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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0638263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어머니를 그리며 꽃을 그리며
작가의 말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다 지나간다 │ 만추 │ 꽃 출석부 1 │ 꽃 출석부 2
시작과 종말 │ 호미 예찬 │ 흙길 예찬 │ 산이여 나무여
접시꽃 그대 │ 입시추위 │ 두 친구 │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
그리운 침묵
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 │ 그리운 침묵 │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야무진 꿈 │ 운수 안 좋은 날 │ 냉동 고구마
노망이려니 하고 듣소 │ 말의 힘 │ 내가 넘은 38선
한심한 피서법 │ 상투 튼 진보 │ 공중에 붕 뜬 길 │ 초여름 망필(妄筆)
딸의 아빠, 아들의 엄마 │ 멈출 수는 없네 │ 감개무량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그는 누구인가 │ 음식 이야기 │ 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 │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문을 열어주마 │ 우리 엄마의 초상 │ 엄마의 마지막 유머
평범한 기인 │ 중신아비 │ 복 많은 사람 │ 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 딸에게 보내는 편지
리뷰
책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이렇듯 남들이 말하는 나의 전원생활은 조금도 평화롭지 않다. 내가 여기 정착하려 한 것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꿈꿨기 때문도 도처에 도사린 불안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냥 아파트가 너무 편해서, 온종일 몸 놀릴 일이 너무 없는 게 사육당하는 것처럼 답답해서 나에게 맞는 불편을 선택하고자 했을 뿐이다. 내가 거둬야 할 마당이 나에게 노동하는 불편을 제공해준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모르고 오래도록 잔디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풀 냄새 때문만은 아니다. 유년의 뜰을 떠난 후 도시에서 보낸, 유년기의 열 곱은 되는 몇십 년 동안에 맛본 인생의 단맛과 쓴맛, 내 몸을 스쳐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격렬했던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행운과 기적, 이런 내 인생의 명장면(?)에 반복해서 몰입하다 보면 그렇게 시간이 가버린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