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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70639918
· 쪽수 : 32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그 뭐냐, 대가라고 불리는 작자들의 유일무이한 작품을 한 줄도 읽지 않았지만, 여태 잘만 살았다. 다른 사람들만큼 놀아도 봤고, 평생 먹은 밥그릇 수를 따져도 도서관에 죽치고 사는 쥐새끼 같은 놈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평생 제 성기를 야릇한 곳에 갖다 대 보지도 못한 놈도 있는데, 내가 왜 신세한탄을 해야 하는가? 나는 아마추어 문학 서클을 싫어했다. 유명 작가가 쓴 글귀에 열광하며 찬사의 말을 늘어놓는 머저리들을 좋아한 적이 없다.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적어도 열 번은 읽어야 하지만, 정확히 인류의 절반은 전혀 관심 갖지 않는 작품 앞에 엎드려 절하는 작자들 말이다. 아무리 위대한 문학작품이라 해도 불이나 감자 같은 생필품보다 중요하진 않다.
의약 산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3분의 1이 머리가 좀먹고 턱을 가슴에 붙인 채 침을 흘린다면,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은퇴자들의 생계를 겨우 감당한다면, 미래가 없는 미래에 겁을 먹은 노인들이 유람 여행에도, 발기부전 치료제에도 땡전 한 푼 쓰지 않는다면, 지도자들은 텅 빈 국고를 들여다보며 안락사 지지자들을 비난하기 전에 두 번쯤은 숙고할 것이다. 불쌍한 부자 나라들! 이 빌어먹을 지구 위에는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생명 연장 장치에 의존해 영양 과잉상태로 하루하루 죽음의 날을 뒤로 미루는 노인들이 있다. 굶어 죽는 아이들과 불멸을 꿈꾸는 노인들이라니! 참으로 훌륭하다. 죽어야 하지만 죽을 수 없는 노인들과 살아야 하지만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이렇게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코미디이다.
다행히도 나는 생애 최초의 비밀을 잊은 적이 없다. 많은 것이 물에 빠진 설탕처럼 사라지거나 변했지만, 그 비밀은 손상되지 않은 채 언제나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이룬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나는 이런 내 믿음이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시시콜콜한 비밀 나부랭이가 아니라, 진짜 비밀이다. 비밀은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다. 분명 여기에 있지만, 잠드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달리 비밀은 수치스러움이라는 단두대로부터 비밀을 소유한 자를 보호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