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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외국어 > 어학사전 > 일본어사전 > 일한/한일/합본
· ISBN : 9788961842778
· 쪽수 : 1940쪽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자서自序〔제1판(第一版)〕
새삼스레 사전을 회고하는 자서(自敍)는 아니지만, 메이지(明治;めいじ) 시대 하반기, 국어학(國語學)?언어학(言語學)을 수학한 나는, 현재도 계속하여 은택(恩澤)을 받고 있는 선진(先進) 제가(諸家)의 대사전을 이용하여 수익(受益)한 것을 잊지 않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는 은사 우에다 가즈토시(上田萬年;うえだかずとし) 선생님을 비롯하여, 후지오카 가쓰지(藤岡勝二;ふじおかかつじ)?우에다 빈(上田敏;うえだびん) 두 선배의 사전 편찬 방법 및 그 연혁에 관한 논문 등을 읽고 일찍부터 계발(啓發)되었던 바 있었다. 류손(柳村;りゅうそん) 우에다 선배가 「제국문학(帝國文學)」의 지상(誌上)을 통해 신영대사전(新英大辭典)의 위업에 관한 소개를 한 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외국을 동경했다. 우리들도 그간 어떻게 해왔는가, 이상적인 대중소(大中小)는 차치하더라도, 저리도 잘 마무리된 사전을 편찬하고 싶다고 유쾌한 꿈을 꾼 것이었다.
이렇게 영미독불(英米獨佛)의 대사전의 완비함에 한없는 선망의 마음이 일고, 외곬으로 학구적인 이상에만 빠지면서도, 청춘의 객기로 현실적 방면에 대해서 한층 암우(暗愚)했던 것은 후년(後年)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 후 3년째가 되는 메이지(明治) 35년(1902)부터 대략 5년간, 각각의 대사전 편저와 통할에 성공을 거둔 우에다(上田)?오쓰키(大槻)?하가(芳賀)?마쓰이(松井) 등 여러 선배에게는 다른 한편으로 국어(國語) 연구와 교육, 개선 등의 여러 사업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각종 도움을 받은 것이 이리저리 상기되었다. 특히 우에다(上田)?마쓰이(松井) 두 박사의 「대일본국어사전(大日本國語辭典;だいにほんこくごじてん)」과, 오쓰키(大槻) 박사의 「다이겐카이(大言海;だいげんかい)」에 관해서는 나 자신도 직접 그 편집실에 견학한 연고가 있었을 뿐 아니라, 특히 후자의 교정(校訂)에는 깊이 참여하고, 전자의 재간(再刊) 때에는 사소하지만 접촉한 인연도 있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여러모로 참고에 도움이 되어 행복했다. 그 이후에도 이럭저럭 2개 정도의 사전 편집에 참가는 했지만 원래부터 종합하고 통할하는 일을 맡을 처지는 아니었다. 나 자신의 일은 주로 어원(語原)이나 어사(語史), 어지(語誌)나 어석(語釋)의, 주로 분해적(分解的)인 것인 반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방면의 고구(考究)에 전념하고, 종합적 방면의 사업에 뜻을 다하고 힘을 쏟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연구가 당초에는 음운(音韻) 및 문자(文字)에, 그리고 다소 진척되고 나서는 점차 어법(語法)이나 어의(語義)에 이르고, 후년에는 차츰 어지(語誌)를 지향해 왔기에, 요(要)는 분해(分解)를 주로 하고 종합(綜合)에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20년 전, 나의 사전 처녀작(處女作)이 완성되어 기대 이상의 환영을 받았지만, 내심 크게 만족하지 못하였다. 