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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6609157
· 쪽수 : 188쪽
목차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부록 1 /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부록 2 / 누이동생 엘리에게 보내는 편지
역자해설 - '편지'에 관하여
카프카 연보
리뷰
책속에서
아버지와 저희의 종결되지 않은 이 끔찍한 소송에 대해 상세히 논의하고자 그런 것입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재미있고도 진지하게, 사랑과 반항심, 분노와 혐오, 체념과 죄책감을 품고, 두뇌와 가슴속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말입니다. 또 모든 점을 낱낱이 살피고 온갖 동기와 원인을 짚어가며, 다양한 측면에서 세밀하고도 포괄적으로 숙의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소송에서 항상 판결자의 지위에 있음을 주장하시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버지 역시 거의 모든 경우에 (물론 이 점에서 제 판단은 얼마든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저희처럼 허약하시고 저희만큼이나 가상에 현혹되어 있는 소송 당사자이십니다.
지금까지 얼마 안 되지만, 제가 이 편지에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사항들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아직 아버지께 털어놓기 어려운 몇 가지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드려두는 이유는, 제 이야기가 그려내는 전체적인 그림이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좀 선명하지 않게 되더라도 입증 근거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거라는 아버지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근거들은 엄연히 있지만, 어떤 것들은 그림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피하면서 진실하고도 완곡하게 쓰기가 쉽지 않군요.
제 글쓰기의 주제는 아버지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기대어 푸념하지 못하는 것들만 글에서 털어놓았을 뿐입니다. 글쓰기는 아버지와의 작별을 의도적으로 지연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이 작별은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것이지만, 제가 정한 방침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글로 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충분한 것이었는지요! 그것은 오직 제 삶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가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