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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7482711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1부 아낙
박순돌
나비
아낙(Anak)
동안(童顔)
연인과 싸울 때에는 부소산에 가라
어느 날 밤의 꿈
피그말리온 효과
거목은 저절로 태어나는가?
새끼손가락 인재론
2부 개밥바라기를 둘러메고
눈을 맑게 하는 나무
네 발 가진 인간
개밥바라기를 둘러메고
삼(三)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야
곁가지를 치라
목련이 필 때
물론[水論]
백제의 미소를 찾아서
3부 야구 단상
그리운 사람들
그릇장이
야구 단상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선암사에 가거든
세심(洗心)
부적이 된 스마트폰
인간도처유고수(人間到處有高手)
안개
밤 이야기
4부 대부인과 함께
1박 2일
군대와 임신
대조사 가는 길에
포룡정 연꽃이야기
두 노거수 이야기
손가락을 베이고서
대부인[竹夫人]과 함께
함양 상림에서
세상의 화장지가 되어
목욕과 아들
5부 병영편지
꽃잎으로
선물
아주 특별한 데이트
여객선에는 선장이 없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튼튼한 배도 물에 띄워야
볼수록 매력 있어
공부는 놀면서 해야
상사의 지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병영 편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고교 시절 내게는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있다. 70∼80년대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필리핀 국민가수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가 부른 ‘아낙(Anak, 아들)’이 그것이다.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이라는 뜻의 이 노래는 부자지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곡이다.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마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지녀, 등하교할 때 전파사나 레코드점 부근에서 자주 듣곤 했던 나의 애청곡이기도 하다.
.......
이곳 부여에서 남도 끝 진해의 해군교육사령부까지 내려가는 데는 한나절 이상 소요되는 머나먼 여정이다. 가족들이 참석한 입영환영행사를 연병장에서 마친 뒤 바리케이드로 막혀있는 길을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들의 두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그러고는 주먹을 불끈 쥔 오른손을 추켜세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파에 떠밀려 빨려 들어가는 녀석의 마지막 모습에 꽈리처럼 부풀어 있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아, 이것이 정령 부도(父道)란 말인가.
‘암만 생각해도 아직은 제 어미 품 안을 지켜야 할 열여덟 난 앳된 얼굴인데!’
며칠 뒤에는 녀석의 체취가 묻은 옷가지와 신발들이 집으로 돌아오리라, 그날만은 이 젖은 눈을 아내한테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 어쩌면 오늘은 진정한 나라 아빠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을 혹독하게 치러야 하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올라가는 내내 조수석 아내는 말이 없다. 창 쪽으로 비스듬히 몸을 가눈 채 이따금씩 어깨만 들썩거릴 뿐. 버튼을 누르자 아길라의 애잔한 목소리가 영혼(英魂)처럼 속가슴에 파고들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구름 사이로 청명한 가을 하늘이 숨겨져 있다. 천진무구한 아들의 얼굴이다.
명후년 이맘때에는 김연아만큼 예쁜 아낙을 데리고 현관문을 밀치며 환하게 들어서는 내 아들-아낙(Anak)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