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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이한우 (지은이)
  |  
해냄
2008-08-15
  |  
2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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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책 정보

· 제목 :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제1공화국/제2공화국
· ISBN : 9788973379897
· 쪽수 : 562쪽

책 소개

‘대한민국’의 시작을 열었던 이승만의 면모를 되새긴다. 이승만은 몰락한 왕족의 후예에서 독립운동가로 거듭나 민간 외교 사절을 자임하며 멸망한 나라, 식민지라는 공백을 건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기, 미국 유학 시절, 건국과 이어진 정치 논란, 하야 후 하와이 시절의 사건들을 이승만 집필 원고와 당시 사진 자료, 그간 활발히 진행되어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적었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나라’이다

│ 1 │ 유생 이승만
│ 2 │ 개화 청년
│ 3 │ 한성감옥 속에서
│ 4 │ 미국으로 떠나다
│ 5 │ 밀사 실패 후 결심한 유학
│ 6 │ 모색과 좌절 그리고 망명
│ 7 │ 하와이를 근거지로 삼다
│ 8 │ 1차 대전 종전과 3·1 운동
│ 9 │ 전쟁의 발발로 끝맺은 암중모색
│ 10 │ 광복과 건국
│ 11 │ 정치가로의 변신
│ 12 │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고난의 대장정
│ 13 │ 6·25 전쟁, 전략가 이승만
│ 14 │ 국가 재건의 과제
│ 15 │ 거인의 최후

|글을 맺으며| 남한의 이승만, 서독의 아데나워

저자소개

이한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과 〈문화일보〉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고 2002~2003년에는 논설위원, 2014~2015년에는 문화부장을 지냈다. 2001년까지는 주로 영어권과 독일어권 철학책을 번역했고,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탐색하며 『이한우의 군주열전』(전 6권)을 비롯해 조선사를 조명한 책들을 쓰는 한편, 2012년부터는 『논어로 논어를 풀다』 등 동양 사상의 고전을 규명하고 번역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논어등반학교를 만들어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숲양현재 CEO논어학교에서도 리더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약 5년에 걸쳐 『태종실록』을 완역해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으로 냈다. 그 외 대표 저서 및 역서로는 『이한우의 사서삼경』(전 4권), 『대학연의』(상·하), 『완역 한서』(전 10권), 『이한우의 주역』(전 3권),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전 2권), 『이한우의 설원』(전 2권), 『이한우의 인물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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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945년. 이승만은 만 70세였다. 이승만은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유엔 창립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정부와 교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승만은 옵서버 자격으로라도 참석하기 위해 ‘임정 대표단’을 구성했다. 문제는 연합위원회 워싱턴 사무소와 중한 민중 동맹의 한길수도 각각 회의 사무국에 참석을 신청한 것이다. 다시 분열상이 드러났다. 이들은 며칠간의 논쟁을 거쳐 겨우 회의에 제출할 문서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 문서는 접수 자체를 거부당했다. 사무국장이 친소 인물인 앨저 히스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일본의 항복 소식이 전해진 1945년 8월 15일까지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1945년 8월 14일 밤 11시(미국 시간), 일본의 항복 소식이 라디오 임시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이 시간 바로 곁에 있었던 프란체스카의 회고담이다.

그분은 임시 뉴스를 듣다 말고 벌떡 일어나셨어요. “이봐, 일본이 항복했어. 우린 귀국하는 거야.” 그분은 제 손목을 꽉 붙잡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분으로서는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었죠. 그저 눈물을 글썽이면서 제 손만 꽉 잡고 계셨습니다. 전 얼떨떨한 가운데 이분이 너무 흥분하셔서 어쩌나 하는 염려마저 들었습니다.
― <9장 전쟁의 발발로 끝맺은 암중모색> 중에서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기독교 소(小)조선’을 만들 포부를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와이 순회여행 도중 이승만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한인 소녀들의 불쌍한 처지였다.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중에는 어려서 중국인이나 하와이 본토인에게 팔려가 한국말을 모르는 여자 아이들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부모들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7월 29일 이승만은 여행을 마치고 호놀룰루로 귀환하면서 그중에서도 사정이 어려운 소녀 여섯 명을 함께 데리고 왔다. 이때는 아직 이승만이 교장으로 취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단 감리교 여선교회에서 운영하던 수잔나 웨슬리 홈에 소녀들을 맡겼다. 그곳의 사감이던 앤더슨은 “당분간 이 아이들을 맡아주겠지만 공립학교에 보내 다른 인종들과 융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한인은 한국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바람에 한인중앙학교가 개학할 때 소녀 여섯 명도 입학했고, 다른 소녀들도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11월 기준으로 등록한 학생 99명 중 18명이 여학생이었다. 손세일은 “이로써 이승만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녀공학을 실천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 <7장 하와이를 근거지로 삼다> 중에서


4·19 당시 민권의 승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 성명 발표이다. 이승만이 하야를 결심하게 된 시점 및 과정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1995년 말 필자가 《조선일보》에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을 연재하고 있을 때 하야 성명이 나오게 된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유일라(兪一羅, 본명 주봉, 당시 59세)가 직접 찾아와 35년 만에 처음으로 당시 경무대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전부 털어놓았다. 유씨는 1960년 4월 26일 데모대 대표 다섯 명 중 수석 대표로 경무대에 들어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결심을 받아낸 장본인이다. 그의 증언은 시민 대표가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할 수 있었던 배경에 군의 도움이 있었다는 비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하야를 결심했다는 결정적 증거, 사태 직후 군정 실시의 움직임이 일부 있었지만 좌절된 이야기 등을 고스란히 밝히고 있다.
― <15장 거인의 최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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