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이십이사차기 1

이십이사차기 1

조익 (지은이), 박한제 (옮긴이)
  |  
소명출판
2009-06-30
  |  
26,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이십이사차기 1

책 정보

· 제목 : 이십이사차기 1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역사학 > 역사학 일반
· ISBN : 9788956263991
· 쪽수 : 399쪽

목차

1권

권1
1. 사마천이 역사를 저술한 햇수
2. 반고가 역사를 저술한 햇수
3. 각 정사간의 체례와 편목의 차이
4.『사기』의 편목과 차례
5. 저소손이『사기』를 보충한 것은 10편만이 아니었다
6.『사기』가운데 후인들이 잘못 끼워 넣은 곳
7.『사기』의「율서」는 곧「병서」였다
8.『사기』의 변체
9. 한왕[유방]의 부모처자
10. 다섯 대에 걸쳐 한나라의 재상을 지냄
11.「과진론」이 인용된 세 곳
12.『사기』안에서 서로 어긋나게 서술한 곳
13.『사기』와『한서』가 다른 곳
14.『사기』와『한서』는 서로 장단점이 있다

권2
15.『한서』에서『사기』의 문장을 옮겨 둔 곳
16.『한서』에는 유용한 문장을 많이 수록했다
17.『한서』에서 열전을 덧붙인 곳
18.『한서』에서 사적을 덧붙인 곳
19.『한서』의 항산왕에 대한 서술
20.『한서』는 무제기의 찬에서 무공을 말하지 않았다
21. 한의 황제들 스스로 묘를 세운 자가 많다
22. 한나라 초기의 포의 출산이 정상이 된 국면
23. 한나라 초의 제후왕은 스스로 관속을 임명하였다
24. 무제의 연호는 원수 이후에 소급해서 만든 것이다
25. 한의 유자들이 재이를 말하다
.
.
.

권3
39. 한나라 사신들이 먼 이국 땅에서 공을 세우다
40. 무제 때 형벌의 남발
41. 두 황제가 도둑을 잡는 방법의 차이
42. 두 황제가 도둑을 잡는 방법의 차이
43. 여후와 무후는 나란히 칭할 수 없다
44. 항렬을 따지지 않는 결혼
45. 황제의 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46. 한나라 공주들은 샛서방을 꺼리지 않았다
47. 한나라 제후왕들의 문란함
48. 질 좋은 술과 특별히 사육된 소
49. 전한과 후한 때에 봉황이 많았다
50. 한나라에는 황금이 많았다
.
.
.

권4
60.『후한서』편찬 차례에 대한 정정
61.『후한서』에는 간혹 소락하거나 빠진 대목이 있다
62. 한나라 황제들은 스스로 조서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63. 광무제는 참위서를 믿었다
64. 광무제는 노비를 많이 해방시켰다
65. 동한 공신에는 유학자에 가까운 사람이 많았다
66. 동한 때에는 사친묘에서 따로 제사를 드렸다
67. 동한 여러 황제들은 오래 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68. 동한에는 모후가 임조하고 방계황족이 들어와 제위를 잇는 경우가 많았다
69. 방계황족이 들어와 제위를 이으면 친부모를 추존했다
70. 남편이 생존해 있는 데도 '태'를 칭한 경우
71. 동한 때 폐위된 태자들은 모두 목숨을 보전했다

권5
72. 여러 세대에 걸친 경학
73. 사대에 걸쳐 삼공을 배출하다
74. 동한에서는 명예와 절개를 숭상하였다
75. 조아와 숙선웅
76. 인재를 불러 등용하는 데에 자격을 따지지 않았다
77. 마음대로 벼슬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78. 몰수한 재산으로 백성들의 조세를 대신하였다
79.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신 문장을 짓고 글을 쓰다
80. 당인에 대한 금고의 기원
81. 동한시대의 환관
82. 환관이 백성에게 끼친 해악
83. 한나라 말엽 여러 신료들이 환관을 탄핵하고 다스렸다
84. 환관 가운데에도 또한 어진 이가 있었다

2권

역자 서문

권6
85.『후한서』와『삼국지』의 서술방법이 같지 않은 부분
86.『삼국지』의 서술 방법
87.『삼국지』에는 말을 돌려 비호하는 것이 많다
88.『삼국지』에서 실상을 얻어 일을 기록한 내용
89. 『삼국지』에서 열전을 만드는 데에 번잡하고 간략함이 같지 않은 내용
90.『삼국지』에서 틀린 내용
91. 순욱전
92. 순욱과 곽가의 두 열전에 억지로 갖다 붙인 부분
93. 제갈량에 대한 진수의 평론
94. 배송지의『삼국지』주석

권7
95. 한나라에서 옛 아홉 주를 다시 두다
96. 관우와 장비의 용맹
97. 형주를 빌려주었다는 주장의 잘못
98. 삼국의 군주들은 용인술이 각각 같지 않았다
99. 선대(선양을 통한 왕조교체)
100. 위나라와 진나라의 선대는 같지 않았다
101. 구석문
102. 한 사람이 두 사서에 각각 열전이 있는 경우
103.『진서』
104.『진서』2
105. 왕도, 도간 두 사람의 열전은 포폄에 마땅함을 잃었다.

