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73812165
· 쪽수 : 192쪽
책 소개
목차
마음의 푸른 상흔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합니까?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당신의 귀감이었습니까, 아니면 악몽이었습니까? 인생이 당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당신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당신의 눈 색깔이, 당신의 머리 색깔이 어떻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습니까? 밤이 두렵습니까? 잠꼬대를 합니까? 당신이 남자라면, 성질 고약한 여자들을, 여자란 자고로 따뜻한 날갯죽지에 남자를 품어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 최악은 그럴 줄 안다고 착각하는 여자들이죠 ― 떨어져 나가게 할 가슴 시린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상관부터 아파트 관리인까지, 마주치기도 싫은 주차단속 요원부터 한민족 전체를 책임지는 불쌍한 마오쩌둥까지, 모든 사람들이 ― 당신을 포함해서요 ― 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죽음만큼 삶에 대해서도 두려워한다는 걸 아십니까? 이런 진부한 생각이 두려운 것은 이른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그것을 늘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적어도 살아남기만 바라니까요.
남매를 재워주고 있고 먹여 살리기로 약속한 로베르 베시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점심 초대뿐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점심은 아주 즐거웠다. 엘레오노르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로베르가 데려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엘레오노르는 많은 이의 눈길을 끌었다. 로베르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두 남매가 어떻게 사는지 십오 년 전에 소문을 들었던 그는 세바스티앵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긴 했어도 그가 일하는 척할 수 있도록 돈을 쓸 날도 어쩌면 많지 않으리라 희망하며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벌써 머릿속으로는 약속을 피하기 위한 저녁 식사도 몇 번 계획했다. 동시에 향수에 젖어 십 년 전에는 세바스티앵과 함께 일한다면 미친 듯이 좋아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가 시늉하는 것만 봤어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예측 못할 일이 세바스티앵의 삶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십 년 전, 로베르가 아직 서른이었을 때,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동경하는 누군가와 그 위험을 함께할 준비가 말이다. 그러나 그 뒤로 그는 성공을 거두었고, 여러 가지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폐쇄적이고 가혹하기로 소문난 파리에서 그는 출세, 그러니까 시쳇말로 ‘자기 참호 파기’에 성공했다. 그는 바닷가재를 깨물어 먹으며 그 표현이 지독히도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럽게 판 그 ‘참호’가 혹시 무덤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로베르는 서글퍼졌다.
생각해보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모든 텍스트의 절대적인, 고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지어 논문이든, 이처럼 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