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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70639833
· 쪽수 : 392쪽
책 소개
목차
어리석은 철학자 5
옮긴이의 말 380
리뷰
책속에서
“자네 활이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유감이군. 여기 있는 활들 중에서 가장 크고 멋진 데다 장식도 훌륭한 활이었는데 말이야. 자네에겐 무척 아쉬운 일이었겠어. 모두 자네를 부러워했을 텐데. 자네도 아쉽고 속상하겠지.”
그 남자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라쿠스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자네의 활 이야기지.”
“내겐 활이 없어요.”
크라쿠스가 침을 삼켰다. 그 청년이 크라쿠스를 조롱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자기에겐 활이 없다고 부인하는 걸까?
“어제 자네가 활을 갖고 있는 걸 봤는데? 아주 멋지고 훌륭한 활을 갖고 있던걸.”
“네, 어제는 갖고 있었죠. 하지만 오늘은 없어요.”
인디언 청년은 세상에서 가장 차분할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말야. 아니라고 하지 말게! 자넨 누가 뭐래도 지금 속상한 마음을 감춘 채 아닌 척하고 있는 거야!”
“그 활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지도 않는 물건을 갖고 왜 내가 속상해해야 되죠?”
그 말에 크라쿠스는 화가 나고 말았다.
“어제는 분명히 활이 존재했잖아!”
“친구여, 어제는 이미 사라졌어요. 지금은 오늘이에요. 우린 항상 오늘을 살 뿐이에요.”
“네, 최면을 거는 거예요. 특히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요. 신경정신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열중하는 일이 우리를 좌우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뇌가 그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뇌는 모든 잠재력을,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그 일과 유사한 과제를 위해 사용한다고 해요.”
크라쿠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아침마다 제일 먼저 하는 건 오줌 싸러 가는 건데.”
“난 지금 의미 있는 과제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당신이 이메일을 열어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당신의 뇌는 당신이 외부에서 받는 정보들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게 될 거예요. 매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스스로 뭔가를 생각해 내기 위해 집중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의 뇌가 이미 내부에서 생각을 만들어 내기보다 외부의 자극을 받는 것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찾아 주시오.’라고 그가 말했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 어떻게 고른단 말인가? 엘리안타로서는 동족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녀들은 모두가 아름다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마을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모두 떠올려 보았다. 그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반짝이는 눈을 가진 소녀 알리아나일까? 그래, 알리아나의 깊은 눈 안에 빠지면 천사라도 길을 잃을 것 같지. 아니면 니타? 수차례의 시험에서 입증된 니타의 용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아니면 아마다히? 그녀의 마음은 그녀의 순결만큼이나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여인들을 어떻게 서로 비교할 수 있다는 거지? 그녀들 가운데서 한 명을 고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