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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3812172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봄
제1장 _009 | 제2장 _039 | 제3장 _052 | 제4장 _058 | 제5장 _073
제2부 가을
제6장 _081 | 제7장 _090 | 제8장 _100
제3부 겨울
제9장 _105 | 제10장 _120 | 제11장 _123 | 제12장 _128 | 제13장 _134 | 제14장 _141 | 제15장 _146 | 제16장 _161 | 제17장 _166 | 제18장 _170 | 제19장 _196 | 제20장 _198 | 제21장 _202 | 제22장 _215 | 제23장 _249 | 제24장 _253 | 제25장 _275 | 제26장 _286
옮긴이 후기 _292
리뷰
책속에서
아바나의 새벽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부랑자들이 건물 벽에 기대 잠들어 있고 얼음 배달 차가 술집에 얼음을 배달하기 전 꼭두새벽에 우리는 부두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의 진주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광장에는 어느 거지가 홀로 깨어 분수대의 물을 마시고 있었다. 카페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을 때 세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왔군요.” 그가 말했다.
“못 해요. 마음 같아선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어젯밤에 말한 대로 이건 못 해.”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말만 해요, 얼마든지 줄 테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못 한다니까 그러네.”
다른 두 명도 건너와서 처량한 얼굴로 우두커니 섰다. 그들은 잘생긴 사내들이었고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두당 3000 주리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가 말했다.
“난처하게 이러지 마시오. 진짜 못 한다니까.”
“나중에 사정이 바뀌면 이게 횡재였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알아, 마음 같아선 나도 하고 싶어. 하지만 못 해.”
“왜 못 한다는 거요?”
“이 배는 내 밥벌이야. 이걸 잃으면 내 밥줄도 끊겨.”
“이 돈으로 다른 배를 사면 되잖아.”
“감옥에서 무슨 수로?”
그들은 내가 시간을 끌기 위해 괜히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당신 몫으로 3000달러가 떨어질 거요. 엄청난 거금이지. 일은 금방 끝날 거고.”
“이봐, 당신들 중에 누가 대장이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말할 줄 아는 건 절대 미국으로 실어 나르지 않아.”
“우리가 불어버릴 거다, 이 뜻이오?” 이제까지 잠자코만 있던 사내가 발끈하며 나섰다.
“팔은 어떻게 된 거야?” 변호사가 해리에게 물었다.
해리는 소매 단을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잘라버렸수.”
“당신이랑 누가 잘랐지?”
“나랑 의사 양반이 잘랐어.” 해리가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쭉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슬슬 적응하는 중이었다. “나는 붙들고 의사 양반이 잘랐어.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대가로 몸이 잘려야 한다면 말이야, 당신은 손이고 발이고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팔까지 자르게 된 거야?”
“작작 좀 해.”
“지금 내가 묻잖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은 어디 있었는지?”
“사람 괴롭히려거든 딴 데 가서 알아봐. 내가 어디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면서. 주둥이 닥치고 나 건드리지 마.”
“난 당신과 얘기하고 싶은데.”
“그럼 하든가.”
“여기에서 말고, 뒤에서.”
“당신이랑 말 섞기 싫어. 당신과 엮이면 좋을 게 없어. 재수가 없단 말이야.”
“당신한테 뭘 좀 가져왔어. 좋은 거.”
“배를 잠수함 기지에서 어떻게 빼내려고?”
“빼낼 수 있어.”
“어떻게 돌아올 거야?”
“궁리 중이야. 가기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
“돈 안 되는 일이면 난 빠질래.”
“이봐, 당신 주당 7달러 50센트 벌잖아. 점심 굶고 학교 다니는 아이가 셋이고. 당신한테는 굶주린 식구들이 딸렸고, 난 당신한테 돈 벌 기회를 주는 거야.”
“돈이 얼만지는 말 안 했잖아. 위험한 일인데 그만 한 대가는 받아야지.”
“요샌 아무리 위험한 일도 큰돈 못 벌어, 앨버트. 나 좀 봐. 한때는 한 철 내내 사람들을 데리고 낚시 다니면서 하루에 35달러씩 벌었어. 그런데 이젠 총에 맞고 한 팔과 배까지 잃었지, 배 값에 맞먹는 값비싼 술을 나르다가. 하지만 말이야, 내 아이들은 배를 곯는 일은 없을 거야. 난 애들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푼돈이나 받자고 하수구 파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거니까. 어차피 이젠 땅을 파지도 못하지만. 누가 법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굶주려야 한다는 법은 없어.”
“나도 임금에 반발하는 파업에 가담했었어.”
“결국 일에 복귀했잖아. 사람들은 당신들이 구호 정책에 반대해 파업하는 거라고 하더군. 하지만 당신이 언제 논 적 있었어? 누구한테도 구호금 달라고 한 적 없었잖아.”
“도무지 일감이 있어야 말이지. 어디에도 먹고살 길이 없어.”
“왜?”
“모르겠어.”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내 식솔들은 남들이 먹고사는 한 먹고살 거야. 놈들 속셈이 뭐냐면, 당신네 콩크를 여기서 쫓아내고 움막을 불태운 뒤 아파트를 지어 관광 촌을 만들려는 거야. 나는 그렇게 들었어. 놈들이 땅을 사들이고 있대.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리다 못해 다른 데로 떠나 더 굶주리게 될 때쯤 놈들이 들어와 관광객을 위한 명승지를 만들 거라는군.”
“과격분자처럼 말하네.”
“나 과격분자 아니야. 화가 난 것뿐이지. 오래전부터 화가 났어.”
“팔을 잃은 것도 한몫했겠지.”
“팔은 개뿔. 팔 하나 잃으면 잃는 거지 뭐. 팔 하나 잃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어. 사람한테는 팔이든 뭐든 두 개씩 있지만, 팔이든 뭐든 하나만 있어도 남자는 남자야. 개뿔 같은 소리.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아.” 잠시 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그거는 두 개야.”
그러고는 그는 시동을 걸고 말했다.
“이제 이 친구들을 보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