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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73819935
· 쪽수 : 264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왜 세상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뭔가가 존재하는가.”
“이를테면 나비는 너와 다른 현실 속에 산단다. 나비는 사물을 너와 다르게 보지. 나비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지 않아. 그들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진짜 꽃만 존재하지. 반면 너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고 그 벽화가 너에게 현실을 감추지.”
“그런 걸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우리를 안심시켜주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주지.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고.”
“알겠어요. 하지만 아저씨, 나비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에요? 매사를 항상 나비와 연관시키잖아요.”
“나비가 나에게 도움이 되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커다란 책략과 눈길을 끄는 결정들에 좌우된다고 생각하지. 결혼을 한다거나 일을 그만둔다거나 파티를 연다거나 장모님이 돌아가신다거나. 하지만 진실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란다.”
엄청난 재앙과 커다란 고통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매우 드물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결정한단다. 매순간 조금씩, 아주 작고 무수한 붓질을 통해.”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수년 동안 무수히 활을 움직여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 수없이 축적된 결정들과 대수롭지 않은 행위들이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가벼운 그것들이 핵심이 되는 골조를 구성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단다.”
“그러면 행복과 고통은 누가 준비하나요?”
“조용한 밤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거야. 그들의 작고 빠른 움직임은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단다. 나는 그것을 ‘나비들의 음모’라고 부르지.”
주변은 온통 어둠이었다. 무수히 많은 태양들이 탄생하고 죽는 하늘, 끊임없이 도는 혹성들, 눈에 보이지 않는 회전목마들. 그 속 어디에 생명이 존재할까? 초반에? 아니면 후반기에? 바다는 차갑지 않았지만 나는 몸을 떨었다. 내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혹은 아주 조금밖에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거대한 미지에 젖어들었다.
학식이 많은 내 친구들은 우리의 귀와 눈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우리는 세상의 파편 하나를 받아들일 뿐이라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천문대에서 보낸 어느 추운 밤 동료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토론을 벌였던가? 그 토론의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해졌던가? 동료들은 매우 진부한 환상들을 받아들였다. 신기루, 그리고 수학적 역설까지. 숫자들은 무한하다. 하지만 나는 우주가 그렇게 터무니없이 크다는 사실이, 150억 광년이라는 숫자가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들은 구제불능이었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런 태도는 사람을 너무나 안심시킨 나머지 이성을 앗아간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하늘의 심연보다 깊고 어두운 불가해함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을 촌스러운 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