「겐카이(言海;げんかい)」의 저자가 예전에 그 권말에 적어 놓은 바와 같이, 그리 잘 마무리된 것은 없고 단지 고쳐 갈 뿐이라고 생각하고, 곧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혹은 간약(簡約)하고, 혹은 증정(增訂)하는 등 동시에 일을 진행시켰는데, 2차대전 말기에 들어가서는 개정판(改訂版)의 원고가 재액(災厄)을 당했다. 간약판(簡約版)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찍 간행되고 세상에 나왔지만, 나 대신에 전시 중(戰時中)에는 일을 통할하는 한편, 새로이 어사(語詞)의 채방(採訪)과 채집(採集)에 진력하면서 오로지 개정 사업에 종사한 내 차남 다케시(猛)가 고심하고 노력한 결과, 사전 편집상 기대 이상의 비할 데 없는 좋은 경험과 지식을 얻었다고 믿는다. 그 자신도 프랑스의 대사전 리트레(프랑스어 대사전, 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caise, 4권, 1863~73) 내지 피에르 라루스(Pierre-Athanase Larousse) 등의 명저 및 아르센 다르메스테테르(Arsene Darmesteter) 등의 중사전(中辭典)으로부터 평소 얻고 있던 지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부(乃父)의 개정(改訂) 「지엔(辭苑, じえん)」 구 판본(版本)의 초석의 재료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이전과 같이 금번 「고지엔(廣辭苑;こうじえん)」의 편집에 관해 협력할 여유는 충분치 않았으나, 나고야대학(名古屋大學)에 다니면서 남은 힘을 이에 쏟아주고, 노부(老父)가 잘 못하는 부분을 보충하고 편집 및 인쇄 진행, 인사 기타 제반의 통할에 정성을 쏟았다. 현대 국어(國語)에 대한 지식과 감각에 관해서는 당연히 장점이 있다는 것으로 인정해도 무방하고, 그 점에 있어서 오히려 어사(語史)에만 경도된 편자(編者)의 조야하고 방만한 한 분야를 보좌해 준 점을 부언하고 싶다. 이 또한 그림형제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정미(情味)가 있다.
이상, 주로 개정 「지엔(辭苑;じえん)」의 진행 및 경위에 관해 서술하면서, 그 선후(善後) 처리에 임하려고 했던 바, 전후 그 개정판의 장점을 보존하고, 단점을 제거하고, 내용과 형태 모두에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필요성이 생겨, 이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과 증보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1947년(昭和 23년) 9월부터 이와나미서점(巖波書店;いわなみしょてん) 안에 설치된 편집실에서 이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구비하는 이치무라 히로시(市村宏;いちむらひろし) 씨를 편집주임으로 하고, 시종일관 개정 사업을 진척시킨 데 의한다. 그 후 편집부는 이 복잡한 편집에 종사하고, 그간 몇 차례 편집실 안팎으로 직원의 증감 변동과 장소 이전 등이 있었지만, 이와나미서점 내외로부터 정기 또는 임기(臨機)로 위촉된 여러 직원과 제군(諸君)의 각별한 협력에 의해 편집은 이미 끝나고, 교정 및 수치(修治)의 일도 바야흐로 완성을 보게 된 것은 정말 흔회(欣懷)로 하는 바이다.
포부와 실행, 이상과 현실, 그동안의 자신의 미숙(未熟)과 노경(老境)에 기인하여, 일의 취지와 다른 내용이 있다는 점을 자성해 마지않지만, 간명하면서도 평이하고, 광범(廣範)하면서도 주도면밀하고, 아어(雅語) 한자어, 고어(古語) 신어(新語), 관용어(慣用語)와 신조어(新造語), 일상어와 전문어, 구 외래어와 신 외래어, 신문에서 사용하는 말과 유행어, 모두 굳이 박재(博載)할 것을 기했다. 발음의 정확성과 어법의 설명에는 유의하여 규범을 보이고자 바랐지만, 현재의 규범이 혼돈하여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불편을 개탄해야만 했다.
