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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지은이), 폴 뮤즈 (사진)
  |  
현대문학
2013-10-14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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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책 정보

· 제목 :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72756804
· 쪽수 : 272쪽

책 소개

이화열의 글과 폴 뮤즈의 시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68장의 사진이 만났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통해 죽음과 삶의 깊이를 함께 투시해볼 수 있는 프랑스적인 정경들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목차

Part 1 에둘러 갈 수 있는 길, 왜 가로지르려는 걸까?

1 별을 보는 노인
2 동네 이발사
3 앙리지누 가의 아침
4 문틈 사이로 보이는 풍경
5 카르디날 르무안 가
6 친구의 가방
7 외출
8 마레 거리의 댄스 스타
9 웃음
10 메트로에서 풍기는 사과 냄새
11 생미셸의 하녀방
12 그녀의 향기
13 블루디스크, 길모퉁이 카페
14 완행열차

Part 2 진짜 이야기, 그것은 타인의 이야기

1 내가 예순넷이 되었을 때
2 불면증
3 서양장기Jeux d'echec
4 크리스마스 환상
5 가위각시님
6 신발
7 시어머니의 화병
8 영원I’infini
9 남겨진 말
10 엘리스를 위하여
11 발자크의 거리
12 아메리카노
13 소음 단상
14 도둑맞는 꿈

Part 3 ‘존재하다’는 동사 없이 ‘떠나다’는 동사도 없다

1 마르티니크의 수탉
2 로제와인Le vin rose
3 미디의 거짓말쟁이
4 부르고뉴에서
5 차가운 여름
6 풍경을 닮은 여인
7 세벤느에서 만난 소녀
8 하일랜드에 사는 고양이
9 런던
10 봄의 풍경
11 부다페스트
12 사과파이

에필로그

저자소개

이화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 프랑스 파리 타이포그래피 국립아틀리에(ANRT)에서 수학했다. 정치광고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한국 도시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다. 박사 과정 중 파리지앵인 현재 남편을 만나 파리에 정착했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지지 않는 하루』,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마망 너무 사양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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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뮤즈 (사진)    정보 더보기
1960년 영국 요크셔 출생. 11세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만난 것을 계기로 사진에 매료되었다. 영미문학을 전공한 후 수단과 포르투갈에 체류했다가 1990년부터 파리에 정착했다. 현재 번역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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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에필로그 중에서

사과파이를 만들 때, 밀가루와 버터의 분량을 맞추는 것은 치밀해야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과파이의 맛은 번번이 다르다. 경험이 눈금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20년 동안 사과파이를 만들었다 해도 오븐에서 엉뚱하게 모래처럼 부서지는 파이를 꺼내는 일도 생긴다. 우리가 예상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이 만나는 접점을 눈금처럼 정확하게 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죽을 씌우면서 생각한다.
완벽한 사과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뜻밖의 세상, 온갖 우연으로 가득 찬 삶, 이런 요소들이 갖는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사과파이를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어이 없이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스타일로 묵묵하게 파이를 굽는 것뿐이다.
파이를 오븐에 밀어 넣는다.

고뇌와 황홀의 시간도 끝났다. 앙리지누 가의 일상, 그 관찰과 관심의 앙금을 기록하는 지난 2년은 나에게 매혹적인 사유의 시간을 덤으로 안겨주었다. 세상의 배경은 제각기 다르지만 일상의 밑그림은 거울처럼 우릴 비춰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과장하지 말게. 지나치게 표현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영국 작가 존 버거의 친구는 병상에서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삶에 대해서든, 디자인이나 글쓰기에서든 군더더기를 붙이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 번 떠올리곤 했다.


센 강변과 맞닿는 곳에서 시작해서 팡테옹 신전 뒤의 무프타흐 거리와 만나는 카르디날 르무안 가. 생제르맹 가와 교차하는 길모퉁이 우체국 앞 홈리스는 여느 아침처럼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낮은 벽에 걸터앉아 행인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아침마다 홈리스 앞에는 같이 노닥거리는 사람이 있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매일 아침 같은 얼굴이 아니다. 아이 눈에도 신기한 광경이다.
“부자 동네 사람들은 동냥하면서 우정도 사는 모양이야.”
정말이지 그들은 친근해 보인다. 홈리스는 불룩한 배를 내밀고 앉아 고상한 차림의 중년 여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대꾸한다.
“그래도 집에 있는 남자 하나가, 길거리에 있는 남자 둘보다 나은 법이지.”
그 말을 듣고 여인이 웃는다.
“이젠 정말 가봐야겠네.”
시계를 들여다보며 게으름을 책망하듯 말하지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다. 그녀는 지갑을 열고 지폐를 한 장 꺼낸다. 건네고 받는 그들의 손놀림은 어찌나 익숙한지, 마치 줄 것과 받을 것을 정확히 아는 사이 같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홈리스에게 동냥을 하는 순간, 그가 던지는 대화의 주술에서 빠져나갈 재간이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pp. 35~36, 「카르디날 르무안 가」


