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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외출

그 겨울의 외출

김홍정 (지은이)
  |  
오늘의문학사
2014-09-15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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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외출

책 정보

· 제목 : 그 겨울의 외출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6696355
· 쪽수 : 266쪽

책 소개

김홍정의 첫 번째 창작소설집. 사랑은 그 어떤 이념이나 투명한 삶의 양상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소설가의 다양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내용구성이 소설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목차

작가의 말 5

그 해 겨울 11
그 겨울의 외출 52
여자의 방 72
겨울나기 107
어떤 귀향 162
이윽고 바다에 해가 솟다 190
추홍 노인의 하루 216
꽃길에서의 만남 241

저자소개

김홍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대학교부설고등학교와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한국작가회의, 고마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작소설 『호서극장』으로 공주문학상(2020), 대하소설 『금강』(5부, 전10권)으로 2020 충청남도 올해의 예술인상 대상을 받았으며, 2024년 공주문화관광재단 <이 시대의 문학인>으로 선정되었다. 세종우수도서, 충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등에 선정되었고,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을 받은 바 있다. 소설집 『창천이야기』, 『그 겨울의 외출』, 장편소설 『의자왕 살해 사건』,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 『모 주석은 이렇게 말하였다』, 포토에세이집 『이제는 금강이다』, 시집 『레게를 부르러 가요』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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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싸락눈이 해장부터 뿌려대기 시작하더니 오정 사이렌이 울 때까지도 멈추지 않아 대목장 준비로 전날부터 술렁이던 장은 분위기가 가라앉아 달아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파수째 계속 날씨가 협조를 하지 않아 가마니전(廛)으로 출근을 한 이래 만족스럽게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입만 축내는 것 같아 사무실을 들락일 적마다 영 개운치 않았다. 삼촌은 그럴 수 있다고 격려는 하지만 사무실 미스 안의 눈치로 보아서 사무실 식구 모두가 죽을 상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제 저녁 목욕탕 이 사장의 일장 훈시로 보아 수입 배분 문제로 이 달은 좋을 게 없을 터에 식구가 하나 늘어 인교의 입장만 곤란하게 되었다.
야, 늬덜 말이여, 시장 관리가 그냥 장바닥에 나노는 난전의 세금만 거둬들이는 그런 세금쟁인 줄로만 알면 그건 잘못이여, 잉, 거 뭐냐. 시장관리다 그런 얘기여. 다시 말해 시장관리란 시장의 이모저모를 세심히 살펴서 난전에 몰려드는 상인들이 마음 편히 놓고 안전한 법질서 아래에서 정정당당히 세금내고 장사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걸 거시기, 잉, 관리다 허는 거여. 그런 측면에서 시장 관리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녀, 이젠 시장관리도 고급 인력이 필요허다 이 말씀야. 그러니 이런 시국에 우덜 모두는 시장의 발전을 도모하는 인력이라는 거여. 대통령의 말씀을 빌린다면 안 되겠지만 박대통령은 너무 훌륭하신께 그분 말씀은 어디다 붙여도 말이 되어. 해서 말인데 우덜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다 이 말이여. 그렁께 자부심을 갖고 일 허자 이런 얘기지. 야, 박대머리, 근디 너 임마, 너 요새도 그 피 같은 일전을 빼돌리면 되겄냐 한번만 더 그 짓 했다간 우리 이 사장님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니 모가지를 분질러 버릴티니께 일심분발혀. 알았어? 어라, 대답 못혀?