과칭(誇稱)해도 무방하지만, 우리 부자가 친교 있는 철학?사학?문학의 선배 동우를 비롯하여, 오늘날 과학계에 명성이 있고 세계적인 영예도 얻으신 석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교시를 받은 어휘의 설명도 적잖이 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이 언어의 정원(言語園)을 전망하면서 감격해 마지않는 심경에 있다. 종래의 경험에 의해 나중에 계속해서 자타의 주의를 통해 각종 보수(補修)를 필요로 하는 것이, 특히 일반 사전에서는 생기기 십상이라는 것을 짐작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선배의 사전학자가 인용한 말에 의지하여, 그 유명한 라틴어의 금언(金言)이나 괴테의 잠언(箴言)에도 있듯이 “실수하는 건 사람이고 용서하는 건 신이라(과오는 인지상사요, 용서는 신의 본성이니라)”와 같이 말하는, 둔사(遁辭)와 같은 문구에 매달릴 생각은 없다. 그냥 주밀한 안광(眼光)으로써 철저하게 과오(過誤)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각설하고, 사물의 순서에서 보면, 큰 사전이 먼저 완성되고 나서 그 후 이들 성과를 수습하고 발췌하여 간이하고 평명하게 단축시켜 편집해야만, 보다 완전한 중소사전(中小辭典), 간략판(簡略版, 쇼터)이라든가, 요략(要略, 콘사이스)과 같은 문자를 붙인 중형, 소형의 사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역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에, 특히 현금(現今) 우리 국어계(國語界)의 수준이나 규모는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신어(新語)의 조제(粗製)와 남조(濫造)가 극심한 시대에는 정당한 중사전(中辭典)의 달성은 반성하기에 조급했던지 모른다.
상기와 같이 본서(本書)는, 당초의 출발점은 개정판을 약간 가제(加除)하고 수정하는 정도에서 진행한 것이었는데, 어느 사이엔지 본래의 절도를 상당히 뛰어넘고, 근본적 수정이 단지 문자의 표기법에만 머무르지 않고 재록 어휘, 분량뿐만 아니라 상당히 본질적인 데에도 미치게 되었다. 결국 실질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적지 않은 진보의 흔적이 인정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쪽수나 조판에 있어서도 다대한 영향을 미치고, 두께나 기타 장정(裝幀) 등 여러 가지 점에도 예상 이외의 다난(多難)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편집 완성의 시기도 늦어지는 바람에 제반의 번잡함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도 맛봐야만 했다. 편집부에서도 간신히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편집부원의 일손 부족 등을 보충하기 위해, 이와나미서점(巖波書店;いわなみしょてん)의 내부로부터도 준민(俊敏)하고 숙달된 인사의 참가 협력을 얻고, 동시에 임시로 외부에서도 특히 명달(明達)하고 간독(懇篤)한 신진 여러 학자의 도움도 구하게 되어, 안팎으로 서로 협조하고, 중력(衆力)이 일치하고, 한편으로 물론 숙련된 교정 직원의 도움이 있어, 착착 인쇄 공정도 매끄럽게 진척되어, 이제 발행의 기운(機運)을 맞이하게 된 것은, 편자 더할 나위 없는 만족으로 여긴다.
이들 제언(諸彦)의 조력을 발문(跋文) 속에 명기(銘記)하기에 앞서, 특히 지금 적어 두어야 할 한 가지 점은, 외우(畏友) 오노 스스무(大野晉;おおのすすむ) 씨가 어법과 기본 어휘에 관해, 또한 그 동창(同窓)인 이타사카 겐(板坂元;いたさかげん)?다케우치 미치코(竹內美智子;たけうちみちこ) 두 분의 협력도 얻어, 시급하게 적절한 도움을 주신 것이다.
이 사업의 시종(始終)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이와나미서점(巖波書店;いわなみしょてん)의 전 사장인 고 이와나미 시게오(巖波茂雄;いわなみしげお) 씨의 광량(廣量)함과, 현 사장인 이와나미 유지로(巖波雄二郞;いわなみ ゆうじろう) 씨의 관후(寬厚)함에 감사함과 아울러, 사업 진행에 있어 끊임없이 사내의 숙달된 제현(諸賢)으로부터 계발 격려를 받은 것을 간명(肝銘)한다. 거슬러 올라가서는, 먼저 간행한 「辭苑(じえん)」의 출판 개정 시기의, 하쿠분칸(博文館;はくぶんかん)의 관련 부서에 계셨던 여러 사람들과, 충실한 편집주임인 미조에 야오타(溝江八男太;みぞえやおた)옹과 내조해 준 한 노우(老友)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에 「내 신조(私の信條)」로 쓴 바와 같이 나이 들어 사은(四恩)의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1955년(昭和;しょうわ 30년) 1월 1일
교토(京都;きょうと) 신무라 이즈루(新村出;しんむらいず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