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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5562
· 쪽수 :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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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나는 종이인형처럼 얄팍한 몸피를 가진 아이였다. 저토록 흰 얼굴이 있다니 싶을 만큼 맑은 피부. 아이답지 않은 검고 숱 많은 머리채. 그 눈동자에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는 듯 몽롱함이 담겨 있었다. 오빠야, 인사해야지. 그 어머니의 말에도 말끄러미 그를 올려다볼 뿐 입을 열지 않던 나나는 사흘 만에야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 아이가 그를 부르는 순간, 처음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듯 조심스레 오빠, 하고 부르는 순간 인영은 그 아이의 오빠가 되었다. 인영의 나이 열세 살, 나나는 그보다 세 살이 어렸다.
어릴 적부터 딸은 그러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구별하지 않았으며 그저 자신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선하며 그 반대의 것은 나쁘다고 믿었다.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를 즐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이었을지도 몰랐다.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부터 시작된 엄마와 아빠의 끝없는 언쟁 때문일 수도 있었다. 허영심이 많았던 전남편, 입만 열면 수십억대의 사업이 펼쳐지고 세상 누구라도 제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노라 큰소리치던 사람. 나나의 거짓말이 그의 유산이라고는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예쁜 아이였으므로, 그 눈빛이 그지없이 아름다웠으므로 사람들은 조잘조잘 얘기하는 나나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희주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거짓말이 나나를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를 꾸며내는 나나의 눈은 끊임없이 반짝이고 그 안색은 홍조로 빛이 났으며 거의 사로잡힌 듯 보였다. 그런 나나에게 대부분의 사람들, 그녀, 희주조차도 사로잡혀 있었다.
옷걸이의 코트를 벗겨내 건네는 이 팀장 쪽으로 나나가 등을 돌리며 섰다. 그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나나에게 코트를 입혀주었다. 부드러운 모피의 소매를 빠져나온 부드러운 손으로 나나는 이 팀장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이 팀장은 바로, 나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공들여 선택한 사향의 향기가 전해지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엉거주춤, 손을 잡힌 채 서 있는 그를 나나가 살짝 잡아 당겼다. 이 팀장의 숨결이 조금 가빠졌다. 보지 않아도 나나는 그의 복잡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점장으로 있었던 어느 해 자금유출사건에 연루되었던 경력이
있는 사내. 그 불리함을 딛고 강남의 PB센터 팀장이 되었으니 그는 이면의 계약, 이면의 거래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나나가 그를 선택한 이유였다. 나나는 잡힌 이 팀장의 손, 그 손바닥 한가운데를 살짝, 부드럽게 간질였다. 이 팀장의 몸이 움찔했다.
“도와주시면……”
나나는 잠깐 말을 끊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