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희망을 리필합니다

희망을 리필합니다

안영열 (지은이)
  |  
오늘의문학사
2013-11-15
  |  
1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5,000원 -0% 0원 750원 14,2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희망을 리필합니다

책 정보

· 제목 : 희망을 리필합니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6695761
· 쪽수 : 349쪽

목차

■ 머리말·12

제1부 눈빛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먼저 가거라, 규남아 21
눈빛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으니 27
故 김수환 추기경 30
우리말 퀴즈 35
귀염둥이 사랑이 39
식사초대 44
내 인생의 또 다른 예수성탄 50
참된 목자 53
완섭이 동생 60
행운회 62
노숙자 베드로 아저씨 65
빈민촌 활동 69
눈물의 보신탕 74
소외감 속에서의 또 다른 행복 78
역전활동Ⅰ 80
역전활동 Ⅱ 82
역전 활동 Ⅲ 85
택시기사 사도회 88
어느 노할아버지의 죽음 91
10분간의 외출과 중요성 94
아침의 고통+오후의 고통 97
카레 맛이여 영원하라! 99
집사님의 선물 102
모임 108
다시 한 번 생명이 주어진다면 111

제2부 산타클로스의 사랑

‘희망의 집’ 개원식 117
산타클로스의 사랑 119
작은 기적 121
고해성사 124
야외 나들이 127
형제들과의 여행 134
장용산 나들이 140
가난한 사람에 대한 병덕이 형의 사랑 146
환자 봉성체 150
안드레아 형, 함께 가요 152
故 김동식(베네딕또) 아저씨의 아름다운 사랑 155
행복한 민 할아버지 159
김씨 아저씨와 두 분의 아저씨 162
안재필 할아버지 166
주일날의 천사 169
자동이체(온라인)의 천사님들 175
은인들, 봉사자들과의 윷놀이 177
대동 천주교회 ─ 바다의 별 쁘레시디움 180
자원봉사자 ─ 성모병원 봉사 1팀 182
요엘 수목원의 형 184
학생들 봉사활동 186
사랑의 완성 ─ 세 부부의 행복 189
친구같은 동생 194
영두 형의 살아가는 방식 197
두 부부의 하모니 200
작은 미소의 사랑 ─ 베품 203
십년이 넘은 사랑 205

제3부 저는 베짱이입니다

산소 호흡기 209
저는 베짱이입니다. 212
눈물의 기도 216
밤 사이의 고통과 아침으로의 희망 219
중환자실 222
기침 감기의 고통 227
자살 230
성서 쓰기 233
만성 폐쇄성 폐질환 236
중환자실에서의 나날들 242
성당 사무장 249
한밤중의 소동 256
가족의 기도 259
시험성적표 262
상처 267
고등학교 3학년의 내 딸 270
큰 딸, 예린이의 내일에 대한 희망 275
좋은 대학교 합격 278
나를 닮은 큰딸 283
예쁘고 귀여운 천사의 손 288
작은딸의 인생공부 291
작은딸 용돈 295
작은딸의 편지 298
어머님 사랑합니다. 303

제4부 희망을 띄우는 편지

정승래 바오로 형제님! 주신주 그라시아 자매님! 309
윤현순 로사 자매님, 안녕하세요 312
김 원 바오로 형님, 그 동안 별일 없으신지요 314
사랑하는 집사님! 317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321
존경하옵는 본당 신부님께 324
진정 마음으로 존경하옵는 양안드레아 신부님 327
사랑하는 김광식 바오로 형님 329
사랑하는 어머님께 331
어머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334
살아줘서 고마워 ─ 아내의 편지 337
당신의 기대처럼 살 수 있을 때까지 ─ 남편의 답장 339
우리 가족이 너무너무 좋아요 ─ 큰딸 편지 341
미소가 항상 아빠 얼굴에 있었으면 합니다 ─ 둘째 딸 편지 344
찬미예수님 347

저자소개

안영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960년 경남 양산 출생. · 부산대양중학교에 다니던 중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중퇴한 후 검정고시 공부를 하였습니다. · 20세에 폐결핵으로 한쪽 폐를 들어내는 폐절제수술을 하고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나, 건강악화로 다시 수도회에서 나와, 1991년에 결혼하여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희망의집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 지금은 건강이 더 악화되어 24시간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무연고 장애인 노인분들과 가족처럼 살고 있습니다.
펼치기

