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조선사 진검승부

조선사 진검승부

(조선왕조실록에 감춰진 500년의 진실)

이한우 (지은이)
  |  
해냄
2009-11-25
  |  
1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9,000원 -10% 450원 7,650원 >

책 이미지

조선사 진검승부

책 정보

· 제목 : 조선사 진검승부 (조선왕조실록에 감춰진 500년의 진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73372256
· 쪽수 : 366쪽

책 소개

<조선왕조실록>에 드러난 조선인들의 일상과 희노애락을 분석했다. 저자는 '사람'이 있는 역사 읽기를 지향하며, 500년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한 실록 속에 숨겨진 다종다양한 인간을 이야기한다. 권력과 승부, 욕망과 처세를 중심으로 선정된 40가지의 사건들을 전체 5장으로 구성하였다. 2007년~2008년 <주간조선>에 '이한우의 조선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원고를 보완하고 추가집필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사람이 있는 역사를 위하여

1장 피할 수 없으면 승부를 보라 - 승부의 세계
그 많던 왕씨는 어디로 사라졌나 / 명나라의 제주 정탐을 막아라 / 적국이 우리의 땅을 알아서는 안 된다 / 수양대군과 정면대결하다 / 권력을 버린 자에게는 관대하다 / 금강산 유람도 맘대로 못하는가 / 바른말만 하다가 귀양만 다니면 무슨 재미인가 / 나는 승은을 입은 몸이다 / 승자는 정적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 / 조선사 교양 - 조선에서 정승이 되는 조건

2장 살아남으려면 권력을 거머쥐라 - 권력의 실체
장자라고 모두 왕이 된다더냐 / 남의 나라에 팔려온 것도 서러운데 독살이라니 / 내가 벌줄 수 없는 사람이다 /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 안보가 우선이다 / 힘없는 자에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 조선으로 망명한 청나라 왕자 / 뇌물로 왕위에 올랐다던데 / 조선사 교양 - 조선의 의견 수렴 과정

3장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쓰러지다 - 불편한 진실
임금이 나무라시기에 화가 나서 때렸습니다 / 어찌 이리도 여복이 없는가 / 이 기구한 팔자를 어이할꼬 / 뇌물이 폭주하고 청탁하는 인사가 그득하네 / 여인국을 상상하다 / 저런 이연수 같은 놈 / 담배 피우며 우스갯소리나 하다니 / 조선사 교양 - 조선 중기의 권력 지도

4장 뜻이 좋아도 법도가 있다 - 겉과 속의 부조화
임금님의 치통은 허준도 못 고쳤다 / 궁궐에서 술이나 한잔하세나 / 신고식 하느라 집까지 팔았다더라 / 홍길동은 시대마다 다시 태어난다 / 환관 김처선을 석방하라 / 게으르니 어찌 살이 찌지 않겠습니까 /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임꺽정밖에 없다 / 선조, 흑인을 만나다 / 조선사 교양 - 가문의 부침으로 보는 조선 500년Ⅰ

5장 역사는 실력 있는 자를 기억한다 - 감출 수 없는 재능
경복궁은 환관이 설계했다? / 조선 최초의 외교관은 귀화인이었다 / 처녀 주문사가 왕의 제문을 받다 / 나는 조선 사람이다 / 당대의 명필, 그의 업무 능력은? / 경서는 언문으로 쓰면 안 되는가 / 전쟁이 끝나면 장수는 필요 없다 / 선조를 왜 무능하다고만 하는가 / 진주 선비, 베트남을 방문하다 / 조선사 교양 - 가문의 부침으로 보는 조선 500년Ⅱ

