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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9874
· 쪽수 : 280쪽
책 소개
목차
벚꽃의 우주 009
작품해설 254
작가의 말 27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994년이었다. 역사적인 폭염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될 그해 여름은 아직 다가오기 전이었다. 호수의 수면으로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낸 채 떠오르고, 축사의 가축들이 점액질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마지막 숨을 헐떡이게 될 그 여름, 노인들이 더위를 못 이기고 여기저기서 숨을 놓게 될 그해 여름, 뉴스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보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봄이었고, 폭염이 몰려올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늦추위가 몰아닥쳤던 3월의 생일에 미라는 장갑과 목도리까지 하고 꽁꽁 언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의 애인이 찍은 그 사진을 미라는 보지 못했다. 그 사진을 떠올리면 하얀 입김만 떠오를 뿐이다. 하나 둘 셋 할 때마다 그의 입가에서 안개처럼 번져나가던. 그래서 흐릿해져가던 그의 얼굴이.
미라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거였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 엄마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의 이야기까지. 그러니까 그녀의 인생 전체에 대해. 미라의 나이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였다. 소녀적인 감성을 운운하기에는 많은 나이였지만 평탄하지 못했던 성장 과정이 그녀의 성격을 왜곡시켜버린 부분이 있었다. 멈춰버린 성장과 가속페달을 밟아버린 성장이 동시에 존재했다. 여전히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더러운 담요를 돌돌 말고서야 잠이 든다거나, 그렇게 잠든 꿈속에서 괴물에 쫓긴다거나. 그러나 잠에서 깨었을 때는 구겨진 담요를 발로 밀어 치우고 차가운 얼굴로 양치를 했다. 꿈속 괴물보다 언제나 더 무서운 건 출근 시간이었고 하루하루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한 염증이었다.
오랜 후 미라는 반복해 생각해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