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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요리/살림 > 술/음료/차 > 술
· ISBN : 9788973372621
· 쪽수 : 23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나는 행복을 발효하는 고 브루마스터!
1. 맥주형 인간의 고백
맥주 한 병만 시켜도 되겠습니까
제 눈에 안경
밑바닥 인생들을 위한 영혼의 만찬
하루키를 떠올리며
조선시대 맥주를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네
미사일 만들기보다 어려운 맥주 만들기
아기의 혀가 입안을 애무한다
맥주 맛도 모르면서
* Tip - 비어홀릭 기초 문법
2. 망원동 브루어리를 열다
공항 벤치에서 맥주 들이켜기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한국 맥주의 매트릭스
락스, 진자 락스?
포기와 도전의 갈림길에서
조지 오웰의 취향, 인디아 페일 에일
맥아보리가 싹을 틔울 무렵
2006년 여름 대동강에 빠지다
* Tip - 맥주에 얽힌 오해
3. 맥주가 익어가는 시간
효모가 부리는 마법
마트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만나다
졸지 마, 쫓겨날 거야
정체불명의 호프집
설탕아, 맥주를 부탁해
인생 노선도를 바꾸어 타다
맥주가 취미가 된 남자
차이 만세! 혁명 만세!
* Tip - 맥주별 어울리는 잔과 온도
4. 조촐하고 시끌벅적한 맥주 시음회
드디어 개봉박두!
피델의 추억
수입 맥주는 왜 비싼 걸까?
너는 내 운명
맥콜은 미국 금주법이 낳은 것?
나는야 삐루당
또 한 명의 비어홀릭, 꿈의 지도를 그리다
* Tip - 수입 맥주 전문점 BEST 10
5. 양조장에서 보릿가루를 뒤집어쓰다
강브리뉘스가 사는 곳을 들여다보다
얼른 가서 다른 효모 들고 와
맥주 석 잔이 주량이 브루마스터
청소, 소독, 청소, 소독, 청소, 소독
키를 아십니까
사단장이 떴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다니
내 손으로 효모를 뿌리다
* Tip - 맥주당 고나무가 콕 집은 맛있는 맥줏집
에필로그. 빚고 마시고 즐기라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출근 전에는 얼음을 대야에 넣고 선풍기 타이머를 맞춰놓고 현관을 나섰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발효가 잘되고 있을까? 얼음이 금방 녹으면 어떡하지?’란 조바심에 회사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발효통은 우렁각시였다. 나를 위해 밥을 해주기는커녕 항아리에서 잠만 자면서 시원하게 해달라는 까다로운 우렁각시.
나흘째부터 자다가도 불쑥불쑥 발효통에 귀를 댔다. 임신한 아내 배에 귀를 기울이는 남편이 이런 심정일 것 같다. 양조 참고서에는 발효가 잘 진행되면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돼 있던데, 내 발효 통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 효모가 뜨거운 서울 날씨를 못 이기고 태업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 일주일이 지났다.
발효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한달음에 퇴근해 발효통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1차 발효가 제대로 됐는지 점검하는 운명의 날이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3장 <맥주가 익어가는 시간> 중에서
와인형 인간들이 쓰는 말 중에 ‘테루아(terroir)’란 것이 있다.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토양 등의 특색을 가리킨다. 똑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지역마다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와인의 개성이 다르다고 유럽 사람들은 생각한다. 머나먼 영국 서포크의 맥아, 망원동의 땅, 햇빛, 공기와 내가 구입한 충북 제천시 청전동의 생수가 망원 브루어리 인디아 페일 에일의 테루아를 만든다. 브루마스터 고의 맥주를 마시면서 다들 한 시간 넘게 자기가 마셔봤던 맥주와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에 대한 추억을 말하느라 바빴고, 동료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젖을 드러내며 웃을 때마다 치아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4장 <조촐하고도 시끌벅적한 맥주 시음회> 중에서
‘무엇에 빠졌다’는 걸 영어로 ‘비 인투(be into)’라고 표현한다. 말하자면 대학 시절의 나는 무언가에 ‘인투’해 본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모험은 아니었지만 맥주를 만들면서 재밌었다. 여행을 하거나 어학 공부로 미래에 투자하면서 한 달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맥주 양조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으로 뭔가에 ‘인투’해 본 것 같다. 그렇게 만든 맥주를 친구와 취재원에게 나눠주면서 즐거웠다. 내가 가진 걸 모두 건 한판 도박은 아니었지만 하우스 맥주 양조장에서 2주 넘게 일하면서 짜릿했다.
‘홀릭’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자신의 취미 같기만 바랄 게다. 세상이 음악처럼 신나고 리듬감 있었으면. 농구처럼 세상 사람들의 팀워크가 좋았으면. 번개처럼 짜릿했으면. 세상 모든 일이 맥주 만드는 일처럼 적당히 예측 가능하고 적당히 변수가 있어서 설레면서도 사랑만 쏟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낮으면 좋을 텐데.
9월 30일 오후 3시, 메가씨씨 문을 닫고 나오면서 이제 어디로 갈까 잠시 생각했다. 직접 만든 술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사람들이 내가 만든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