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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 이야기
· ISBN : 9788961960953
· 쪽수 : 200쪽
책 소개
목차
prologue | 그림 앞에서 _005
[그림 앞에서]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 고립과 부드럽게 대결하는 전술 | 에두아르 뷔야르, 「뱅티미유 광장」
- 스틸 라이프 | 조르조 모란디, 「정물」
- 얼굴 없는 것들 | 작자 미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 죽음을 기억하라 | 니콜라 콘스탄티노, 「젖꼭지 코르셋」
- 뱀을 노래하다 | 도르예 커스텐 신노, 「봄날의 쾌활한 뱀」
- 숨겨진 공간을 찾아 다시 감추다 | 다니엘 아르샴, 「시트」
- 부옇고 덧없는 우주의 한 조각 | 조르주 피에르 쇠라, 「에덴 콩세르」
- 잠과 꿈 | 웬델 캐슬, 「들리는, 보이지 않는」
- 밤의 입구 | 제임스 맥닐 휘슬러, 「청색과 금색의 야상곡-낡은 배터시 다리」
- 아무도 모른다 | 김정희, 「세한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 느리고 고된 섬광 | 야마시타 기요시, 「불꽃놀이」
- 여자의 완성 | 레오노르 피니, 「여자의 완성」
- 피아가 없는 세상 | 발튀스, 「캐시의 몸단장」
- 몽상가를 사랑한 현실주의자 |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 거울 앞의 몽롱한 집중 | 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
- 아늑한 황량함 | 로런스 S. 라우리,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
- 정밀 묘사된 실낙원 | 노먼 록웰, 「도망자」·「집을 떠나며」
- 늙은 예술가의 초상 | 마르크 샤갈,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화가」
- 인간 정신의 특별한 구역 | 조앤 이어들리, 「아이들, 글래스고 항」
- 그림이라는 쿠션 | 에드워드 아디존, 「작은 책방」의 삽화
[그림 뒤에서]
저 너머 그림자와 맞닥뜨리니
- 거짓말 또는 착각 | 펠릭스 발로통, 「거짓말」
- 화면 밖의 미스터리 | 알렉스 카츠, 「에이다」
- 미완의 드라마 | 로버트 브레이스웨이트 마티노, 「가난한 여배우의 크리스마스 디너」
- 매너리즘의 간절한 매너 | 자코모 다 폰토르모,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 죽음과 단둘이 | 귀스타브 모로, 「성 세바스티안」
- 그림과 나 사이, 적당한 거리를 찾아서 | 빌헬름 사스날, 「무제」
- 순진한 열망의 정원 | 앙리 루소, 「꿈」
-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 | 제임스 엔소르, 「이상한 가면들」
- 으스스한 틈새 | 최윤정, ‘노스탤지어’ 연작
- 죽음을 내려놓다 | 카라바조, 「잠자는 큐피드」
이것은 당신 그리고 나의 그림자
- 외설적인 고독 | 필립 거스턴, 「머리와 술병」
- 몸이라는 우주 | 앤터니 곰리, 「양자구름」
- 심장으로 직진하는 조각 | 아나 마리아 파체코, 「방랑자의 그림자」
- 같으면서 다른 | 작자 미상, 「첨리 자매」
- 아파서 나는 아프다 | 알브레히트 뒤러, 제목 미상의 스케치
- LOVE & D.I.Y | 이주요, 「TWO」
- 가만히 잡고 싶은 손 | 오귀스트 로댕, 「대성당」
- 사랑한 후에 | 피에르 보나르, 「남과 여」
- 오직 사랑만을 위해 | 프란시스코 데 고야, 「개」
- 견고한 공존 | 루시안 프로이트, 「둘의 초상」
epilogue | 그림 뒤에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미술 작품을 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찾는다. 비단 인물을 주제로 삼은 회화와 조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화병의 꽃, 접시의 사과, 봄날의 잔디밭, 심지어 추상이라 해도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그것의 ‘얼굴’?눈의 초점을 맞추고 감정을 투사할 지점?을 본능적으로 찾아 방황한다. 자크 오몽이 썼듯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타자의 얼굴이며, 존 버거가『포켓의 형태』에서 지적한 대로 모든 화가는?그리고 내 생각엔 관람자도?자신이 보낸 응시를 되돌려줄 화답의 시선을 대상에게서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회화와 조각에서 얼굴의 부재는 충격을 야기한다. 결핍은 거기 존재했어야 마땅한 것을 강력히 환기시킨다. _「사모트라케의 니케」에서
흔히 자연의 맞은편에 놓여 무기적인 영구불변함의 표상으로 치부되는 건축물들도 따지고 보면 한정된 삶을 산다. 그들은 녹슬고, 늙고, 숨 쉬며, 진동한다. 우리가 집이 살아 있다고 실감하는 때는 역설적으로 집을 오래 비운 연후다. 긴 여행으로부터 돌아와 첫 발을 들여놓으면 빈 집은 쾨쾨한 황폐의 냄새를 피운다. 한동안 어지르고 때 묻히지 않았으니 말끔해야 마땅할 텐데, 웬일인지 후줄근하고 시들어 있다. 그제야 집과 내가 날숨과 들숨을 주고받고
있었음을 안다. 어쩐지 훈훈한 깨달음이다. _다니엘 아르샴, 「시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