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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1849272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클린 세탁소
내 하찮은 인생
달맞이꽃
바람과의 대화
반려동물 트라우마
은포리의 노래
달빛 아래 천리향(千里香)
청산도
내 사랑, 니체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능소화가 비바람에 뚝뚝 떨어졌다. 장엄하게 떨어지는 꽃을 보자 우리 인생도 능소화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 역시 능소화처럼 어느 순간에 뚝하고 삶의 숨길을 놓아버릴 것이었다. 그러자 비장감이 들었다. 살 때까지는 살아야지 하며 나는 애꿎은 믹스커피 한 잔을 타 천천히 마셨다. 이 시간만은 나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재봉틀 의자 위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이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나의 팍팍한 삶의 여정이 더욱 고달팠을 것이었다.
삶은 늘 반복되었다. 그 삶이 싫거나 좋거나 간에 반복되는 삶이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나는 숙명처럼 나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그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 속하여 살 수 없을 것이다.
5월이었다. 넓은 밭에 심겨진 보리가 바람에 출렁거렸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보리밭을 보고 있자니 뭔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가냘픈 보리, 보리밭에 바람이 불어왔다.
보리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람결에 풋풋한 보리향이 풍겨왔다. 보리하면 가난한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보리밥을 해서 대바구니에 담아 부엌 시렁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배가 고픈 나는 대바구니의 밥을 덜어서 물에 말아 김치와 먹었다. 그때 먹은보리밥은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기도 하였지만 내 영혼의 허기까지 채워준 밥이었다.
나도 그들과 섞여 잠시 유채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유채꽃을 감상하였다. 유채꽃은 어릴 적 밭에서 본 배추장다리꽃과 흡사하였다. 산비탈 작은 밭에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 있는 배추장다리꽃과 보랏빛의 무장다리꽃은 정말 아득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꽃이었다.
유채꽃을 보고 있으려니 내 유년의 시절에 보았던 유채꽃과 같은 배추장다리꽃의 추억이 떠올랐다. 또래들과 장다리꽃대를 꺾어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