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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3005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악몽과도 같은 해질녘
[제1장] 소꿉놀이 밀월
[제2장] 달콤한 선율의 유혹
[제3장] 드러난 비밀
[제4장] 사로잡힌 어린 새
[제5장] 보석함에 숨겨진 진실
[에필로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
작가 후기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화장실에서 나온 랄프는 셜리의 존재를 의식하지도 않고 갑자기 파자마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꺄악! 갑자기 벗지 마.”
당황해서 등을 돌리자 이상하다는 듯이 랄프가 물었다.
“뭘 새삼스럽게. 부끄러워 할 사이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남매이기 때문에 랄프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셜리는 이런 상황이 되면 침착할 수가 없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가 필요하잖아?”
랄프의 긴 팔다리와 다부진 가슴팍. 그리고 단단한 울대뼈가 보이면 심장 고동이 높아지고 숨이 가빠졌다. 친동생인데도 마치 이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동요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냉정해질 수가 없었다.
“재미있는 농담이네. 셜리랑은 거울을 보는 거나 마찬가진데.”
사람 기분도 모르고 랄프는 가볍게 지껄였다. 허나 셜리로 말하자면 그의 목소리에 섞여 귓가에 들려오는 옷감 스치는 소리에마저 낭패감을 느끼며 숨결이 흐트러질 판국이었다.
이것은 사춘기 특유의 마음의 동요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도 이런 건 그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 친동생에게 마음이 흔들린다니,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약에 부모님이 살아계셨다 해도 고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얘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셜리가 살짝 한숨지었을 때 등 뒤에서 느닷없이 팔이 둘러졌다.
“꺄악!”
등에 와 닿은 단단한 가슴의 감촉에 움찔 하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잘 단련된 남자의 몸이다.
게다가 키도 랄프 쪽이 훨씬 컸다. 어렸을 때는 랄프 쪽이 몸집이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랄프의 턱이 셜리의 머리에 얹힐 정도다. 어느 틈에 이렇게 체격 차가 난 걸까?
“셜리.”
그가 뜨거운 숨결과 함께 귓가에 이름을 속삭였다.
“……뭐, 뭐야?”
랄프의 쿡쿡 웃는 숨결이 전해져 와 점점 그 자리에 서 있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셔츠를 걸쳤으니까 단추를 채워줘.”
그는 칠칠치 못하게 앞섶이 벌어진 연미복 차림으로, 마치 왕자라도 되는 양 부탁해 왔다.
뭐든지 솜씨 좋게 해치우는 랄프가 옷 갈아입는 것만은 서툴렀다. 때문에 옛날부터 셜리가 도와주었다. 덕분에 랄프는 혼자서는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청년으로 성장해버렸다. 벌써 열일곱 살인데도 그는 단추를 채우거나 넥타이를 맬 줄 몰랐다.
셜리가 ‘어른이 됐으니까 스스로 하도록’이라고 말해도 랄프는 혼자서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어느 한쪽이 결혼을 해서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이다.
“코바늘뜨기를 어깨너머로 배워도 나보다 잘 하면서, 어째서 옷을 못 입니?”
어린 시절, 셜리가 어머니에게 배우며 필사적으로 연습해서 가까스로 할 수 있게 된 코바늘뜨기를 랄프는 옆에서 구경만 하고도 능숙하게 해냈다. 그리고 경악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테이블 크로스를 단 며칠 만에 완성했던 것이다. 그때는 분해서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옷 입기는 스스로 못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글쎄? 어째서 못하는 건지 해명해준다면 나도 혼자 옷 입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대신 오늘 수업에는 지각하게 되겠지만. 아하하.”
“어휴. 학습의욕이란 게 조금도 없는 거니?”
랄프의 팔을 뿌리치고 어쩔 수 없이 옷 입는 걸 도왔다. 더는 불평을 하는 건 그만뒀다.
아무리 말해도 랄프는 스스로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 이대로 있으면 그의 말대로 지각하여 주변에 피해를 줄 뿐이다.
“이제 단추 정도는 스스로 채웠으면 좋겠어.”
미래에 대한 걱정에 한숨이 나왔다.
“필요 없어. 내 곁에는 쭉 셜리가 있을 거니까.”
낙관적으로 내뱉은 랄프는 체인을 클립으로 단추에 고정하고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클립을 다룰 수 있으니 단추 채우기 정도는 간단한 일일 터였다.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 있으니 어리광을 피우듯이 미소 지었다.
“그렇지? 누나.”
꼭 이럴 때만 누나라고 부른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랄프는 셜리가 어리광에 약하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하다.
“못 말린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