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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3815579
· 쪽수 : 31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또 그 아이를 보고 있구나.”
토란 튀김을 포크로 찍으며 엄마가 말했다.
“그러면 안 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정색했던 것을 후회하며 덧붙였다.
“예쁘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돼. 왠지 눈길이 가고 마는걸.”
엄마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말했다.
“바보 같으니. 왜 그런지 모르겠어?”
엄마는 샴페인을 물처럼 꿀꺽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나는 웃고 나서 단맛이 나는 푸성귀를 입에 넣었다. 이곳 요리는 하나같이 달아서 샴페인과 같이 흘려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아침 말을 타러 나갔다가 미미를 보았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 아이가 무척 어려 보였다는 것, 승마는 처음이어서 초보자용 말이 달린다고는 생각 못 하고 있더라는 것, 그리고 미미가 말을 타는 동안 내가 가방이며 선글라스며 엠디플레이어 등을 맡아주고 보호자처럼 서서 기다렸다는 것을. 실제로 나는 그 아이의 엄마라고 해도 충분할 나이다.
“슈코가 누구와 자든 난 슬퍼할 수 없어.”
나는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어느 누구와도 자지 않았어.”
나는 양팔을 벌린 채 고함을 지르며 두 발로 부엌 바닥을 쿵쿵 굴렀다.
“알아.”
남편은 힘없이 인정했다. 그 무렵 우리 사이에는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매일 울거나 소리쳤고, 목소리도 마음도 메마르고 금이 가 있었다.
“당신이 외간 여자와 자면 나는 슬프단 말이야.”
어리석게도 나는 설명하려고 했다. 비참한 듯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째서?”
냉담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리 와.”
나는 녹색과 핑크색이 섞인 격자무늬 모헤어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트는 우유에 젖어 얼룩져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슬프고 말고 할 것 하나 없어.”
그래도 슬퍼. 나는 재차 말했고 끼이 끼이 하고 쥐와 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 와인을 꽤 많이 마신 데다 흥분해서 소리친 탓에 머리도 멍했다.
“어째서?”
남편도 참을성 있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냉장고를 열고 다시 우유를 꺼낸다.
“내가 옆에서 지켜봐줄 테니 마셔봐.”
지금이라면 나도 안다. 그 슬픔은 나만의 것이다. 나 혼자 맞서야 하는 것이며 남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 밤 그에게 키스하려고 작정한 터였다. 가까이 다가가 아주 살짝만 입술을 맞댈 것. 물론 입술이 닿기 무섭게 뗀다. 아주 작은 장난. 그러고는 어린아이처럼 에헤헤 웃으면 된다. 초등학생 무렵, 남자아이들에게 많이 해보았다.
“왜 그래?”
‘다가가 아주 살짝만 입술을 맞댈 것’이란 게 도저히 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엄마한테 전화하는 게 좋을까.”
내가 말했다. 엄마한테는 저녁 때 이미 전화했다. 와타루도 전화를 바꿔 이제부터 저녁을 먹으러 갈 거라고 보고해주었다.
“당연하지.”
와타루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며 대답한다. 나는 와타루가 긴장을 풀었다는 것을 알았다. 위기가 지나가 안심했다는 것을.
“자기 전에 당연히 한 번 더 전화해야지.”
키스했다. 열린 차 문 너머로 재빨리. 안심한 와타루에게 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그 순간, 저절로 몸이 움직인 것이다.
“에헤헤.”
밤공기 속에서 꾸밈없는 목소리가 흘러넘치고, 나는 싱글벙글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