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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정치비평/칼럼
· ISBN : 9788957491287
· 쪽수 : 112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길 위의 삶으로 잉태된 소명 … 4
화보 … 9
부대변인으로서 성남을 위한 활동 일지 … 13
비전 … 19
6대 정책목표 … 20
10대 정책과제 … 21
1. 6대 정책목표 개요 … 23
1) 재원확보(호화청사 매각 등) … 25
2) 21세기형 첨단 주거환경 조성 … 26
3) 지속적인 좋은 일자리 창출 … 27
4) 자립도시 완성 … 28
5) 교육·문화도시 완성 … 30
6) 지역복지공동체 구현 … 32
2. 5대 추진방향 … 35
3. 10대 정책과제 세부 … 39
1) 본시가지 재개발과 신시가지 리모델링 및 판교 기반시설 마련 … 41
2) 지속적인 양질의 일자리 1만개 창출 … 42
3) 도시 활성화를 통한 자립도시의 완성 … 44
4) 교육의 세계화, 특성화, 평생학습 구현 … 46
5) 복지예산 증액 및 보편적 복지 구현 … 47
6) 시민참여행정 구현 … 49
7) 수도권 전철 네트워크의 중심지 … 51
8) 국제 관광도시 구현 … 53
9) 시민의 삶의 질 향상(문화·예술·체육) … 56
10) 성남·광주·하남 광역시 추진 … 58
4. 부문별 세부정책 … 61
지역경제 활성화/비정규직 보호 … 63
교육환경개선 … 66
시민참여행정 구현 … 68
지역복지사회 만들기Ⅰ(아동, 어린이) … 70
지역복지사회 만들기 Ⅱ(청소년) … 72
지역복지사회 만들기 Ⅲ(어르신) … 73
지역복지사회 만들기 Ⅳ(장애인) … 75
지역복지사회 만들기 Ⅴ(저소득층) … 76
도시기반시설 확충 … 77
지속가능한 도시환경 만들기 … 79
시민의 삶의 질 향상(문화·생활체육) … 83
5. 지역별 세부정책 … 87
지역 공통공약 … 89
수정·중원구 … 90
분당구 … 92
6. 혁신 정책과제 … 99
1) 시민참여/민주행정 … 101
2) 지역복지사회 구현 … 102
3)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 103
4) 교육, 문화, 예술 … 104
5) 친환경 녹색도시 … 106
저자소개
책속에서
길 위의 삶으로부터 잉태된 소명
돌투성이 거친 땅, 경북 안동 깡촌마을. 서러움과 배고픔만 기억되는 아픈 땅 그곳이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보리 좁쌀 한 줌씩 넣고 밥도 아닌 죽을 끓이던 저녁 무렵 어머니는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날이 22일인지 23일인지, 고생으로 뼛골이 빠져 정신이 없으시던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모릅니다. 9남매의 일곱째,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머니의 그 지독한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을까요? 아버지는 대학중퇴라는 당시로는 거창한 학력을 가졌지만 쌀도 돈도 되지 않는 동네일에만 열중하셨습니다. 가족만을 위해 사는 아버지, 허기진 내 배를 채워줄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 결국 고향을 떠났습니다. 1976년, 초등학교를 마치자 떠나 새롭게 발 디딘 곳, 상대원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이었습니다. 큰길가에 집 몇채가 드문드문한 진창길… 그것이 성남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기억이고 끝없는 고통의 길을 예고했습니다. 중학교도 진학 못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은 목걸이공장이었습니다. 13살 꼬마노동자로 잔심부름을 하며 납땜질이 손에 익을 무렵 사장은 석 달치 월급을 떼먹고 야반도주했습니다. 이때부터 ‘동마고무’, ‘아주냉동’, ‘대양실업’, ‘오리엔트’ 등 상대원 공단의 공장을 전전하며 기술을 배웠지만 돌아온 것은 수차례 산재사고와 후유장애였습니다. 동마고무에서는 모터벨트에 왼손이 감기고, 오리엔트에서는 신나에 후각이 마비되었으며, 대양실업에서는 프레스사고로 왼팔이 부서져 군대도 못 가고, 지금도 팔을 제 기능을 못하는 6급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2년간 다닌 사법연수원 시절은 크나큰 변화의 물결이 내 삶을 바꾼 시기입니다. 민주화 물결은 세상을 돌고 돌아 사법연수생들에게도 몰려왔습니다. 사법연수원 사상 처음 ‘노동법학회’를 만들고, 무변촌 법률봉사활동을 기획하며,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써서 서명받아 발표했습니다. 어렵게 얻은 ‘고시합격생’의 지위를 잃을 수 있는 무모한 짓이었지만 더 이상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소명을 느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판검사를 골라 임관할 수 있었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판검사를 버리고 가난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1년, 아니 한두달만 판검사 노릇해도 ‘판검사출신 변호사’로 손쉬운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기득권 집단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노동인권변호사로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뛰며 그들의 인권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길거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가장 쓸모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야말로 ‘꼬마노동자’로 뼈아픈 시절을 보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