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57983492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1. 너무 빠른 봄
2. 아직 이른 봄
3. 없는 사람
4. 처음
5. 수신 거부
6. 봄바람
7. 그들만의 리그
8. 꽃가루 수분
9. 낙오
10. 우연과 필연
11. 날카로운 첫 키스
12. 스무 살
13. 편력
14. 그 모든 것 이전으로
15. 양지의 그늘
16. 탯줄을 끊고
17. 터널
18. 땅 멀미
19. 해후
20. 손가락 한 개의 힘
21. 얼음이 빛나는 순간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갑자기 엉망인 성적표로 남은 지난 1년이 허망하게 여겨졌다. 지오는 대학에 들어오면서 아예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어쩌면 대학 합격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지오가 보기에 부초 같기는 같은 과 신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운이 나쁘거나 실수해서 왔다는 아이들은 학교에 뿌리 내릴 생각 대신 반수나 편입으로 학벌 세탁할 생각들만 하고 있었다. 성공률이 희박한 목표나 꿈은 자기 위안에 불과할 뿐이다. 열패감에 잠겨 시작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지오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오가 입학하기도 전부터 학점 잘 따서 상위권 학교로 편입하기를 바랐다. 1학년 성적에서 그 가능성이 사라지자 아버지는 다른 목표를 세워 놓고 지오를 닦달했다.
지오는 기둥에 비스듬한 자세로 기대앉은 채 기타 치는 시늉을 했다. 그는 무릎 위에 기타가 놓인 양 허공에서 코드를 잡고 줄을 튕겼다. 기타 잘 치는 형을 둔 석주가 보기에 능숙한 손놀림이 시늉만은 아닌 것 같았다. 빈손으로 저러는 걸 보면 기타 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왜 동아리에 가입을 안 했는지 이상했다. 지오에겐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면모가 많았다. 어쨌거나 기타 선율은 석주 마음속에서도 울려 퍼졌다. 은설이 움직이는 대로 음표가 그려졌다.
은설은 절벽을 내딛는 산양처럼 여기저기 가볍게 뛰어다녔다. 석주에겐 은설이 점차 꽃뿐만 아니라 마치 새나 나비,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 같은 풍경의 일부로 보였다. 살아 있는 생명, 그 덩어리 같았다. 힘들고 지쳤을 때 은설을 보면 저절로 힘이 솟을 것 같았다.
(중략)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손을 흔드는 은설이 사이드미러 속에서 멀어졌다. 석주는 은설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과수원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석주는 은월 농원에 무엇인가 빼놓고 가는 기분이었다. 이유도 없이, 능선 위로 번지는 노을처럼 슬픔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