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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73816835
· 쪽수 : 36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당신, 알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면…… 당신이 나랑 사는 게 마치 당신이 평생 벌을 받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취급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도록 놔둬선 안 되는 거 아냐?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이 나를 변호해주는 걸 경험해보고 싶어…….” 나는 조금 전 마티아스가 내 어깨를 감쌌을 때의 그 느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게레온의 보기 드문 바보 같은 표정도. “당신은 왜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 펠릭스?”
희미한 불빛에도 펠릭스가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카티, 나는 당신과 게레온 두 사람이 맞붙을 때마다 당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었어. 반대로, 말솜씨에 있어선 당신이 그 친구보다 훨씬 월등하지. 늘 게레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나는 황당하기 짝이 없어 펠릭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게레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그 친구는 당신한테 맞설 만한 최소한의 센스조차 갖지를 못하는데, 당신은 그 친구의 말을 아주 출중한 실력으로 철저하게 반박하며 매번 그 친구를 멍청이처럼 서 있게 만들지.”
“그건……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난 게레온이 멍청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그러는 건 단지 나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야. 안 그러면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언제나 시작하는 건 게레온이라고! 그리고 무슨 그런 뚱딴지같은 논리가 다 있어?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내 편이 되어주는 거라고……. 당신이 나를 보호해주는 거…… 당신이 나에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내가 내일 저 주차장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펠릭스의 자전거를 치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만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지도, 또 내 전화번호를 물어볼 일도, 우리가 결혼할 일 역시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5년 뒤, 내가 그의 마음을 상심하게 하는 일은 아예 있을 수도 없을 거다.
일이 이렇게 간단한 것을. 펠릭스는 나 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고, 마티아스와의 일 때문에 고통받을 일도, 내 장례식장에서 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양심의 가책 없이 마티아스에게 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예수였다면, 세상의 종말에 관한 말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요! 불안은 정말 비생산적이잖아요. 불안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죠. 나는 항상 매사에 불안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충분히 사랑스럽지 못한 것에 대해, 훌륭하지 못한 것, 예쁘지 못한 것, 충분히 똑똑하지 못한 것에 관해서 말이죠. 하루 24시간 내내 불안에 떠는 것, 그게 어떨지 한번 상상해봐요. 하지만 나는 흠잡을 데 없이 사랑스러워요. 그리고 훌륭하고 예쁘고 충분히 똑똑하다고요!”
나는 마티아스의 시선을 따라 내 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나는 너무나 아름다운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탐날 정도로 아름다운걸.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애써 배를 집어넣지도 않고 벌거벗은 채 누군가의 앞에 서 있었다. 설사 내 배가 좀 나왔더라도, 집어넣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훌륭해요! 아니면, 마침내 불안을 거두어들인다면, 그 순간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예요. 이거 신기하지 않아요?”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와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래요, 정말 신기해요.” 그가 내 머리칼에 대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