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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측천무후

(중화제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우지앙 (지은이), 권용호 (옮긴이)
  |  
학고방
2011-05-31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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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책 정보

· 제목 : 측천무후 (중화제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88960712034
· 쪽수 : 404쪽

책 소개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일개 여성이 지존의 자리에 올라 세상 모든 남자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무측천, 고금을 뒤흔들며 눈부시게 빛나는 이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는 중화제국의 역사에 진정한 기적을 만들었다. 이 책은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 측천무후의 일대기로, '황후의 길'부터 '이씨 당나라로의 복귀'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서 언
본서에 나오는 唐代 제왕과 연호
무측천 가계도

제1장 황후의 길
제1절 재인(才人)으로 입궁하다
제2절 사랑을 고백한 시[여의낭(如意娘)]
제3절 애교로 황제를 미혹시키다
제4절 피비린내 나는 궁정
제5절 황후 왕씨를 폐위하고 무씨를 세우다

제2장 천후가 되다.
제1절 조정을 숙청하다
제2절 황후가 되다
제3절[성씨록]을 편찬하다
제4절 도성을 옮기다
제5절 전쟁을 멈추고 백성을 풍요롭게 하다
제6절 두 명의 황제가 국정을 맡다
제7절 천후가 권력을 독단하다

제3장 비상시국
제1절 천황의 죽음
제2절 조정에 나가 섭정하다
제3절 황제를 폐위하고 아들을 살해하다

제4장 투쟁
제1절 서경업의 반란
제2절 배염의 투옥
제3절 종실을 치다
제4절 무씨일가

제5장 측천황제
제1절 여황제(女皇帝)
제2절 종교의 교리로 백성을 가르치다
제3절 용병술
제4절 권력을 휘두르다
제5절 혹리

제6장 이씨 당나라로의 복귀
제1절 누가 천자의 후계자인가?
제2절 이씨와 무씨를 함께 우대하다
제3절 남창이 화를 불러오다
제4절 여황제의 말로

