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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인문학 일반
· ISBN : 9788970595689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동시대 문화 지형도를 그리기에 앞서
시도와 접근
1 문화의 성격
1-1 문화, 경계와 개념을 넘나드는…
1-2 명칭의 혼선
2 동시대 문화 연구의 사회적 배경
2-1 권력, 문화의 반려자
2-2 문화와 이데올로기
3 동시대 문화 연구의 학술적 배경
3-1 소쉬르와 구조주의
3-2 러시아 형식주의와 문화기호학
3-3 미국의 실용주의와 퍼스의 기호학
3-4 20세기 인류학
3-5 포스트구조주의와 기호 연구
3-6 코드, 재현, 담론 그리고 전이
동시대 문화
4 문화 엘리트주의와 동시대 문화 연구의 성격
4-1 문화 엘리트주의
4-2 수정주의와 사회현실문화 연구
4-3 문화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전개와 수용
4-4 문화와 헤게모니
4-5 하위문화 연구와 크로스컬처
5 동시대 문화 연구가들
5-1 리처드 호가트
5-2 레이몬드 윌리엄즈
5-3 에드워드 톰슨
5-4 스튜어트 홀
문화와 생존
6 생존 게임
6-1 미국으로 건너간 동시대 문화 연구
6-2 미국의 문화 연구
6-3 호주의 문화 연구
6-4 프랑스의 문화 연구
6-5 남아시아와 인도의 문화 연구
6-6 대한민국의 문화 정체성
문화의 또 다른 과제
7 현실 또는 미래를 위하여
7-1 과학과 문화 연구
7-2 인포테인먼트와 세계화
7-3 문화적 정체성의 중요성
동시대 문화 지형도를 마치며
도표로 보는 동시대 문화 지형도
부록
인명 색인
용어 색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짧은 근대사 속에서 격변의 세월을 보낸 우리들은 서양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문화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서양으로부터 수입해 왔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전체의 흐름과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또는 순서가 뒤바뀐 상태로 무분별하게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혹은 일부 내용은 극단적으로 전문화되거나 고급 지식으로 포장된 채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 문화는 우리에게 종종 막연한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알 수 없는 욕망과 자격지심에 떠밀려서 문화적 기형아와 사생아를 출산하게 되는 사례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서양 문화의 흐름에 대한 안내도 즉, '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단편적인 이해를 도모하다 보니 생겨난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서울 지도 없이 서울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 가며 하루 온종일을 소비한 끝에 시청을 찾아간 외국인이 '시청은 서울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흡사할 것이다.
흔히들 문화란 때 묻지 않은 그 자체의 순수성과 아름다운 품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14-16세기에 걸친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 이후이다. 르네상스로 인해 예술 중심 사회가 주도되면서 수준 높은 예술품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에 의해 향유되었고, 그러한 행위가 당시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대표한다는 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불가사의하게도 5백 년 전에 형성된 그러한 생각은 지금 현재도 우리 가운데에서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를 다녀온 다음에야 '문화생활을 했다'고 말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전적 문화 개념에 일대 혼란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동시대 문화 연구가 시작된 1960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이때부터 문화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이된다.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문화 연구는 집요할 정도로 역사의식을 지니고 정치적 태도를 취했다. 새로 등장한 문화가 저항적 성격 안에서 생겨난 이데올로기의 결과물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연구 태도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고전적 문화 개념을 가지고 동시대 문화 연구를 들여다보면 적잖은 혼란을 겪어야 한다. 이 때문에 동시대 문화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술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비틀스의 모습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해피 올 더 웨이"와는 다른 것이었으며, 마침내 미국으로 역수출되어 대중음악 속에 예술적 가치와 저항의식이라는 정신세계의 깊이를 보여 주었고, 그 결과 진정한 의미의 '영국의 침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비틀스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보여 준 로큰롤의 단순한 변용이었다면 영국의 역공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의 젊은이들은 결코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의 젊은이들은 대중음악 속에서 가수가 아닌 뮤지션 아티스트(Musician Artist)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저항의식을 뮤지션 아티스트의 첫 번째 성격으로 꼽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다시 우리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우리는 힙합의 내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한류'를 탄생시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음악적으로 미국의 힙합을 흡수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표현력의 발전을 거쳐 마케팅을 통해 상업적으로 아시아권에 수출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과 성과는 폄하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비틀스의 음악을 통해 강력한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의 문화계가 정신적 충격을 받아 향후 자신의 문화적 기준을 바꿔 나간 것과 달리, 우리의 대중가요를 흡수한 아시아 각국이 과연 그와 같은 정신적 의미를 우리나라의 음악에 부여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그 차이가 우리나라를 단순한 문화의 카피국가로 전락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동시대 문화 연구가들은 하나의 대중음악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단순히 음악적 장르의 변화 과정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국의 로큰롤이 영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기득권에서 노동계급으로 이동시키는 데 일조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힙합 정착 과정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기득권과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일어난 '한류'와 같은 현상은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입지를 바꿔 놓음으로써 문화 권력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실감하게 한 사례이다. 이처럼 문화 이동의 현상은 다른 문화들 간의 공방 속에서 한 사회를 장악해 가며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는데, 그 밑바닥에는 모종의 권력이 문화의 반려자처럼 함께 숨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