찾아보기

저자소개

이한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과 〈문화일보〉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고 2002~2003년에는 논설위원, 2014~2015년에는 문화부장을 지냈다. 2001년까지는 주로 영어권과 독일어권 철학책을 번역했고,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탐색하며 『이한우의 군주열전』(전 6권)을 비롯해 조선사를 조명한 책들을 쓰는 한편, 2012년부터는 『논어로 논어를 풀다』 등 동양 사상의 고전을 규명하고 번역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논어등반학교를 만들어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숲양현재 CEO논어학교에서도 리더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약 5년에 걸쳐 『태종실록』을 완역해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으로 냈다. 그 외 대표 저서 및 역서로는 『이한우의 사서삼경』(전 4권), 『대학연의』(상·하), 『완역 한서』(전 10권), 『이한우의 주역』(전 3권),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전 2권), 『이한우의 설원』(전 2권), 『이한우의 인물지』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세종은 문치(文治)뿐 아니라 국방력 강화 면에서도 첫손 꼽히는 조선의 국왕이다. 세종 시대의 국방력이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특히 세종은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지도자였다. 당시의 첨단 신무기라면 화포(火砲), 즉 총통을 일컫는다.
태종은 세종에게 국왕 수업을 시키면서 “화포는 군국(軍國)의 중대사”임을 역설했다. 태종이 대마도 정벌에 나서고 세종이 김종서를 통해 6진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두 임금이 개인적으로 용맹했다기보다는 성능이 뛰어난 화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 27년(1445년) 7월 18일, 2,400명 규모의 최정예 포병 부대인 총통위(銃筒衛)가 설치된다. 마침내 우리 역사 최초로 포병 부대가 탄생한 것이다. 3년 후인 세종 30년 1월 28일, 총통위의 규모를 4,000명으로 확대했다. 세종 때나 문종 때는 총통위가 핵심 부대로 취급 받아 국왕 경호는 물론이고 북방 전투에도 투입될 정도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는 총통위가 통제하기 힘들 만큼 막강해지자 두려움을 느껴 총통위를 혁파해 버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 안보를 위해 내린 오판(誤判)이었다. 이후 조선의 국방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고 화포의 성능도 나아지지 않았다.
―2장 살아남으려면 권력을 거머쥐라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 안보가 우선이다> 중에서


율곡 이이라고 해서 200년 가까운 악습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워낙 자존심이 강하고 거만하기까지 했던 스물아홉의 청년 이이는 승문원에 발령이 났다. 승문원 선배들이 허참례를 요구하자 이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물론 선배들은 발끈했다.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이는데 혼자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이이를 좋게 볼 리 없었다. 그 바람에 한동안 이이는 선배들의 미움을 받아야 했다. 그때의 수모를 잊지 못한 이이는 훗날 선조에게 다시 한 번 이 악습의 폐지를 건의했다.

“대개 호걸의 선비는 (바로 이 허참례 때문에) 오히려 과거를 볼 생각조차 않고 있습니다. 관을 망가트리고 의복을 찢으며 진흙탕 속에서 이리저리 굴려 위엄과 체통을 모두 손상당하고 염치를 버린 다음에야 근무할 수 있도록 한다면, 호걸의 선비로서 누가 세상에 쓰이기를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러나 한번 생겨난 악폐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다가 조선이 망하면서 함께 사라지게 된다. 허참례 때문에 겪은 조선 백성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국망(國亡)의 원인 중 하나인 관리의 부패가 실은 허참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참례를 위해 신참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돈을 동원해야 했고, 결국 그것을 갚으려면 부정한 행위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장 뜻이 좋아도 법도가 있다 <신고식 하느라 집까지 팔았다더라> 중에서


경복궁의 설계자는 누구일까? 서울의 궁궐들을 돌아보면 아름답기로야 창덕궁이 최고지만 역시 정궁(正宮)으로서의 위엄은 경복궁이 으뜸이다. 다른 궁궐은 경복궁의 건축 미학을 약간씩 변용한 것에 불과하다.
토막 상식 하나, 경복궁을 만든 사람은? ‘태조 이성계’라고 하면 너무나 무성의한 답이다. “예술의전당을 만든 사람은?”이라고 물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꿔본다.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석철이다. 그렇다면 경복궁을 설계한 이는?” 이럴 경우 상식이 풍부한 한국인이라도 십중팔구 ‘정도전’이라고 답한다. 유감스럽게도 틀린 답이다. 정답은 김사행이다.
경복궁과 관련해 정도전이 한 일은 태조 4년(1395년) 12월에 경복궁이 완성된 후 전각(殿閣)의 이름을 지은 것뿐이다. 경복궁,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강녕전 등의 이름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경복궁을 지은 천재 건축가 김사행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작명자 정도전이 차지했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게 바로 역사 왜곡이다. 왜곡의 ‘왜(歪)’ 자를 살펴보라. 올바른 것[正]을 아니다[不], 혹은 잘못된 것[不]을 바르다[正]고 하는 것이다. 이런 왜곡이 일어난 이유는 그가 환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후일의 태종)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당했기 때문에 오욕의 이름으로 기억되었다.
―5장 역사는 실력 있는 자를 기억한다 <경복궁은 환관이 설계했다> 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