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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0128825
· 쪽수 : 404쪽
책 소개
목차
하우 투 비 굿
작품해설_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은 가능한가(이광진)
옮긴이의 말_ 서글픈 우리네 초상을 그린 소설(김선형)
책속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다. 대체로 그런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다면 대체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을 돕고 싶어하고, 하는 일 때문에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돕는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단체에 한 달에 한 번 나가 전화를 받아주거나, 무언가를 후원하는 걷기대회에 나가거나, 은행의 자동이체 양식을 써넣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나는 의사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주중에만 의사 노릇을 하니까. 근무시간이 아닌 때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잠을 잤다. (근무시간에 불륜을 저지를 정도로 나쁜 여자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의사라는 사실만으로는 도저히 그 죄를 보상할 수가 없다. 항문에 난 종기들을 아무리 많이 들여다본다 해도.
“데이비드, 제3세계의 부채는 우리 집에 산 채로 찾아오지 않아. 제3세계의 부채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 나는 내가 틀렸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 말을 딱 멈춘다. 제3세계의 부채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집 없는 노숙자 아이들이 아무리 많이 죽여도 그 숫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백만, 수천만 명을 죽였다. 나도 다 안다 다 안다 다 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몇 시간 동안이나 듣고 또 듣고 또 듣게 될 것이다.
그는 청바지를 입고 있고, 톰과 나는 그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각각 한쪽 주머니를 잡아당긴다. 한편 몰리는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가면서 붙잡고 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귀엽고 예쁘다. 우리 가족. 나는 생각한다. 그래, 바로 이거. 그렇다면, 할 수 있어.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게 내가 간직하고 싶은 점화 불꽃이야. 다 나간 배터리가 내는 생명의 부릉부릉 소리야. 하지만 그만 잘못하는 바람에 하필 그 순간 나는 데이비드 너머로 밤하늘을 흘끗 바라보고 말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