 없이 샛길을 타고 스며든다: 테르모필라이 전투(BC 480년)
조급하게 서두르면 이길 싸움도 진다: 명량 대첩(1597년)
공성이 축성을 이긴다: 샤토 가이야르 전투(1203∼1204년)
정보 확보가 중요한 이유: 부하라 전투(1220년)
가짜를 믿게 하고 진짜를 의심하게 하라: 영국 첩보전(2차 세계대전 중)
큰 전쟁에서 가장 먼저 이겨야 할 것, 정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2장 혁신, 어제와 같은 오늘은 절대로 없다
혁신적이지 않은 자, 리더라 불릴 수 없다: 바빌론 전투(BC 539년)
상식과 비상식을 뒤섞을 때 이긴다: 칸나에 전투(BC 216년)
문제는 하나지만 보는 각도는 수만 가지다: 자마 전투(BC 202년)
유연성, 견고한 덩치를 제압하는 기술: 레그니차 전투(1241년)
최강을 최악으로 유도하라: 델리 전투(1398년)
한 번 쓴 전략은 과감히 버려라: 예나 전투(1806년)
약점을 무기로 바꾸는 법: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년)
현실보다 인식이 더 중요하다: 셰넌도어 전투(1861∼1865년)
재정의할 때 재창조가 이뤄진다: 미드웨이 해전(1942년)
자멸로 돌진하는 무차별 돌격: 과달카날 전투(1942∼1943년)
상황 분석이 전략 선택보다 앞선다: 임팔 작전(1944년)
남다른 자기 방식으로 싸워라: 베트남 전쟁(1965∼1973년)
3장 완주, 세상은 최선이라는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
완벽한 강점이 완벽한 몰락을 부른다: 티루스 전투(BC 332년)
숫자가 아니라 집중력이다: 가우가멜라 전투(BC 331년)
상처뿐인 영광은 아무 쓸모가 없다: 헤라클레아 전투(BC 280년)
연합하여 함께 싸우는 힘: 삼국 통일전(660~668년)
이 세상에 난공불락은 없다: 카파 전투(1343년)
뱀이 코끼리를 삼킨다: 카하마르카 전투(1532년)
대세를 뒤집는 기습의 기술: 인천 상륙작전(1950년)
승리는 코앞에서도 사라진다: 갈리폴리 전투(1915년)
공간을 내어주고 시간을 얻어라: 옌안 대장정(1934∼1936년)
End를 And로 바꾸는 지혜: 미국 선거전
4장 절제, 전략가를 대전략가로 이끄는 지혜
풍선은 계속 불면 터진다: 과신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다
덩치는 갑자기 쓰러진다: 과욕은 절대 금물이다
확장은 절대로 핵심가치가 아니다: 과속은 죽음의 유혹이다
에필로그 _전략, 나쁜 강자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 힘
미주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전략이 탁월하면 약자라도 강자를 이긴다. 막대한 숫자의 전력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다. 뱀이 코끼리도 삼킬 수 있게 한다.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한 줌의 병력으로 500만 명의 잉카 제국을 손에 넣었다. 전력이 우세해도 전략이 열세면 이기기 어렵다. 전략은 전력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약화시키기도 한다. 전략이 없이는 승리도 없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성경 잠언 24장 6절).
1차 공세에 앞장섰던 페르시아 군사들은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2차 공세에 나섰던 3000명의 페르시아 정예부대마저 거의 궤멸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조심스럽게 회군도 고려했다. 그때 그 지역 출신으로 그리스에서 추방됐던 정치인 에피알테스(Ephialtes)가 레오니다스를 배신했다. 레오니다스의 전사들을 측면에서 포위할 수 있는 좁은 우회로를 크세르크세스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 틈새로 스며드는 독가스처럼 패배는 샛길로 스며든다. 조직의 허점이 공격당할 수 있는 샛길은 철저히 방어해야 한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배신자도 미리 차단해야 한다. 에피알테스의 배신은 레오니다스의 완전한 패배를 가져왔다. 모멸감, 피해의식, 원한에 사무쳐 배신을 꿈꾸는 내부자가 생기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리더는 공평한 처우, 세심한 배려, 원활한 소통으로 내부를 단속해야 한다.
이순신의 신중함은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원균은 늘 그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선조가 그의 죄를 묻자 그를 천거했던 영의정 유성룡마저 등을 돌렸다. 1597년 음력 2월 26일 그는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됐다. 그는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백성들의 호소와 일부 선비들의 상소로 투옥된 지 28일 만에 풀려났다. (…) 그도 몹시 초조했지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칠천량 해전의 승리로 남해를 손에 넣은 일본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경상도를 점령한 데 이어 전라도로 넘어갔고, 충청도까지 치고 올라가고자 했다. 하루빨리 이순신의 전라우수영을 넘고 서해로 내 달려 한강까지 침입하려고 했다. 일본군 지휘부는 이순신이 전열을 재정비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며 급히 서둘렀다. 그러나 이순신은 바로 그것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