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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73372263
· 쪽수 : 376쪽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난겨울이었다. 춘천은 짙은 안개 속에 침몰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의 집필실. 창문으로 실내를 들여다보니 소설가 이외수는 집필에 몰두해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황금빛 물고기 몇 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벽시계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죽은 언어의 껍질들이 방안 가득 흩어져 있었다. 나는 실내로 잠입해 들어가 소설가 이외수의 의식이 원고지와 분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지친 표정으로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허공을 헤엄쳐 다니던 황금빛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원고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불쑥 허공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해탈의 경지를 알고 싶으면 물풀을 보라.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로 물짐승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봄이면 연둣빛 싹으로 돋아나서 여름이면 암록빛 수풀로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다갈색 아픔으로 흔들리다 겨울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목숨.
그러나 물풀은 단지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생명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대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물살과 합일된 상태로만 흔들린다.
진정한 사랑도 합일에 있고 진정한 깨달음도 합일에 있다.
모든 선각자가 이구동성으로 도는 하나라고 설파한 사실을 물풀의 흔들림에 근거해서 한 번쯤 깊이 숙고해 보라.
사랑은 직유(直喩)가 아니고 은유(隱喩)다.
때로는 봄날의 이슬비로 그대 눈썹을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여름날의 소낙비로 그대 늑골을 적시기도 한다. 때로는 가을날의 강물 소리로 그대 인생을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날의 진눈깨비로 그대 영혼을 적시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은유된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직유된 사랑에 머물러 있다.
인간은 네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이다.
어떤 눈을 개안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크기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