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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72757474
· 쪽수 : 252쪽
책 소개
목차
엔다이브 끓는 면도 접시
헤르메스의 날개
모피 코트 블루스
우리 언젠가
독 사과
죽은 참새를 위한 장송곡
깜짝 자동판매기
정원 난쟁이 요정
포도나 까 줘
트라우마에 빠진 쥐
개미허리 아가씨
해부학적 자세
마녀 본부
카이사르와 브리지트 바르도
안전성냥
저주의 못
나이스 돌스 & 유다 인형
해 줘, 하고 싶어 죽겠어
로사 투르비나타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 널 떠나고 나서 난 지혈 솜을 구하러 약국으로 달려가야 했어. 내 심장을 다독거리는 데 필요한 것이었지. […]
_ 「엔다이브 끓는 면도 접시」
[…] 앞서 말했듯 얼어붙은 날이었고 만화 속 인물에 붙는 말풍선처럼 내 입김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신발이 땅에 얼붙었고 바지는 얼음으로 얇게 덮여 움직이면 쩍쩍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일단 그 큰 차의 짐칸에 가방을 던져 넣고 그녀 옆에 푹 파묻혀 앉자 고난이란 고난은 어느새 잊었고, 얼음이 녹아 바짓가랑이가 허벅지에 으슬으슬 달라붙자 순식간에 차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큰 나뭇가지들이 얼음 무게를 이기지 못해 성냥개비처럼 동강 나 도로에 떨어져 있는 바람에 이따금 그녀는 갑작스레 속도를 줄여야 했다. 그럴 때는 그녀의 다리가 해먼드오르간의 페달을 밟는 것처럼 우아하게 움직였다. 풍경은 자동차 양쪽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멋대로 자란 버드나무와 황토색 갈대 사이 누추한 농막. 사실 따분하기 짝이 없지, 그렇게 예쁜 아가씨 옆에 앉아 있고 내 앞의 그렇게 눈부신 대시보드에서는 클리프 리처드가 「리빙 돌」을 불러 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오직 하나뿐인 걷고 말하는 살아 있는 인형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예를 들어 저기 저 농부처럼 머리통에 목도리를 감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는 처지였다면 말이지. 해가 구름 사이로 어슴푸레 비치면 나무들은 녹은 유리 속에 서 있는 듯 반짝거렸다. 그리고 때때로 내가 그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것만 같았다. 급커브를 돌 때는. 나는 연신 그녀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주근깨가 있고 토실한 그녀의 뺨. 그 멋진 붉은 머리, 진짜냐고 진작 물어보았고, 그녀가 그렇다고 하자 나는 그저, 그러니까 이게 베네치아 금발이구먼, 따위의 말을 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세요, 진짜랍니다.” 나는 그새 클리프 리처드를 따라 부르며 그녀를 바로 쳐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 와중에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 털과 거웃도 그렇게 붉은색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살짝 더 떨어져 앉음으로써 그녀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최소한 그녀와 눈을 맞추면서도 단숨에 넋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기막힌 눈동자. 내 평생 본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갈색이었다. 금빛이라 해도 좋은. […]
_「모피 코트 블루스」
[…] 얼마나 외로워야 더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나. 얼마나 침묵해야 더는 그리움을 말하지 않게 되나. […]
_「독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