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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정치망명자 김덕홍의 회고록)

김덕홍 (지은이)
  |  
집사재
2015-10-20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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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주의자이다

책 정보

· 제목 :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정치망명자 김덕홍의 회고록)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 ISBN : 9788957751664
· 쪽수 : 399쪽

책 소개

정치망명자 김덕홍의 회고록. 어떻게 황장엽 비서를 설득하고 동행해서 남으로 정치망명하게 되었는지, 황장엽과 북에서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넘어와 왜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는지, 대한민국에서 어떤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하는 것들을 전한다.

목차

머리말

1장 가족이야기
아버지의 가훈
어릴 적 포부
어머니의 뒷모습
어머니의 신통한 명언들
아내 박봉실

2장 사회생활의 시작점에서
출신성분의 장벽
김일성공산정권의 부조리를 깨쳐준 군복무
당 역사연구소의 신의주학생사건 파일 중에서

3장 20년간 몸담았던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대학 학생, 대학교무부 보조부원
북한의 대학입학생 선발 및 대학졸업생 배치 시스템
김일성의 첫 표상, 김정일의 첫 인상
1974년 이전과 이후의 종합대학 풍경
1976년 김일성종합대학 대열정비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북한대학생들의 6개월 현역 군사복무
김일성의 자식, 조카들

4장 김일성족속 신격화에 얽힌 비공개이야기
홍명희와 김일성의 뱃전담소 사진의 진실
사람 하나 지도자로 만드는 거, 일도 아니더라

5장 노동당중앙위원회에서
최고권력기구 노동당중앙위원회에 들어가다.
북한 당중앙위원회의 조직체계와 각 부서의 직능
김일성왕조실록의 보고(寶庫) 노동당 당 역사연구소
1973~1993년 김일성
평생 김정일을 얽어맨 세습지도자 콤플렉스
김정일의 비상식, 비정상적 인성
김일성족속이 수립한 거대한 공산차별국가
북한의 3계층 64부류 주민성분제도 분류도

6장 김일성족속이 망친 북한경제
개탄스런 김일성의 무지와 오기
인민경제를 파산지경에 몰아넣은 김정일 문서정치
70년대에 이미 인민경제를 포기한 김일성족속
승용차와 김정일
견본경제로 김일성을 지독하게 기망한 김정일
대외경제무역 관련 일화들

7장 대남적화야망에 얽힌 김일성족속의 한
김일성이 회고한 성시백
김일성과 이선실
최용건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김일(박덕산)은 서울에서 골동품 수집만 하다가 후퇴했다
탱크 수십 대에 서린 김일성의 한
아식보총 10만정에 서린 김일성의 탄식
카츄샤 포 10문으로 정전협정을 마무리하다
박정희한테 속았다는 김일성
전두환에게 넘어갔다는 김정일
김정일의 김일성 참회교시 삭제 지시
일본인 납치도 남조선혁명 때문에 했다는 김정일
남편이 빨리 죽기를 기도하는 평양의 대남가족들

8장 김일성족속의 범죄야망의 산물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노동당이 평화통일 목소리를 높일수록 전쟁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
“나쁜 놈들, 밥만 축내고 간다”
내 평생소원이 풀리는 날
“연막전술, 저팔개 외교로 핵도 사수하고 실리도 챙겨라”
일본을 사정권에 넣으면 ‘금(金) 방석’에 앉혀주겠다
남조선부품과 적개심
중거리로켓과 금(金)방석
“이것만 개발하면 우리 국방과학자들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반미 국가와 단체, 분쟁지역에 다 뚫고 들어가 팔아야 한다”

9장 김일성의 말년 스토리 몇 가지
무정은 종파가 아니다
현무광은 일제 때 평천리 병기수리소 기술자였다
전병호는 나와 김정숙이 키운 사람
군수공장이 다 멎어도 탄(彈) 공장만은 돌려야 한다.
김일성이 마지막으로 본 인민의 모습

10장 김일성 급사 후 약 1년간의 김정일
김일성의 금고이야기
내게서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
슬픔을 혁명적 낙관으로 바꿔라
김명화는 말년에 김일성께 심려만 끼쳤다
“농업대회? 그거 걷어치워라!”
“누가 그 여자 오빠야!”