책속에서

먼저 가거라, 규남아
금요일 저녁 식사 후부터 규남이가 기침을 했습니다.
병원에는 안 가고 집에 처방약이 있어 기침 감기약을 먹였습니다. 제가 좀 늦게 자는 편인지라 다른 식구들은 잠들었는데 규남이는 간간히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침하는 소리를 들으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자면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일 수 있지만 규남이는 한 번 자리에 누우면 그 자세로 다음날 아침까지는 그대로 있어야만 하기에 가끔씩 몸을 돌려줘야 합니다. 몸을 돌려 눕히고 손을 잡고 물끄러미 쳐다보며 늘 느껴지는 마음이지만 낮에 볼 때와 밤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 또 다릅니다.
목 줄기를 통해 가끔 토해내는 기침 소리를 들으면 안쓰럽고 괴롭기만 합니다. 다음 날 오후, 빠른 시간 내에 119 구급차를 불러 성모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혈압 체크부터 시작하여 환자에 대한 상담, 링거 주사를 꼽고 산소 호흡기를 코에 단 후 빠른 속도로 옷을 열어젖힌 채 전기충격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런 고통을 주는 것이 마음은 아팠지만 살릴 수만 있다면…. 머리를 조아리며 수없이 주님을 찾습니다.
땀을 흘리며 의사 선생님께서 저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가슴이 콩닥콩닥거립니다. 제발 제발 “안되겠습니다.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말아주기를….
이마에 땀을 닦으신 선생님께서 “산소 수치가 자꾸 내려가고 있습니다. 힘들 것 같습니다.” 하셨습니다.
아!!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원했는데…. 아! 그놈의 산소 수치!
산소 수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24시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뼈저리게 그 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 규남아! 아, 규남아!’ 마음속으로 흐느끼면서 문득 18년 전에도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규남이와 똑같은 환자를 집으로 데려가 임종을 지켜봤는데…. 또 다시 규남이를 통하여 그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에까지 따라온 의사가 이제 산소 호흡기를 떼면 20~30분 후 숨이 멎을 것이라 했습니다. 조금은 가쁜 숨을 모아 쉬는 규남이의 손을 잡고 편안히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오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규남이는 평온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마음 한쪽이 찡한 이 기분…. 마음 한쪽 뻥 뚫린 이 기분…. 자식 조금 더 살지.
잘 해준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잘못한 것만 생각납니다. ‘더 잘해줄걸….’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시울이 붉어져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습니다. 괜히 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도 이제는 제가 우는 모습을 보고 규남이가 죽은 것을 알았는지 “규남아, 규남아!” 하고 부르며 울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되뇌어봅니다. 며칠 있다가 나도 갈 테니 좋은 자리 잡아 놓으라고 외쳐 봅니다.
규남이 같은 ‘근육 이완증’ 병은 만19세를 못 넘기고 죽는다고 의사의 말을 통해 들은 적이 있고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봐왔지만 막상 규남이를 떠나보내려니 슬프기만 합니다. 우리 집 막둥이로 정이 많이 들었는데….
다른 아저씨들은 규남이의 주검에 멀뚱멀뚱하지만 인정 많은 우리 할아버지, 규남이를 예뻐했던 우리 할아버지는 연신 눈물을 닦아 내며 때로는 큰소리로, 때로는 작은 소리로 규남이를 불러봅니다.
규남이를 한 번 껴안아 보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는 규남이인지라 위로가 되지 않은 듯합니다.