권8
106. 팔왕의 난
107.『진서』에 기록된 괴이한 이야기
108. 동진에는 어린 군주가 많았다
109. 진나라 황제는 형이 죽고 아우가 잇는 경우가 많았다
110. 민제와 원제의 즉위
111. 멋대로 제위에 앉은 여러 군주들에게 학문적 재능이 있었다.
112. 구품중정
113. 육조시대 청담의 풍습
.
.
.

권9
120.『송서』에는 서원이 지은 구본이 많았다
121.『송서』에서 동진·송 혁명 무렵에 대해 쓴 것
122.『송서』에서 송제 혁명 무렵에 대해 쓴 것
123.『송서』본기의 서술 방법
124.『송서』『제서』의 대서법
125.『송서』에서 북위의 일을 기록한 것은 오류가 많다
126.『송서』와『남사』에는 모두 심전자, 심람자 열전이 없다
.
.
.

권10
139.『남사』는 진수가 쓴『삼국지』의 차례를 모방했다
140.『남사』와『북사』에서 열전에 자손들을 덧붙인 예
141.『남사』에서『송서』를 삭제한 것이 가장 많다
142.『남사』에서 지나치게 간략함을 추구한 실책
143.『남사』에서 틀린 부분
144.『남사』에서『제서』를 증보한 부분
145.『남사』와『제서』가 서로 다른 내용
146.『남사』에서『양서』에 보태거나 삭제한 내용
147.『남사』에서『양서』를 삭제한 부분
148.『남사』에서『양서』를 증보한 것 가운데 중요한 부분

권11
149.『남사』에서『양서』에 보탠 잡다한 내용
150.『양서』와『남사』두 사서가 서로 다른 부분
151.『남사』는『진서』에 대해 심하게 더하거나 삭제한 것이 없다
152.『남사』와『진서』가 서로 다른 내용
153. 송나라와 제나라에는 방탕한 군주가 많았다
154. 송나라 궁중 여인들의 무례함
155. 송나라 황실 자손들이 도륙된 참혹함

권12
156. 군주는 즉위하면서 하얀 비단 모자를 썼다
157. 제나라와 양나라 군주들은 재주와 학식이 많았다
158. 제 명제는 고제와 무제의 자손들을 죽였다
159. 제나라 제도에서는 전첨의 권한이 매우 중요했다
160. 남조에서는 꿩을 쏘는 것으로 사냥을 했다
161. 강좌의 권세 있는 가문에는 공산이 없었다
162. 양 무제는 제나라 황실의 자손을 남겨두었다
.
.
.


3권

역자 서문

권13
168.『위서』에는 곡필이 많다
169.『위서』에서 본기와 열전의 내용이 서로 다른 곳
170. 이주영전
171. 서위서
172. 시온산 번백에게 답하는 편지
173.『북사』의『위서』부분은 위수의 책을 자본으로 한 것이 많다
.
.
.

권14
182. 황태손
183. 황태제
184. 제왕이 삼년상을 행한 경우
185. 여후의 현명함
186. 남북조에서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사신의 직책을 무겁게 여기다
187. 북위의 시호 추증 남발
188. 보태후
.
.
.

권15
196. 북조의 경학
197. 남조의 경학
198. 북위에서는 집안에서 일어난 변란이 많았다
199. 북위와 북제의 황제들은 모두 일찍 아들을 낳았다
200. 북위 황제들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 북위 때 사람들은 신장을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202. 재물로 하는 결혼
203. 지체 높은 가문의 아녀자들
204. 북위, 북제 당시의 도량형
205. 가짜관리
206. 북주, 수, 당은 모두 무천에서 나왔다
.
.
.

4권

역자 서문

권16
219.『구당서』의 편찬 시말
220.『신당서』
221. 당나라의 실록, 국사는 모두 두 차례 산실되었다
222.『구당서』전반부는 실록, 국사의 구본을 모두 사용했다
223.『신당서』본기의 서술방법
224.『신당서』본가에서 안사의 난에 대해 쓴 대목
225.『신당서』에서 각 열전을 개편한 것

권17
226.『신당서』에서『구당서』를 증보한 대목
227.『신당서』에서『구당서』를 증보한 것 가운데 중요한 대목
228.『신당서』에서『구당서』를 증보한 것 가운데 잡다한 내용
229.『신당서』열전을 만들면서 유독 상세하게 쓴 대목
230.『신당서』에서『구당서』내용을 삭제한 대목