대머리 박씨는 삼촌의 기세에 눈만 꿈벅이고 있었다. 번번이 몇 푼 안 되는 돈을 빼돌리다가 미스 안에게 구박을 당하는 터라 아무도 그의 편이 될 사람은 없었다.
인교야, 너는 여기 오면 안 되는데 어쩌다 너까정 여길 왔다냐. 여긴 말여, 완전 개판여, 여긴 안면몰수 허고 개새끼 소릴 들어야 돈푼이나 쥐는 디여 생각해봐라 너는 그래도 고등핵교 물이나 먹었으니께 난전 지세 거둬들이는 디가 워디 말이나 되냐? 어떤 시러배 잡놈이 지 돈 아까분줄 모르고 옛수 예 있쉐다 허고 순순히 내 놀 놈이 있겄냐. 나라도 안 내놓겄다. 그래도 그런 사정 다 봐줄 수 있어? 내 코가 석잔디. 그러니 막허는 거여. 야, 임마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모든 거래에는 정당한 질서가 있다. 니가 남의 땅을 빌려서 가게를 냈다고 해 봐라 세를 내야지 안 그러냐. 우리는 이 시장을 군으로부터 1년간 불하를 받았다. 선돈 내고 1년 동안 이 시장을 경영해서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헌다. 그러니 이 시장을 이용하는 당신이 당연히 지세를 내야지 안내면 쓰겄냐. 뭐 그런 말이지. 그리고 늬 삼촌 말이여. 막말로 내 헐 말은 아니다만, 왜냐, 내야 늬 삼촌 덕에 밥술이나 얻어 먹으니께. 허지만 그러는게 아닐 때가 많여. 거 뭐냐. 응 그려 일단 말을 막혀. 내가 나이가 저보다는 열 살이나 많은디 보통 반말여. 이 새끼나 안 허면 좋겄는디 그게 통하냐. 너도 삼촌이라고 맘 편켈랑 당체 생각마라. 의 상헌다. 아예 츰부터 여기선 삼촌이 아니라 댓방이다 그리 생각허라는 말여.
날씨는 돌아설 기세를 보이질 않았다. 저녁부터는 제법 거센 눈발로 바뀌었다. 시작부터 꼬인 날씨가 입맛은 좋지 않았지만 장은 파장이었다. 장꾼들 중 더러는 설에 내리는 눈은 좋은 징조라고는 했지만 가마니전에 쌓인 가마니 더미는 오후 들어 전혀 거래가 없었다. 달구지에 집채만큼씩 싣고 왔던 그대로 풀지 않은 사람도 상당한 수였다. 막장에 남은 물건을 몰아가던 호리꾼들도 낌새가 없어 장꾼들의 표정은 낭패한 그것이었다. 갑자기 약방 쪽에서 웅성거렸다. 늘 그런 싸움이려니 했다. 사람들이 신통한 구경거리쯤으로 생각하는지 그곳으로 우르르 몰렸다.
영감이 말이나 잘해야지 내가 봐줄 거 아녀. 영감 당신, 아까 저기다 쌓아 놓았던 소곰 가마닌 워짼남? 그거 하늘에다 불 살랐남? 잔말 말고 빨랑 내셔. 몇 푼 된다고 그려. 아니 이 양반들 워디 구경 났어? 가서 장사혀 어여.
뭐여, 잔말이라고? 야. 임마. 내 나이가 인쟈 꽉찬 일흔여. 늬 놈이 지세나 받아 처먹으니께 으른도 없냐? 못 준다 임마 너헌티 줄 돈 있으면 개를 주겄다.
얼라, 이 영감탱이 말하는 것 좀 보소. 하늘같은 나랏돈 떼먹으려는 주제에 ㅤㅈㅢㅤ 종놈 부리듯 임마 점마 하네 그려. 나이 헛 잡수셨구먼. 어상반 허면 내가 적당히 받고 넘어 가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먼. 어이 시팔 대목장 팔자 드시더니 그여 대갈빡 깨지겠네.
대머리 박씨는 벗겨진 머리를 쓱 흘터내더니 영감의 얼굴 쪽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영감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파르르 떨었다. 인교는 슬쩍 구경꾼 틈을 빠져 나왔다. 으레 있는 일이었다. 장이 흥청거리면 저런 일은 웃고 넘길 일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또 아무도 말리려 생각도 안 할 것이다. 괜찮은 구경거리일뿐더러 또한 결과 또한 뻔한 것이었다. 지세 몇 푼 깎으면 그것으로 싸움은 끝날 일이기 때문이다. 난전으로 들어오는 이는 누구도 지세 없이 그냥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이 청년, 새로 들어 온 모양인디 혹시 가마니 좀 몰아갈 장꾼 좀 없을까? 내 가마니가 꽤 괜찮은데 오늘 거래가 없네. 일할 줄틴디 한번 봐주소? 나 저기 고무신 가게에 있을 팅게 한번 들려보오.
지세 허고는 별도요.