가양 1동 동사무소 사회과에서 전화가 와서 상담 후 빈곤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지하실 컴컴한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이 규남이였습니다. 이것이 규남이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지하실인지라 온 천지가 시커멓고 규남이 방은 형광등이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방안에 들어가려는 순간 대변냄새와 소변냄새,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냄새가 복합적으로 제 코를 자극하는 바람에 폐가 한 쪽 밖에 없는 저로서는 호흡하기가 힘들어서 선뜻 들어서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도 환자들 똥을 닦아내고, 목욕시키고, 수많은 자리의 노숙자들과도 접해보아 비위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요 근래에는 이런 냄새를 많이 맡지 못해서인지 규남이 방 안의 냄새가 한 마디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긴 호흡으로 최대한 들이 마신 후 다시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점차 저도 그 환경, 그 냄새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쓰러지듯이 앉아 있는 모습이 참 힘들어 보였습니다. 몸에 살집은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는 생후 몇 개월 때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도 내가 방문하기 6개월 전까지 함께 살다 소리 없이 들어오시지 않고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한 번도 내려와 주시지 않고, 앞집 나이 드신 할머니께서 죽이나 라면을 끓여와 하루 한 끼 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누워있는 규남이를 겨우 어렵게 앉혀 놓으면 하루 종일 컴컴한 방에서 텔레비전만 본다고 했습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다 참다 누가 소변을 받아주지 않으면 옷에다가, 이불 위에다가 소변을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규남아, 아저씨 따라갈래? 아저씨 따라가면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저씨들도 계시고, 애기들도 있고, 아줌마들도 있는데. 가서 함께 살래?” 하고 말하였더니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면서 조금은 웃는 얼굴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 옷에 똥오줌을 묻히고 다른 사람들 도움을 받으며 ‘희망의 집’ 대문에 들었을 때, 이것이 첫 만남, 인연이 되어 ‘희망의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규남이는 저희와 행복하게 살아 왔는데 저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습니다.
부모님 떠나보내고 그동안 못 먹어서인지 그렇게 음식을 먹어대던 규남이.
예전에는 소변, 대변을 잘 못 봤는데 이제는 소변통에다 소변을 시원하게 누던 규남이.
혼자서 세수도 못하여 꾀죄죄할 때 목욕을 한 후 얼굴을 보면 예쁘장하게 생겼던 규남이.
맛있는 반찬을 잘 먹고 맛없고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은 먹지 않고 편식하다 가끔 꾸지람을 들었던 규남이.
TV나 만화책을 보면서 낄낄대는 규남이.
글자는 잘 아는데 숫자를 잘 못 세어서 작은 딸한테 가끔 놀림을 받았던 규남이.
천주교 기도문을 배워 열심히 기도를 따라했던 규남이.
방문자들에게 처음에는 쑥스러워 인사도 못했지만 나중에는 빙그레 웃어주던 규남이.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목욕하고 숨 가쁘게 “고맙습니다.” 인사하던 규남이.
우리 할아버지에게서 귀엽다면서 하루에 10번 이상은 뽀뽀 세례를 받았던 규남이.
막대 아이스크림을 주면서 장난치면 삐지기도 하고 웃어주던 규남이….
이렇듯 정이 많이 들었던 규남이가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규남아!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어라. 이 아저씨도 숨을 쉴 수 없으면 너 따라갈게”
두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하고 있노라니 마음 한 켠에 무엇인가 뭉클한 것이 전해져 옵니다. 이놈의 눈물은 왜 이리 자꾸 흐르는지…. 몇몇 사람들이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였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희망의 집’에서 생활하시다 운명하신 분(가족)은 집에서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나는 ‘희망의집’ 간판을 걸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다행히 큰 집으로 이사한 후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마당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규남이가 눈을 감은 날이 토요일인지라 생각보다 많은 조문객들과 봉사자들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일일이 전화로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평소에 규남이를 알고 지내던 형제와 자매님들, 지인들이 오셔서 기도와 명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규남이 자식.
부모님들은 자신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하루에 한 끼 그것도 라면이나 죽만 먹었습니다. 소변도 참고 대변도 참아야 했습니다. 어떨 때는 할 수 없이 이불 위에 싸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팔다리는 아플 때 몸을 못 움직여 신체가 끊어지듯 아팠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생만 하다 눈을 감았습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나마 할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에게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봉사자들과 은인들의 손길과 보호에 감사하는 마음과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기도했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대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규남아! 너는 복이 많아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받으며 하늘나라로 가는구나!
다소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줌의 재로 훨훨 날아 자유를 찾아 갔습니다. 부모님들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곳에 와서 할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가는지라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규남아.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할게. 규남아 사랑했었다, 내 마음 안에 너를 듬뿍 안고 살아갈게. 우리 다시 만나자!”