11장 정치망명의 길에 오르다
정치망명을 결심하다
1997년 2월 12일 정치망명전야에
북녘에 두고 온 염원
동지들 생각

12장 지금에야 이해되는 황장엽, 그리고 그리움
조선(造船)한 사람이 폐선(廢船)해야 한다!
정치망명 초기의 논쟁
음산한 해의 음산한 순간들
형님에 대한 평가는 오직 북한인민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개인이 아니다
스승 김종성선생의 충고
지금에야 이해되는 황장엽, 그리고 그리움

13장 여권발급을 위한 법정소송 4년
북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방문을 허용할 수 없다
권력의 피조물들
국가정보원의 사악한 ‘개인 신변안전보장각서’ 요구
국가정보원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공모결탁
나는 끝까지 기다렸다

14장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이다
소중한 만남들
헬렌 루이스 헌터 여사와의 인연
스티븐 솔라즈 전 미하원 의원과의 인연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 일행과의 만남
민주주의면 됐지, 꼭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해야만 하는가?
명예회복

15장 비운의 세습지도자 김정은
신격화될 수 없는 김정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김정은
주민통제시스템을 회복할 길이 없는 김정은
경제를 회생시킬 길이 없는 김정은
핵, 미사일 때문에 종당에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될 김정은
로드먼이 첫 해외파트너, 외국의 벗이 된 김정은
김일성환생 이미지로 북한을 이끌어야 하는 불우한 김정은

저자소개

김덕홍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9년 1월 22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출생 경력 1958.9~1961.8. 조선인민경비대 복무 1961.9~1965.8.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졸업 1965.9~1981.9. 김일성종합대학 교무부 지도원 및 책임지도교원 1981.10~1994.3. 노동당중앙위원회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서기(당중앙위원회 부과장급) 1994.4~1997.2. 노동당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 1997년 2월 12일, 대한민국 정치망명 1998~2003.8.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상임고문 사단법인 탈북자동지회 회장 2014. 9.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비상근 고문
펼치기

책속에서

속 깊은 아내는 내가 평양을 떠나던 1997년 1월 25일 아침에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당시 우리의 정치망명 계획이 그해 4월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음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아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평양을 떠나왔다.
그리고 그날 북한을 떠난 나는 우리의 정치망명이 불시로 앞당겨지는 바람에 다시는 아내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내 아내 박봉실은 우리의 정치망명이 공포되던 날 자결을 택했다.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속대가 여간 아니게 굳은 내 아내는 그것으로써 곧 엄습할 어마어마한 고통과 굴욕과 두려움에 항거하고자 했을 것이며,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절하게 감내해야 할 가장 큰 빚과 살을 저미는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려 했던 건 아닐까.
나는 꼭 그렇게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
그래서 아내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더더욱 아프게 한다.


“인민무력부를 강동에 내보내면 그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당중앙’은 항상 인민무력부를 옆에 꼭 끼고 있어야 한다.” (‘당중앙’이란 말은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붙여준 수령후계자 호칭이었다.)
김일성의 훈계를 받은 김정일은 즉시 지방소개 예정 통고로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인민무력부를 달래기 위해 ‘평양시 안에 보다 웅대한 인민무력부 청사를 건설’이라는 방침을 하달하고 전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도록 조치했다.
아울러 김일성의 훈계를 깊이 새겨들은 김정일은 1976년 5월에 임명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를 그가 죽는 날까지 거의 19년간 절대로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홍명희선생에게는 홍귀원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는 1956년경에 김일성의 처 김성애의 개인비서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홍귀원은 김성애가 김일성의 막내아들을 임신하고 있는 기간에 김일성과 관계해서 그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홍귀원은 과거에는 뼈대 있는 충청양반가문의 후손이었고, 당시는 북한사회학계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아버지 홍명희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임신해 있은 전 기간 심한 괴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며 출산하는 날까지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던 홍귀원은 결국 김일성의 자식을 낳던 도중에 아이와 함께 사망했다.
홍기문은 연신 손등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으면서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고는 다음과 같은 한탄의 말을 내뱉었다.
“그 애도 불쌍하고……, 슬픔이 크면 빨리 늙는다고 했던가? 아버지도 그 일을 겪은 뒤부터는 폭삭 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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