도로 가져가야 짐스럽고 운임도 안 나올 거 아녀?
글쎄, 저는 잘 몰라서 이따 박씨 아저씨께 얘기는 해 보지요. 그런데 오늘은 어째 그러네요.
한 번도 시장에 나온 지 거간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인교는 영 자신이 없는 말투였다.
어, 이 양반 좀 보시게, 박씨 수하여? 저 대머리는 안 되여. 아직 모르는구먼 대머리헌티는 내 부탁도 안 할라네. 그냥 짊어지고 가다가 제민천에 던져 버리지. 하여튼 좀 들러 보소. 그리고 난 온 장 다니는 사람은 아니고 이곳 읍내장만 보는디, 내 물건 좋은 건 다 아는 사실여. 내 것은 최신 기계로 짜는겨. 엄청 쨍쨍해요. 어설픈 손틀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난 목천리 성씨여! 이 가마니 전에선 정말 알아주는디, 좀 섭하고만. 근디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다음에라도 또 신세질 일 ㅤㅇㅡㅄ건남.
마치 인교에게 금방이라도 물건을 팔려는 듯한 기세였다. 출출했다. 지세로 거둬들인 돈은 몇 푼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샛장에 비하면 든든했다. 대머리 박씨는 싸움이 잘 해결되었는지 대단한 기세로 장꾼들 틈을 다녔다. 인교는 어깨 위에 내린 눈을 툭툭 털고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다른 쪽 장 형편이나 물어 볼 셈이었다. 난로불이 제법 좋았다. 갈탄을 비벼 넣어 보기 좋게 달구어진 난로 덕분에 합판으로 설치한 간이 사무실이지만 제법 훈훈했다.
화보차 한 잔 할래요?
미스 안은 막컵에 주전자의 물을 따랐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이내 사무실에 들어와 벌써 이 시장 안에선 제법 이름께나 알려져 자신과는 격이 다른 위치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늘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줘 고마워하는 편이었다.
싸전 잘 된데요? 대목인데?
공연한 소리였다. 대목은 가마니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장 안에서 그래도 싸전이 중심이었다. 소전이야 새벽에 이미 끝나 버렸으니 그렇고, 그냥 물어 본 말이었다.
싸전이 날씨 타나요? 늘 그렇지. 잘 되는지 아무도 들락이지 않네요. 그건 그렇고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누구 시키려 했는데 가마니 괜찮은 거 있나요? 누가 부탁하던데, 떨이할 거 있으면 한 사오백장 몰아달라던데, 인교씨 거간 안 해봤죠? 아까 목천리 성씨 들렸던데 혹시 인교씨한테 안 갔던가요? 사무실로 들렸길래 인교씨한테 부탁하라고 했었는데, 그 아저씨 물건 괜찮아요 근데 좀 비싸, 내가 말했다고는 하지 말고 그냥 흥정 붙여 봐요. 다 그렇게 배우는 거지 누구는 별 수 있었나요? 조금 시간 더 끌고요.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일할은 더 내려갈 걸, 아마 대목이니 돈을 사야 할 테니, 그리고 이 얘기 박씨 아저씨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요.
밖은 함박눈으로 바뀌어 퍼부어댔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주섬주섬 싸는 모습이 더러 보였지만 아직 대부분 장꾼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특히 골목 안에 자리한 광주리에 반찬거릴 담아 온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끼니도 거른 채지만 저녁 찬거릴 생각하면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이었다. 이따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 가을까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이 시장으로 찾아 온 이후론 정리가 끝났을 것이었다. 자퇴든 퇴학이든 결정이 났을 것이다. 한 해만 더 다니면 졸업이란 사실을 담임선생님은 꾸준히 설득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정해진 순서일 뿐이었다. 어쩌면 미련을 버리라는 삼촌의 말이 옳을 거란 생각이 앞섰다. 현실이었다.

