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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

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

(중대형 교회의 목회세습 반박문 95개 조항)

민종기 (지은이)
  |  
대장간
2017-12-28
  |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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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

책 정보

· 제목 : 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 (중대형 교회의 목회세습 반박문 95개 조항)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일반
· ISBN : 9788970714318
· 쪽수 : 368쪽

책 소개

성경.교회사.교리신학.공공신학.목회윤리적 관점을 망라하고 대안적 목회철학, 사례들을 정리한 우리시대의 목양심서.세습은 단순히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에 동조하고 오류를 묵과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목차

추천의 글·
서문·
인사말·
I. 서 론·
II. 목회세습의 서론적 관찰 10개 조항·
III. 성경적 배경에서 본 목회세습 10개 조항
IV. 교회사의 배경에서 본 목회세습 12개 조항·
V. 교리신학으로 살펴본 목회세습 12개 조항·
VI.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본 목회세습 12개 조항·
VII. 목회윤리적 관점에서 본 목회세습 12개 조항
VIII. 목회세습 극복을 위한 대안적 목회철학 12개 조항·
IX. 중대형 교회의 목회세습을
부끄럽게 하는 대안적 사례 10개 조항
X. 결론적 제언 5개 조항
XI. 나오는 말

저자소개

민종기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양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수학하고 미국 USC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Fuller Theological Seminary(M.A.)를 졸업하였으며 미주총신(M.Div.)을 졸업했다. 최종 학위는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에서 정치학과 신학을 접목시켜 받은 Ph.D.(Christian Ethics 전공, Systematic Theology 부전공) 학위이다. 서울대학교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및 한국의 각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 교수로 봉직하였다. 현재에도 Azusa Pacific University의 신학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저자는 풍부한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설교와 리더쉽을 인정받고 있는 미주 한인 교계의 지도자이다. 제자훈련을 중심으로한 1차적 제자도와 세상을 향한 2차적 제자도의 삶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며,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제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윤리적 삶을 강조하고 있다. 2003년도부터 충현선교교회의 2대 담임목사로 부르심을 받아 교회를 진취적이면서도 안정되게 섬기고 있다. 가족으로는 민금숙 사모와 아들 경현, 딸 경진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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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신자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로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를 아버지로 부른다. 영적인 아버지를 대부라 부르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 대부(代父, Godfather)를 통해서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대부는 원래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마피아 두목, 실력있는 후견인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단어는 다분히 종교적인 말이다. 초대교회 이후 종교적으로 중요한 예식인 세례나 입교식에서, 교회의 예식을 방금 마치고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도우려는 영적 후견인을 대부라고 하였다. 실제 부모와 함께 대부나 대모는 이제 막 신앙의 결단을 하게 된 사람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부모가 우리를 낳고 성장을 돕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분이라면, 믿음 안에 있는 아비들과 어미들은 그가 교회의 지도자이든 평신도이든 영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스승들, 아비들이 존재한다. 마음의 고향 같은 아비들이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첫사랑의 은혜를 전달해주었던 어른, 신앙의 실천에 큰 영향을 준 아비와 같은 잊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2012년 나는 영적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물론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도 나 때문에 우셨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고교시절 나를 위하여 교육적으로 마음껏 투자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하시면서 우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신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한 목회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민사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매스컴을 통해서 모교회인 서울 충현교회의 김창인 원로목사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에게 목회세습을 시킨 것을 참회하면서 자신의 평생에 그것이 최대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시 96세의 나이로 장수하셨다. 대형교회 목회세습 1호가 되어 비판의 표적이 된 목사님께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시고 난 후, 그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나는 휠체어에 의지하신 채로 눈물로 잘못을 회개하신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회 당사자의 잘못된 결심으로 말미암은 아픔도 크겠지만, 당시에 함께 동역하시던 선배, 후배 목회자의 아픔은 어떠하였을까? 충현교회를 다니던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났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 선후배들도 무수히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우리 가족들도 내가 목회를 위하여 도미한 이후, 점차 모교회의 출석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었다. 다행히 주변의 사람들은 다른 교회로, 개척한 교회로, 자기 집 주변의 교회로 신앙생활의 터전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상처로 말미암아 교회마저 등지는 사람이 없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알았고 나중에는 교역자로 충현교회에서 성실히 근무한 한 목회자는 교역자이기를 포기하고 섬으로 내려가 칩거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충현교회의 목회세습이 시작되던 1997년은 내 개인적으로 굉장한 변화의 시간이었다. 1988년 정치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학을 나갔던 나는 미국에서 전공을 바꾸어 윤리학으로 학위를 받고, 1997년 그리던 조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전공이 정치학에서 신학, 윤리학으로 바뀌었지만, “정치”라는 화두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신학대학원에서도 관심사는 “정치윤리” 혹은 “정치신학”으로 관심사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들어오자마자 겪게 된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안타까운 국내 상황, 학위를 마치고도 금방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누구나 그러하듯이 여러 학교에 시간강사로 활동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해에 모교회인 충현교회는 대형교회 목회세습의 1호가 되었다. ‘모교회로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의사타진이 있었지만, 나 자신도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깊숙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를 기립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신앙과 윤리에 대한 일종의 기습이었다. 