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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1844710
· 쪽수 : 44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전야제
제2부 외계 도시
제3부 낮과 밤
제4부 위험한 불꽃놀이
제5부 그 겨울의 종점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누, 누, 누구세요? 그녀는 암흑 속에서 깊이 잠든 자기를 누군가가 깨우자 자다가 심하게 놀라고 겁먹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스타카토로 끊어 외쳤다. 하, 학생이에요. 나 역시 겁먹은 목소리로 하지만 그녀보다 훨씬 낮은 톤으로 그렇게 얼버무리듯 대답해야 했다. 네에? 나는 다급히 다시 말했다. 학생이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다소 안심이 되는 듯 그녀의 톤이 중간 정도로 바뀌었다. 아······,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안정적으로 바뀌어갔다.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어?
잠시 후 그녀가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그녀는 주황색 나시 티와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시의 슬림한 어깨 끈 사이로 풍만한 젖가슴이 두드러져 보였다. 눈가에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파란 멍이 아직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팔에 긁힌 상처를 보여주며 유리창에 긁혀 그랬다고 알려주었다. 그 상처는 그녀에게 큰 동정심을 일으킨 듯했다. 여인의 어조는 그 후로 더욱 부드러워졌다. 아이는 고운 얼굴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사정을 다 알아차린 그녀는 그렇게 무마해주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그러고는 바로 다시 불을 꺼, 내 부끄러움을 덮어주었다. 무척 하고 싶기도 했구나!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고는 내 목을 끌어안으며 누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나는 급히 그녀의 볼에 내 볼을 마구 비벼 대며 서서히 여인을 눕혔다. 빨리 하고 나가. 애가 자니까. 그녀는 한 손을 등 뒤로 대고 천천히 누우며 동시에 다른 손으로 팬티를 벗어 던졌다. 하지만 다 누워서는 브래지어를 벗기려는 내 손을 세게 붙들며 제지했기 때문에 나는 급히 서둘러야 했다. 결국 옷은 그대로 다 입고 그녀는 팬티만, 나는 바지와 팬티만 벗은 상태에서 섹스가 시작됐다.
도시의 그런 풍경들은 그러지 않아도 가뜩이나 부풀어 있는 내 욕망의 풍선을 더 팽창시켜 놓았다. 그러다가 그것이 끝내 거대한 애드벌룬이 되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어떤 날은 정말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새벽 가까이가 되어서까지 그 욕망의 기구가 하늘 끝으로 날아올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들려는 어떤 날은 여인숙을 혼자 찾거나 ‘중동 붉은 거리’ 근처를 서성여야 했다. 물론 그런 날들은 예외적이었을 뿐이고, 대부분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욕망의 응어리를 손아귀에 가득 움켜쥔 채 속으로만 삭이면서 집으로 향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청춘의 시절, 자신이 어느 곳에 있었고,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지와 상관없이 나의 욕망은 스스로를 어떻게든 괴롭혀 나갔을 것이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절 나는 그렇듯 그 도시에 있었고, 늦은 밤 시각을 운명처럼 본능적으로 헤매면서 좀체로 해소되지 않는 욕망을 부둥켜안은 채 고통스러워했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구석의 초라한 골방으로 데려가서 서양 남녀가 등장하는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고 떠났다. 나는 한쪽 모퉁이 자리에서 구질구질한 홑이불을 덮어쓰고 하의를 탈의한 채 그것들에 열중하곤 했다. 밖에서 사내가 ‘아가씨를 불러 드릴까요?’하고 몇 차례 물었지만, 그때마다 괜찮다고 거부하면서! 그리고 중간이나 후반부쯤에는 꼭 자위를 하곤 했다. 하지만 두루마리 화장지 조각이 손바닥과 페니스에 묻은 채로 여인숙을 나서는 심정은 그다지 밝지 못 했다. 그럴 때면 욕망이 충분히 해소되기는커녕 도리어 더 강하게 변형되어 꺼림칙하게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두 번 더 그렇게 그곳을 찾긴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대신 나를 오래도록 끈질기게 미혹시켰던 것은 ‘붉은 거리’였다.
절대 못 잡을 거라는 내 놀림에 그렇게 답하며 까르르 웃었다. 물론 잡을 수 없죠. 그냥 장난쳐 봤어요!
“선생님. 피곤하시죠. 여기 잠깐 누워 쉬세요!”
연못 바로 옆 팔각정 정자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을 때,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무릎 쪽을 가리켰다. 괜히 저 땜에 쉬시지도 못하고······. 아냐. 덕분에 정말 즐거운 시간인 걸! 정말요? 그렇담 다행이지만요. 나는 은정이의 연분홍 스커트와 하얀 타이즈를 신은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누워 보는 그 애의 눈동자는 정말로 맑고 그윽했다.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결국 저 파란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만 같이! 그리고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학교에서 이 아이를 만나 3년이라는 정해진 시간 속에서 여유 있게 정식으로 가르쳤다면 우리는 어떤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갔을까 하는. 그리고 학교의 이런 벤치에 앉아 문학과 인생을 마음껏 얘기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