오늘 어땠어요. 술은 처음 먹나 봐요? 내 생각이 맞을 거 같아요. 인교씨는 이 시장이 정말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예요. 사실 나하고도 이 시장이 어울린다고는 생각 않지만, 난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편이니.
어울리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형편이 그리 되었으니 하는 것이지 달리 생각할 것이 없어요. 그리고 어디 취직자리도 아직은 마땅하지 않고, 다 공부해서 대학 가고 하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맘같이 어디 됩니까. 살다보면 수가 생기겠지요.
근데 인교씬, 무슨 과목을 좋아 했어요?
예? 갑자기 그건.
그냥, 물어 본 거예요. 난 과학을 좋아했어요. 과학 선생님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우리 반애들이 서로 먼저 대답하려고 다들 난리였어요. 허기를 부렸나.
예, 전 체육을 좋아해요.
체육요? 에이 멋없다. 뭐 미술이나 영어나 그런 거면 좋을 텐데.
체육이 어때서요? 전 장거리를 잘 하거든요. 이를테면 마라톤 같은 거, 뭐 그런 거죠.
말장난이었다. 술을 마신 탓인지 스스로 말수가 많아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잘 절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무슨 잘못이었다는 듯이 가끔씩 무슨 얘긴지도 모르는 그런 류의 얘기에 빠져 그냥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댔다. 속이 후련했다. 강둑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끝없이 말을 해댔다. 키에르케고르의 ‘아브라함을 찬양함’이란 논문을 말하였다. 미스 안은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브라함을 아시나요? 믿음의 조상 말입니다. 성서적이라고요. 성서적이라는 말은요, 성서에 쓰인 뜻대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말입니다. 백 살에 아들 이삭을 얻었어요. 아시죠? 백 살, 그러니까 인간의 힘으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그 아들을 잘 키우고 있었는데, 아들 이름은 이삭예요. 벼 이삭 그런 게 아니고, 영어로 아이에스에스에이시 그런 알파벳으로 쓰는 이삭 그 이삭을 죽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그냥 칼이나 약을 먹이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신이 지정하는 산. 모리아 산이죠. 그리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각을 떠서, 각 뜨는 거 아시죠? 왜 제사 지낼 때 닭 다리 자르고 목 자르고 해서, 이렇게 해서 상위에 올려 놓잖습니까 징그럽다고요? 그건 안 징그러운거죠. 그건요 성스러운 거예요. 왜냐? 위대한 신을 위한 제사니까. 그런데 그 산까지는 하루가 아니고 삼일 낮과 삼일 밤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모리아 산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갔냐고요? 갔지요. 아브라함이잖습니까. 아브라함요? 아까 얘기 했잖아요. 믿음의 조상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나귀에다 장작을 싣고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어요. 죽였냐고요? 에이 죽이지 않았지요. 신이 그렇게 하게 두진 않죠.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해피엔딩이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춘향이나 흥부나 그들의 삶은 다 해피엔딩예요. 세상의 일을 적어 논 모든 것들은 다 해피엔딩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라도 다를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미스 안이라고 다를 리는 없어요. 예? 왜 현실은 고통스러우냐? 그거야 뻔한 거 아닙니까.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가 모리아 산까지 도착하기까지 삼일 낮과 삼일 밤이 걸렸는데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백 살에 얻은 아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 그러니 해피엔딩의 과정은 고통이지요. 그렇겠지요.미스 안이 말하는 고해도 극락의 세상으로 가는 해피엔드로 가는 고통이니까요. 글쎄요. 모든 사람의 일이 다 해피엔드는 아니겠죠. 만약에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안 가고 신의 말을 어기고 다른 곳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도망쳤다면, 아브라함은 평생 신의 말을 어긴 두려움으로 고통 받다가 결국 죽겠죠. 또 신도 그래요 괜히 신입니까? 신은 다 알아요. 그러니 도망 가 봤자 소용이 없고, 또 도망 가게 두지도 않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예? 그래서 학교를 그만 뒀냐고요? 신이 정해 준 운명이냐고요? 그럴 리가? 내가 무슨 아브라함인가요? 그는 믿음의 조상이니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정해 준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도 신은 신이네 우리 아버지는 조상신이니까. 제사 지낼 때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쓰니까 신은 신인 셈이지요. 현고학생부군신위가 뭐냐고요? 아 그런 거 있어요. 지방 말입니다. 그렇죠. 여자들은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리고 세상일을 다 알 필요는 없어요. 복잡하니까. 예? 우리 삼촌요? 신의 동생이니 신이냐고요? 글쎄 그런가요? 우리식으로 따지면 신이네요. 컥.
술은 좀처럼 깨지 않았다. 미스 안은 삼촌의 얘기에 대해서 심각했고, 인교는 무척 재미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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