권18
231.『신당서』에서『구당서』문장의 뜻을 고친 대목
232.『신당서』에서는 변려체로 된『구당서』문장을 모두 삭제했다
233.『신당서』에서는 한(유)·유(종원)의 문장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234.『신당서』에서는 상소문을 상세하게 수록했다
235.『신당서』와『구당서』가 서로 대른 대목
236.『신당서』와『구당서』는 각각 본기와 연전이 서로 다른 대목이 있다
237.『신당서』와『구당서』가 틀린 대목
238.『신당서』와『구당서』판각본에는 각각 빠지거나 틀린 대목이 있다

권19
239. 정관 연간에 올바르게 간언한 사람은 위장만이 아니었다
240. 시정기
241. 천자는 기거주를 보지 않았다
242. 당나라 황제들은 단약을 먹은 사람이 많았다
243. 현종은 오대가 한 집안에 살았다
244. 당나라에는 두 차례 '상원'이라는 연호가 있었다
245. 덕종은 시 짓는 것을 좋아했다
246. 이전 시대 충신과 간신에 대한 포폄
247. 시호에는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모두 있었다
248. 당나라 때 태자 호칭 추증의 지나침
.
.
.

권20
264. 당나라 때 환관의 폐해
265. 환관이 (지방으로) 사신으로 나가고 군대를 감독함으로써 생긴 폐단
266. 당나라 환관에는 복권과 광동 출신이 많았다
267. 당나라 절도사의 페해
268. 방진의 군대가 자기 영역을 나서기만 하면 탁자부에서 물자를 공급해 주기를 바랐다
269. 방진의 교만한 병사들
270. 도적이 재상을 살해한 두 사건이 있었다
271. 여섯 등급으로 죄를 정하고 사흘 만에 상복을 벗는 것에 관한 논의
272. 간가, 제맥, 궁시, 오방소사가 백성을 괴롭힌 예
273. 호사스러운 연회
.
.
.

5권

역자 서문

권21
293. 설거정의『오대사』
294.『구오대사』는 각 왕조의 실록에서 전부 자료를 취했다
285.『구오대사』서법 가운데 말을 돌려 비호한 대목
286.『구오대사』에서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대목
287.『구오대사』에도 또한 직필한 대목이 있다
288.『구오대사』와『신오대사』의 체례에서 같지 않은 대목
289.『신오대사』는 오로지『구오대사』구본에만 의거하지는 않았다
299.『신오대사』의 서법은 엄격하다
.
.
.

권22
295. 오대 때에는 추밀사의 권한이 가장 무거웠다
296. 오대 때에는 번진을 관대하게 대했다
297. 오대에서는 번진과 주군에 모두 무인을 등용했다
298. 오대 때 번진 장수들이 재물을 약탈하던 관습
299. 오대 때 막료들의 재난
300. 오대 때 소금과 누룩(술)에 대한 금령
301. 오대 때에는 형벌을 남용했다
302. 오대 때 제후들이 바치는 공물로 마구나 병기를 많이 썼다
.
.
.

찾아보기

저자소개

조익 (지은이)    정보 더보기
淸 양호(陽湖:江蘇省 武進縣) 사람으로 자는 운송(耘松), 호는 견북(甄北)이다. 관은 광서(廣西) 진안(鎭安) 지부(知府)에 까지 올랐으나 그의 관력보다 시인으로서 역사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시로서는 원목(袁牧), 장사전(蔣士銓)과 함께 건륭(乾隆) 3대가라 칭해졌다. 사학 방면에는 건가(乾嘉)시대 고증사학의 3대 명저의 하나인 본 ‘이십이사차기’ 외에 ‘해여총고(?餘叢考)’, ‘황조무공기성(皇朝武功紀盛)’ 등이 있다. ‘청사고(淸史稿)’ 권485와 ‘청사열전(淸史列傳)’ 권72에 그의 열전이 있다.
펼치기
박한제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201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2000~2002년에 한국중국학회 회장, 2005~2007년에 한국동양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중국중세호한체제연구』(1988),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 『아틀라스 중국사』(주편, 2007), 『대당제국과 그 유산―호한통합과 다민족국가의 형성』(2015), 『중국 도성 건설과 입지―수당 장안성의 출현전야』(2019), 『중국 중세도성과 호한체제』(2019),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사회적 전개』(2019)가 있다. 역서로 『진인각, 최후의 20년』(공역, 2008), 역주서로 『이십이사차기』(전 5권, 2009), 답사기행기로 『박한제 교수의 중국 역사기행』(전 3권, 2003)이 있으며, 중국 중세 민족 관계 논문이 다수 있다. 제49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 2008), 제3회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2010), 우호동양사학저작상(2017)을 수상하였다.
펼치기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