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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5467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ACT 1
ACT 2
ACT 3
ACT 4
ACT 5
ACT 6
ACT 7
ACT 8
ACT 9
에필로그
후기
책속에서
짧은 여름이 끝나 가고 있었다.
뺨을 간질이는 바람에는 가을의 기색이 감돌았다. 그 선선함에는 해방감이 있는 것 같아서 플로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곱 개의 바다를 통합한 이 대제국에서 본국의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사교의 계절에 제도(帝都) 런던에 모인 귀족들은 슬슬 영지로의 귀환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다.
―기뻐. 아버지는 언제 돌아오실까?
상감 세공한 테이블 위에 손에 든 책을 놓고 플로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광대한 녹음에 둘러싸인 플로라의 생가이자 콩코드 백작의 컨트리 하우스인 허드슨 성과 달리 이곳 런던 타운 하우스의 창문에서 보이는 것은 붐비는 제도의 거리였다. 지나가는 마차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쩐지 바빴다.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공원도 얼마든지 있지만 저택에서 녹음이 보이지 않는 것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대단한 사교가(社交家)로 알려진 부모님과는 달리 플로라는화려한 곳도, 사교계도 어렵게 느껴졌다. 녹음에 둘러싸인 영지의 저택이 그리웠다.
이런 플로라도 열일곱 살에 사교계 데뷔는 마쳤다. 기다란 치맛자락이 붙은 이브닝드레스로 몸을 장식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꽃다발을 든 채 여왕 폐하의 대리이자 빛나듯 아름다운 황태자비 전하에게 인사를 한 것은 작은 시련이었다. 백작가에 태어난 플로라에게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지만
고생해서 무사히 사교계 데뷔를 마친 뒤에도 그다지 파티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거절해 왔다.
게다가 아무리 초대장이 와 봤자 그것은 플로라의 신분과 아버지의 교우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는 사실 자신이 그들의 세계에 가치 없는 존재라고 인식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교계가 어렵다기보다 오히려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주 조금 타인이 두려웠다.
허락된다면 줄곧 아버지의 영지에 박혀 있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교의 계절 동안에는, 주인이 부재중이고 시종도 줄어드는 컨트리 하우스에 플로라가 홀로 남겠다는 어리광을 들어줄 리 없었다. 파티에 결석만 해도 혼기가 늦어진다며 어머니인 백작 부인에게 혼이 날 정도이니.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
플로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교회에 뛰어 들어가 수녀라도 되어 버릴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플로라는 그렇게까지 결심하지 못했다.
귀족 사회에 플로라가 있을 곳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직 이 세계를 뛰쳐나갈 용기가 없었다.
미련은 연심이다.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 마음이라도 그림자 뒤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존재가 플로라에게는 있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되뇌듯 플로라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렉싱턴 자작과 언니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분명히 나도 포기할 수 있을 거야.
자신에게는 도저히 손이 미치지 않는 아름다운 귀공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플로라는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플로라가 아련하게 마음에 품은 렉싱턴 자작 오거스터스는 한 살 위의 언니 플로렌스의 약혼자였다.
플로렌스는 사교계의 장미, 레이디 로즈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었다. 유서 깊은 집안인 올드베리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사교계 내에서 동경의 대상인 렉싱턴 자작과 어울리는 숙녀였다.
자매지만 플로라와는 달랐다.
렉싱턴 자작은 예전부터 콩코드 백작가에 드나들었다. 먼 혈연이기도 하여 부모님과도 친밀했기 때문이다.
어느 불행이 찾아온 뒤에도 변함없는 태도로 대해 준 렉싱턴 자작에 대한 연심을 플로라는 줄곧 가슴 속에 감춰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플로렌스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플로라 자매의 아버지인 콩코드 백작은 과거에 사교계 제일의 댄디 가이라 불린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런던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좋아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아버지는 많은 귀부인의 사랑을 받는 모양인데, 어머니인 백작 부인은 속이 편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점이 어머니의 자랑거리라는 것도 플로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플로렌스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넘쳤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화술과 행동거지, 그리고 살짝 요염한 미소는 사교계의 꽃이라는 애칭에 걸맞았다.
렉싱턴 자작이 플로렌스에게 구혼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플로라는 렉싱턴 자작을 동경했지만 처음부터 플로렌스와 겨룰 마음은 없었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지금은 동경하는 두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뒤에서 조용히 기도할 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출석한 뒤에 수녀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할 셈이었다.
수도원에 들어가 사회에 봉사하며 기도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인생이 아닐까……. 깊은 생각에 잠긴 플로라는 발소리를 알아챘다.
돌아보자 언니인 플로렌스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