이 시간을 빌어 장례미사집전과 직접 장지까지 함께 동행해 주신 신부님, 조문객도 맞이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형제자매님들, 장지까지 함께 가셔서 운구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눈빛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어느 날 저녁 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성당 안 불빛이 밝아졌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입이 코에 걸렸습니다. 영미씨에게 “너무 좋지? 그치?” 그러니까 영미씨도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4년여 전부터 눈이 갑자기 침침했습니다. 안과에 가서 상담해 본 결과, 왼쪽 눈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느냐는 의사의 말에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상처를 받은 흔적이 있다고 하여 일단 안경을 맞추었습니다. 불편하지만 눈을 위하여 안경을 써야 했습니다. 안경을 맞춰 썼는데도 책을 읽어도 눈이 충혈되며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성서 책을 읽어도 예전에는 많은 분량을 읽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3~4장만 읽어도 눈이 피곤하여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제 눈이 시리고, 피곤하고, 침침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장모님의 눈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장모님은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눈꺼풀이 거의 눈을 덮고 계셔서 하루 일과를 생활하기가 너무 힘이 드십니다. 텔레비전을 볼라치면 눈꺼풀이 내려앉고, 신문이나 책을 읽어도 처음에는 조금 괜찮다싶다가도 몇 줄 읽어내려 가다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내려앉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때때로 마음에 심한 아픔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눈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하여 병원에 가서 작은 수술도 하고, 주사도 맞으시고 여기저기 안 다녀본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영동읍에서 한참 들어가는 시골 동네에 어떤 할머니가 용하다고 하여 치료차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는 영미씨와 함께 학원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토요일 오전, 조용히 안식을 취하는 시간이지만 어머니를 위하여 2시간가량 차를 몰고 그 용하다는 할머니에게 눈 치료차 다녀와야 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지만 친아들만큼 더 아껴주시는 장모님이시기에 어머님처럼 모시고 함께 살 때입니다. 너무나 기쁘게 처음에는 시골 동네로 어머님의 눈을 낫게 하기 위하여 다녀왔습니다. 도착하여 바로 치료를 받으면 좋으련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몇 시간씩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만, 기도하면서 시골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며 기다렸습니다.
학원을 하며 차량 운전으로 피곤할 때도 있는데, 토요일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지만 늦게 가면 치료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찍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두릅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치료차 오고가는 중에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며 좋을 때도 있었지만, 토요일 아침 피곤할 때는 짜증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밝은 눈이 있음에 감사드리고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들도 생각했습니다. 속 좁은 제가 앞이 잘 안 보이는 장모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고 계셨던 류마티즘 관절염 환자(전신마비)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몸은 못 움직여도 눈은 괜찮은 사람과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맹인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어느 분을 택하고 싶으냐고 류마티즘 환자에게 여쭤보니 한 차례의 망설임도 없이 “몸은 못 움직이는 전신마비 환자이지만, 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낫지요. 앞이 안 보이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하며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 작은 것만 챙겨줘도 고맙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약해도 그런 분께 꼭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 온 몸에 쓸만한 장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다 남을 위하여 주고 싶습니다. 이처럼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해야 합니다. 비록 안경은 사물을 보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은총이었습니다. 눈을 뜰 수 있고, 빛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듯이 그 빛과 사랑 속에 머물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프란치스코가 되겠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큰 어르신을 잃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종교계, 아니 가톨릭 신앙의 큰 정신적인 지주 故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종교를 가졌든, 안 가졌든, 믿음의 생활을 하든, 안 하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추기경님께서 좋은 데로 갔으리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인도하신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추기경님의 죽음 앞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울었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형제, 자매님들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흘러 넘쳐 눈물바다를 이룰 정도였습니다. 한때 높은 자리를 차지하였던 전 전 대통령과, 현재의 대통령, 나라의 모든 위정자들의 줄지은 빈소방문. 각계각처의 모든 이들, 세상의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이들의 빈소방문, 외국인들과 각 종교계(스님, 목사), 군인, 경찰, 일반인들, 남녀를 불문하고 빈소방문, 할머니, 할아버지들, 학생들, 청춘남녀, 그리고 손에 묵주 알을 돌리고 기도하며, 길게 늘어선 신앙인들의 빈소방문 행렬을 저는 집 안방에 혼자 앉아 물끄러미 보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습니다.
진정 가보고 싶었습니다. 저곳에서 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체취를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내가 서울로 빈소를 찾아 간다고 하면 영미씨는 안 된다고 말할 줄 알면서도 “영미씨 서울 갔다가 오면 안 될까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서울 가면 기다리는 시간, 서울 가는 시간, 오고 가는 시간, 다 합치면 산소통이 모자라지요. 당신이 추기경님과 안면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믿겠지만, 당신 혼자 다녀오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영미씨의 화났을 때의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내 가슴과 귀에 팍 파고들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냐?”고 나도 한번 큰소리로 맞장구 쳤습니다.
“그래요. 애들과 마누라 가슴을 평생 슬프게 만들려거든 죽어요. 죽어.”
또 다시금 큰소리로 영미씨는 응답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잘 맞다가도 가끔씩 이런 식으로 다투게 되면서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산소를 아예 잠가 버리고 아예 마당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산소 나오는 것(기계)을 끊다는 것은 잠시 잠깐은 괜찮겠지만 장시간 산소가 제 몸 안에 보충이 안 되면, 제 몸 안에 산소 수치가 떨어지게 되며, 몸 안의 모든 장기에 산소가 보충이 안 되면 제 몸 안의 산소 수치가 떨어지게 되며, 몸 안의 모든 장기가 안 좋게 되고 심장에 무리가 오게 되어 결국은 산소 수치가 낮아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됩니다. 산소를 떼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깥마당에서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