나는 아버지 같은 목사님이 하신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였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이나 비판적인 글을 쓰지는 않았다. 주변의 학자들도 기습적인 목회세습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2000-2001년에 이르러 대형교회 목회세습의 또 다른 장이 열렸다. 광림교회의 목회세습이 발생된 것이다. 이때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윤실의 정신적 울타리 역할을 하시는 손봉호 교수님과 열심히 활동하는 여러 집행위원들과 건강교회운동 분야의 목회자, 교수 및 간사들과 함께 상황을 파악하고 반응할 수 있었다. 성명서 문건을 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하고, 항의집회에 나가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있는 이민교회인 충현선교교회의 청빙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으나,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형교회들이 목회세습을 한다는 것은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남에 있는 교회들은 크기와 영향력에서 남달랐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들의 행위는 교회 전체의 생태계를 향한 강력한 파급효과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목회를 위하여 도미하게 된 관계로 목회세습의 반대운동이 더욱 조직화되는 것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윤실 산하의 건강교회운동본부에서 교회개혁연대가 출범되고, 그리고 교회개혁연대에서 나중에는 교회세습반대운동연합으로 분화, 전문화되면서, 그 이후의 목회세습 반대운동이 이어지는 것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2012년 6월 김창인 목사의 공개회개가 있은 후, 2012년 왕성교회는 목회세습 반대여론을 거스르며 부자간의 교회를 합병하는 편법세습의 중대 사례가 되었다. 그동안 교단의 입장들이 구체화되면서 감리교, 장로교 등에서 교단적인 결정으로 목회세습을 불허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2017년 3월 19일 총회의 목회세습 금지명령을 우회하는 편법세습을 또 다시 결정하였다.
영적 아비들이 흔들리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천막과 판잣집에서 목회의 터전을 일구었던 위대한 아버지들이 이제는 풍요와 기득권 속에서 영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복음의 감격에 건강과 열정과 사재를 털어 헌신해왔던 영적 지도자들이 이제는 교회를 대물림이 가능한 사유화(私有化)의 대상으로 잘못 생각하지 않나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더구나 대형교회의 이 영적 흔들림은 경인지역 약 120여개의 중형교회들의 목회세습, 편법세습 현상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주님의 교회를 맡은 대부들이 지금은 향기로운 영적 대부가 아니라, 기득권과 영향력의 대물림을 위한 냄새나는 대부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역교회 목회자로서는 뛰어들기 부담스러운 기관의 대표자로 헌신한 훌륭한 교회지도자들, 공적인 현장에서 기독교를 대표했던 분들, 멀리 해외에까지 나와서 연합활동을 하였던 분들이 목회세습으로 현장에서 기득권을 극복하지 못하고 본능적인 욕망에 점거된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좋은 일을 칭찬하는 것보다 ‘그릇되다’고 여겨지는 일을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특히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는 사람이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는 것이 좀 주제넘을 수도 있다. 더구나 내게는 목회세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은 나의 영적 대부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내게는 낯설지 않은 목회 선배들이다. 세습을 결행한 어떤 목회자 경우는 내가 그 교회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였던 교회의 선배 목사이다. 어떤 목회세습을 한 선배는 또 우리 교회나 미주교회의 공석 상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고 도움을 주시고 가르침을 주던 분이다.
같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던 영적 후배 된 자가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민교회에 있는 목회자를 대신하여 늘 사랑과 관심과 기대를 떨어버릴 수 없는 조국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목회세습에 대한 나의 고언(苦言)을 드리려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물론 나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민 목회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그들 모두를 일방적으로 대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주변의 많은 이민교회 목회자들이 나의 노력에 지원과 격려를 보내고,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연구한 것을 발표해 달라는 주문도 미리 해오고 있다. 나는 내가 괴로움 속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목회자들이 안타깝게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사랑을 베푸시고 따뜻하게 배려하셨던 분들이라는 사실도 알려드리고 싶다. 나는 그분들과 가졌던 교제와 받았던 선한 영향력을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세습의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고, 목회세습이나 편법세습을 결코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했다면 반드시 회개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다.
여러 차례 루터의 “면죄부에 대한 95개 조항의 반박문”(1517)을 읽으며, 목회세습에 대한 반박이 95개에 이를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목회세습에 대한 문제제기만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모색을 하다 보니 95개라는 숫자를 채우게 되었다. 공부하는 기간만 길었을 뿐, 학문은 얕고 재능이 없는 소위 천학비재(淺學菲才)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목회세습 반대를 위한 95개 조항을 작성하도록 나를 도우셨다.‘하나님이 도우셨다’ 하심은 개인적인 열망을 풀어서 글로 쓸 수 있도록 마음과 환경을 허락하시고 그리고 그치지 않는 열정과 내용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하심이 곧 ‘내가 한 말이 다 옳다’는 강변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목회세습을 거부하는 내 입장이 옳다 하여도, 내 글의 논리적인 전개과정은 흠이 있을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쓴 글이 타인의 마음을 한 올이라도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이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으며, 목회세습에 대한 또 하나의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며 좋겠다. 바라기는 목회세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다시 묵상하여, 우리의 생각을 조정하고, 나아가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결단과 행동의 동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오직 주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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