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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0733975
· 쪽수 : 193쪽
목차
책머리에 3
1. 상사화
극기(克己) 7
까치밥 15
낙수의 계절 21
뜨거운 면피 27
무궁화 34
방빈의 미녀 41
벤자민 잎새들을 바라보며 49
부부 사이 58
숙살과 재생 68
사 선 대 75
상사화 80
선물 문화 86
2. 수필 한담
셰익스피어와 녹색세계 97
소유와 무소유 103
수필문학 한담 111
스프링 댄스 118
아욱국/아름다운 눈물 124
안산 가는 길 131
외할머니 138
질투의 양면성 145
풍자 153
한량의 변 159
홍제천 166
화장실 문화 173
희생과 봉사 181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글
문학은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라 일컬어진다. 가치 있는 체험은 독자에게 교육과 쾌락 등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교육과 쾌락을 문학의 목적으로 볼 수는 없다.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도덕률에 불과하며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오락물에 불외하다. 문학은 교육이나 쾌락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칸트Immanuel Kant가 설파한 바 ‘무목적의 합목적성purposeless purposiveness’에 의한 산물인 것이다.
수필은 어느 장르에서보다 독자에게 강한 친밀감을 안겨준다. 수필에는 특별한 구조나 형식이 따로 없고 문장이 서술적이며 진솔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수필문학의 서술성을 지적하여 수필을 ‘무형식의 형식’을 취하는 산문문학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수필도 역시 문학의 기본 형식이라 할 수 있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형식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명제를 제시하고 논지를 고양시킨 후, 전후와 좌우를 살피며 균형을 고찰한 연후에 결말을 내려야 한다. 수필문학의 창시자인 중국 남송의 홍매洪邁는 저서 <용재수필容齋隨筆>의 서문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태만하여 책을 많이 읽지 못한 탓에 밝히고자 한 바 뜻이 있어도 무엇을 앞에 쓰고 무엇을 뒤에 쓸지를 몰라 전후 구별 없이 붓을 따라 적었으니 명칭을 수필이라 한다.”라고 적었다. 홍매의 진솔함과 겸손함이 짙게 묻어난다. 독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가 어디에 있을까마는, 나의 경우를 보면 여기를 지우고 저기를 메우며 이리 끊고 저리 잇는 등 갖은 요란을 다 떨다가 “ㅤㅇㅔㅆ다! 모르겠다.”며 펜을 내던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홍매가 “명칭은 가라사대 수필이렸다.(目曰隨筆)”라 외치며 한숨을 내쉬는 그 힘겨운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게 전개되며 실감이 난다. “무려 천여 편의 수필을 쓴 홍매도 역시 그랬었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몽롱해진다. 홍매는 스스로 집필의 고충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隨筆’의 해학 속에 자신을 은닉시키려는 심산이었으리라.
천재는 역시 달랐다. 해학은 수필의 강열한 활력이거늘, 홍매는 장르의 명칭에서부터 오묘한 해학을 드러낸 것이리라. 문학은 여느 생명체처럼 산고 없이는 탄생될 수 없나니, 문학이 좋아 작품을 쓰고 문학이 좋아 작품을 읽는 우리 문인들의 심령심령 속에 산고를 극복하는 열정이 태양처럼 작열하기를 기원한다. 빛이여, 저 멀리 높은 산상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롱한 빛이여, 사색의 길목에서 인생을 체험하려는 문인들의 가슴속에 청아한 정서를 함양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