바닷가 자그마한 촌락의 원주민 아이들에게는 본토에서 온 바캉스객이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였고, 시간에 맞춰 간식을 먹고 낮잠을 자며 보호자 없이는 절대 거리에 혼자 나가본 적이 없는 메트로폴리탄 아이들에게는 웃통을 벗고 골목길을 쏘다니는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이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
첫날 밤, 긴 여행과 시차 때문에 쓰러져 잠이 든 나를 깨운 것은 느닷없는 수탉의 울음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수탉은 담장 바로 옆에서 목청을 높여 울기 시작했는데, 집의 모든 벽 위에 뚫린 통풍창으로 바람 대신 타고 들어오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저택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남편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 후 수탉을 향해 외마디 짧은 욕과 함께 돌멩이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탉은 조금 멀리 도망치는 것 같더니만, 금세 목을 가다듬고 ‘꼬끼오’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밤중이잖아. 수탉은 새벽에 우는 거 아니야?”
“문제는 수탉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 있어.”
수탉은 밤새도록 기절할 듯 잠 속으로 떨어지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정확히 새벽 두 시만 되면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흘째 되는 날, 난 퀭한 눈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이곳을 뜨든지, 수탉을 잡든지 선택을 하라고.”
남편은 이미 렌트 비용을 선불로 지불했기 때문에 환불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서 J에게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J가 마치 인디언 족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무조건 믿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갔던 남편은 잠시 후 사냥 공기총을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려왔다. J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공기총을 들려 주면서 수탉을 잡을 수 있는 허가권을 준 것이었다.
공기총을 든 남편의 모습은 서글플 정도로 어설펐다. 그렇게 수탉사냥이 시작되었다. 놈을 잡으러 나갔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꼬마들이 꼬물꼬물 모여들었다.
녀석들은 남편 뒤를 따랐고, 나도 초조한 마음으로 골목을 기웃거렸다. 별장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에서 산책하는 놈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남편이었다. 순식간에 남편은 공기총 네 발을 쐈지만, 마지막 한 발만이 놈의 꽁지를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놈은 자기도 조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듯 푸드덕 날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내빼고 말았다.
난 수탉을 놓친 남편이 무능하고 미웠다. 사냥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남편에게 그놈은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 강적이었다. 나는 갑자기 수탉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의 순응과 무신경함에 부아가 치밀었다.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이야!”
남편은 나에게 공기총을 내밀었다. 그때 나를 쳐다보는 동네 아이들의 시선에서 수탉 소음에 대한 나의 과민반응과 히스테리가 이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새벽 두 시에 놈은 조금 먼 거리에서 울어대기 시작했고 그다음 날은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또다시 담장 옆에서 울기 시작한 다음 날, 우리는 짐을 꾸려 호텔을 찾아 떠났다.
마을을 한참 벗어나서 발견한 호텔의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수탉 울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음.’
나는 그날 죽음 속으로 떨어지듯 깊은 잠을 잤다. 사탕수수보다도 더 달콤한 잠이었다.
파리에 돌아와서 몇 달이 지날 즈음 J가 파리에 잠깐 들른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저녁식사에 J를 초대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고 말했고, 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무신경했던 처신에 복수하듯 정성스럽게 식탁을 차렸다.
하지만 그는 저녁 아홉 시가 되어도, 열 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현관 벨 소리가 울린 것은 열한 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초대받지 않은 여자 둘을 양쪽 팔짱에 끼고 서 있는 J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비문화적이거나 무교양이 아니었다. 도시의 메시지 회로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자연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들이 어떻게 수탉과 공생이 가능한지 산뜻하게 이해되었다.
마르티니크 여행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pp. 188~191, 「마르티니크의 수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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