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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9706
· 쪽수 : 152쪽
책 소개
목차
친애하고, 친애하는 009
작품해설 130
작가의 말 14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물두 살이 되었던 그해 봄, 내가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미뤄두었던 설거지를 막 마치고 창밖을 잠시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창밖 커다란 나무의 우듬지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새들이 일제히 꽃송이처럼 떨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약하자면,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할머니네 집에 가서 혼자 지내는 할머니를 몇 달간 ‘돌봐드리라’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넌 할 일도 없잖아.”
할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생각나는 밤이면 나는 이제, 내가 그러했듯이 할머니 역시 할머니의 한계 안에서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내가 그때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엄마를 실망시킬 때마다 엄마가 ‘너는 아빠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라고 말을 하거든.” 언젠가 나는 홍대 인근 모텔의 침대 위에 누워 엑스 자 모양으로 생긴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나보다는 아빠를, 그러니까 엄마보다 무능한 연구자일 뿐 아니라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젊은 행정직원과 바람을 피운 아빠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는 한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결국 그 침대 위에서 “나는 이렇게 엄마를 실망시키는 사람으로 남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