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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사람 공부

퇴계의 사람 공부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이황 (지은이), 이광호 (옮긴이)
  |  
홍익
2019-05-02
  |  
15,8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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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사람 공부

책 정보

· 제목 : 퇴계의 사람 공부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한국철학 > 퇴계/율곡
· ISBN : 9788970656878
· 쪽수 : 256쪽

책 소개

『퇴계집』에 수록된 퇴계의 글은 하나같이 퇴계가 일정한 학문적 수준에 도달하고 난 뒤에 쓴 것이어서 학술적 일관성이 뛰어나고 학문을 하며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내용이 많아 독자에게 친숙하다. 그 중에서도 퇴계 실천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을 가려 뽑아 재편집한 책이다.

목차

들어가면서 _ 이황은 누구인가

1장 사람됨의 학문을 총정리하다
마음을 읊다
주세붕이 보내준 시에 답하다
하루를 돌아보며
한서암을 짓고
기꺼운 시골살이
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조용한 곳에서 수양해야지
완락재
시습재
한평생을 읊다
주자의 편지는 사람됨에 절실하다
《주역》으로 밝힌 자연의 이법
자신을 성찰하다
선현들의 마음 공부
사람됨의 학문을 총정리하다
마음을 공부하려면 《심경》을 읽어야 한다

2장 그대와 인간의 도리를 토론하니
고향 가는 김인후를 보내며
조식이 벼슬을 마다한 것을 보고 우러러보며
이이를 격려하며, 경계의 말도 함께하다
이담에게 주는 경계
그대와 인간의 도리를 토론하니
기대승에게 처세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다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
제 자식 살리고자 남의 자식을 죽여서는 안 된다

3장 임금께 올리는 여섯 가지 조언
왜국의 사신을 끊지 마소서
맑게 갠 아침에
함경도 순변사 이준경에게 내린 교서
사직서
임금께 올리는 여섯 가지 조언
정치를 잘하려면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성학십도》를 올리며

4장 진리를 기르는 암자에서
영지산에 소박한 집 한 채 짓고
소나무
봄날 고향을 그리며
청평산을 지나며
진리를 기르는 암자
한가하게 《무이지》를 읽고서
단양 군수로 나가는 길에
단양 산수에 대한 기록을 남기다
소백산 유람기
도산서당 지을 터를 얻고서
도산에서 시를 읊다
도산서당
〈도산십이곡〉 발문

5장 도가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 이유에 답하라
백운동서원 여러 유생들에게 보이다
백운동서원을 사액서원으로 정해주소서
우리나라 유학자의 계통
계상서당서 강학을 시작하며
입춘을 맞아
학교란 무엇인가
도가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 이유에 답하라
이산서원 규정
이산서원 기문
유학의 계보

6장 퇴계의 삶을 평하다
이이가 지은 〈퇴계 선생 유사〉
정약용의 《도산사숙록》
미국의 마이클 칼턴이 본 《성학십도》

연보
참고문헌

저자소개

이황 (지은이)    정보 더보기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격하고 28세에 진사회시에 2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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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서철학을 배우고, 민족문화추진회 한학연수과정과 한국고등교육재단 태동고전연구소 한학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주자의 격물치지설에 관한 고찰》로 석사학위를, 《이퇴계 학문론의 체용적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퇴직했다. 서암학술(SBS) 재단 해외파견교수로 선발되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방문교수가 되었고, 절강대학교 한국연구소 초빙교수를 지냈다. 태동고전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부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송문화재단의 주자학술상과 퇴계학연구원의 퇴계학술상을 수상했다. 《성학십도》, 《근사록 집해》, 《이자수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국역심경주해총람》, 《대학공의·대학강의·소학지언·심경밀험》, 《역주 대학·중용》(예기정의), 《대학·중용집주》, 《퇴계집》, 《퇴계의 사람공부》, 《고경중마방》 등의 역서와 저서, 그리고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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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도의에 뜻을 둔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 세상의 환란을 당한 사람이 많다. 이는 땅이 좁아 사람들이 경박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스스로 힘쓰는 학문도 다하지 못함이 있어서 그렇다.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너무 높게 자처하고, 시대를 헤아리지 않고서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퇴계집』, 권16, 서, 「답기명언(答奇明彦)」)


군자의 학문은 자기를 위할 뿐이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장식(張?, 1133~1180)이 말한 ‘인위적으로 위하는 것이 없이 그러한 것’이다. 예컨대 깊은 산 무성한 숲에 있는 난초는 종일토록 향기를 피우지만 자신이 향기를 발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난초의 이러한 삶이 군자가 자기를 위한다는 뜻과 똑같다.
- 『퇴계전서』 4, 언행록, 권2, 유편(類編)


퇴계는 몸에 병이 있고 노쇠하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려 53회나 사직을 청했다. 국가에서는 사직을 허락해서 선비가 염치를 존중하고 의리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리의 실현이다. 그렇다면 의리란 무엇인가? 일의 마땅함을 의미한다. 일의 마땅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빛나는 천리에 합당한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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