저자소개

우지앙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인민대학(人民大學) 역사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국역사에 정통하며 특히 중국 역대 제왕들에 대해서 조예가 깊다. 이와 관련된 여러 편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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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역서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와 세종도서(학술부분)에 네 차례 선정된 바 있다(2001년, 2007년, 2018년, 2020년).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문학 1≫, ≪아름다운 중국문학 2≫, ≪중국문학의 탄생≫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역대곡률논선≫, ≪송원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그림으로 보는 중국 연극사≫, ≪초사≫, ≪장자내편 역주≫, ≪꿈속 저 먼 곳?남당이주사≫(공역), ≪송옥집≫, ≪서경≫, ≪한비자≫, ≪경전석사역주≫, ≪한비자 1∼3≫, ≪수서 열전 1∼3≫, ≪수서 경적지≫, ≪수서 지리지≫, ≪수서 제기≫, ≪수서 백관지≫, ≪수서 식화지·형법지≫, ≪수서 예의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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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중화제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일개 여성이 지존의 자리에 올라 세상 모든 남자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무측천, 고금을 뒤흔들며 눈부시게 빛나는 이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는 중화제국의 역사에 진정한 기적을 만들었다.
그녀는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전무후무하게도 통치 집단의 최고인 왕좌에 앉아 천하를 호령하였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장과 학식이 뛰어난 문신들은 그녀의 황관 아래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는 반세기 동안의 정치인생에서 당 태종의 “정관(貞觀: 627~649)의 치(治)”[당나라 2대 황제 이세민(李世民)의 치세시기로, 안으로 위징(魏徵)ㆍ방현령(房玄齡) 같은 명신들의 보좌로 태평성세를 구가했고 밖으로 돌궐과 토번 등을 정벌하여 당나라의 기틀을 놓은 시기…옮긴이]를 발전시키고, 당 현종 시기의 “개원성세(開元盛世)”[개원(開元)은 당 현종의 연호…옮긴이]에 기초를 놓았다. 대당제국은 그녀로 인해 더욱 번성하였고, 대당의 백성들은 그녀로 인해 큰 자부심을 가졌다.
정관 11년(637)에 14살이 된 무측천은 당 태종의 부름을 받아 입궁하여 “재인(才人)”에 봉해졌다.
정관 23년(649), 태종이 붕어하자 무측천은 장안의 감업사(感業寺)로 보내져 비구니가 되었다. 당 고종 이치(李治)는 즉위하자 자신과 마음이 통했던 무측천을 다시 입궐시켜 “소의(昭儀)”로 봉하고, 신비(宸妃)라는 칭호를 올렸다. 무측천은 후궁에서 왕(王) 황후ㆍ소숙비(蘇叔妃)와 총애를 다투면서 자신의 친딸까지도 살해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또 조정에서 도당(徒黨)들을 끌어들여 결국 왕 황후와 소숙비를 무너뜨렸다. 영휘 6년(655), 무측천의 황후등극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그 규모는 황제의 등극의식을 능가했다.
무측천은 황후의 보좌에 오른 뒤, 황후의 신분과 황제의 총애를 이용해 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각 기관들이 상주한 일들을 황후가 수시로 결정했다.” 황후가 정무를 문제없이 잘 처리했기 때문에 군신들은 경탄해마지 않았다. 고종은 그녀가 국정을 독점하는 것이 싫었지만 산적한 국가대사를 그녀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무후는 점차 막후에서 무대로 나와 마침내 고종과 함께 군신들의 알현을 받았다. 상원 원년(674), 고종을 천황으로, 황후를 천후로 불렀다. 사람들은 두 명의 황제라는 의미에서 “이성(二聖)”으로 불렀다.
상원(上元) 원년, 무측천은 “천후”의 자격으로 집정을 시작했다. 천수(天授) 원년(690)에 정식으로 칭제한 후 16년 동안 그녀는 꼭두각시 황제를 폐위시키고 서경업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재상 배염을 제거하였다. 동시에 천하의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도성으로 와서 밀고할 것을 장려했으며 혹리를 중용해 이씨 종실을 파멸시키고 그녀를 위해 새로운 왕조를 만들게 하였다.
천수 원년(690), 성지를 내려 즉위한 날로부터 당 황실을 폐하고 국호를 주(周)로 하며 천후라는 칭호를 성신황제로 바꾸었다. 건국의 대업을 마침내 실현했다.
냉철했던 그녀는 혹리들을 기용해 많은 형구와 자백을 유도하는 수단을 만들어 공신들을 비롯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무주(武周) 정권이 수립된 후 권력투쟁이 완화되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그녀는 대사를 치를 때 서두르지 않고 면밀하게 따져보고 추진하였다. 그녀의 언행을 살펴보면 잔인ㆍ총명ㆍ광분ㆍ냉정 등의 특징이 놀라울 정도로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용병술에 정통하였다. 칭제한 후 인재의 선발과 기용을 중시했다. 그녀는 수나라 이래의 과거제도를 개선하여 널리 인재를 뽑고 자천이나 시관(試官)으로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밖에 그녀는 전시(殿試: 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시험…옮긴이)와 무거제도(武擧制度: 무예와 병서에 정통한 사람을 뽑는 시험…옮긴이)를 만들어 인재를 발굴했다.
무측천은 만년에 제국의 후계자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종적으로 그녀는 이씨 당나라로의 회귀정책을 취해 이현(李顯)에게 태자의 자리를 주었다. 신룡(神龍) 원년(705) 정월, 장간지(張柬之) 등은 쿠데타를 일으켜 무측천의 퇴위를 강요하여 중종을 복위시켰다. 중종 신룡 원년(705) 11월, 무측천은 향년 82세로 호화로운 궁궐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측천은 죽기 전에 능 앞에 글자를 넣지 않은 비석을 하나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50년 동안 천하를 호령했던 여황제였지만 죽어서는 글자 하나 새기지 않은 비석을 남겼을 뿐이었다. 어떤 이는 공덕이 무량하여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공과(功過)와 시비는 자신이 떠벌리기 보다는 후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을 무측천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지앙(吳江)
2006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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