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드로잉 (앤드류 루미스의 성공적인 그림 그리기)
앤드류 루미스 | 광문각
18,000원 | 20230228 | 9788970931364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기꺼이 추천할 수 있는 인체 드로잉에 관한 좋은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래도록 기다려도 내가 원하는 수준의 책은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교범으로 삼을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지녀야 할 능력과 상관없이 실제 미술 업계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책을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점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내가 미술 업계에 첫발을 디뎠던 초창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작품을 팔아야만 생활할 수 있었기에 실용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미술 업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세상에는 그때의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미술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고, 이왕이면 더 잘 그리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당한 직업 화가로서 자신만의 예술혼을 뿜어내기를 바라며,
뜨거운 열정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독자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밟아 왔다. 여러분이 성공한 미술가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여 체득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전하려고 한다.
나는 이미 이루어진 훌륭한 작품들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자기 작품에 응용하는 실행력이 중요하다. 작품은 단순한 기술적 지식보다는 작업에 대한 정신적 접근에 더 큰 성공의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정신적인 접근을 강조한 책은 드물기 때문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독자 여러분이 단순히 그림에 관심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진정한 프로 미술가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펜과 연필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뜨거운 욕구를 지녔으며, 그 욕구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강한 실천력의 소유자라고 믿는다. 마음속에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 꿈틀대지 않는다면 재능은 별 의미가 없다. 또한,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술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를 정의해 보자.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목적을 부여하고 메시
지를 담아야 한다. 관람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 정신적인 접근법은 주제를 확실하게 결정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를 올바르게 표현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구별해야 하고, 작품 구석구석이 전체 목적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치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술가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그림에 나타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덜 중요한 부분은 약하게 처리하여 자연스럽게 차별화를 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의 얼굴 윤곽을 뚜렷하게 잡고 감정이나 동작에 생동감을 줄 수 있는 표현 수단을 부지런히 모색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관람객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미술가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닮게 그려서는 안 된다. 세계 미술 사조를 보면, 대상 그대로를 실물처럼 묘사한 세밀화나 사실화가 주목받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선명한 컬러 사진을 손쉽게 얻는 시대가 되면서 사실주의는 시나브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서 적절한 사실로, 성격화로, 감성적이거나 극적으로, 선택과 취향으로 작가의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비율로 따진다면, 10%는 ‘어떻게 그리는가’이고, 90%는 ‘무엇을 그리는가’이다.
독자 여러분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실물과 비슷한 형태로 스케치하고, 색깔과 명암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흡사하게 표현한다면, 사진의 흉내에 불과할 뿐 작품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단순화하거나 생략하는 등의 실험을 꾸준히 할 때 특색 있는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독자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
조하고 싶다. 그림은 작가 자신, 즉 작가의 퍼스낼리티, 작가의 개성이 우선이다. 그림은 작가의 부산물이라서 그림과 관련된 모든 부분은 작가의 일부분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지식, 경험, 관찰력, 취향, 취미, 사상이 모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작가의 정신적 수행은 모두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깨닫는 데 평생이 걸렸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는 이야기에 들어가기 대해 전에,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분명히 의식화하고 그것을 뇌리에 새겨 놓아야 한다. 그림의 대부분은 연필의 뾰족한 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정신을 통해 완성된다.
학창 시절에 나는 어딘가에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즉 약방의 처방전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한 것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책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공하기 위한 비법이란, 자신의 재능을 개선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부단히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워 자신에게 접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평범한 진리이다. 자기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고 관리해야 한다. 관리를 잘하려면 자신만의 엄격한 규율을 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훈련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개성
이야말로 어떠한 기술보다 중요하다. 예술은 사실 규명에 철저한 과학과는 달리 오로지 인간적인 요소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부터 나는 독자 여러분과 친교를 맺고 내가 오랜 세월을 보낸 미술 세계로 안내하면서 독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내어 주려 한다.
솔직히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풍부한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닥칠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기본적인 원칙과 자료를 제시할 생각이다. 다만 내 그림이 지닌 관점과 기술적 접근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은 이를 이해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바란다.
잘 팔리는 인물화는 좋은 그림임이 분명하다. 프로 미술가에게 ‘좋은 그림’이란 말은 초심자가 생
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좋은 그림이 되기 위해서는 관람자를 이해시키는 동시에 무언가에 호소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실물과 똑같은 비율에 그치지 않고 보다 이상적인 비율을 찾아 그려야 한다. 원근법을 구사할 때도 반드시 일정한 눈높이 또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해부학적인 면에서도 표면에 드러난 인체와 옷 속에 감추어진 인체는 일치해야 한다. 빛과 그림자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처리되어야 한다. 인물은 몸짓, 표정, 감정, 극적인 요소로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좋은 그림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으며, 뮤즈의 영감을 받아 순간적으로 그릴 수도 없다. 좋은 그림은 섬세한 외과 수술과도 같다.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알고, 숙달된 솜씨로 수술 도구를 올바르게 다루어야 성공적인 수술을 마칠 수 있다. 이것처럼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표현 수단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비로소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감성을 표현하게 된다.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프로 미술가의 그림도 성공작이 있고 실패작이 있다. 실패작은 개작하거나 버려야 하지만, 왜 실패했는지 밝히기 위해 비판적 검토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다수 미술가는 기본적인 부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작품은 기본이 탄탄한 것은 확실하지만, 실패작은 어딘가에 기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물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해부학적 검토와 같은 특정한 단면만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 좋은 그림에 필요한 모든 기본 요소를 탐구하여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미학적인 측면은 물론 시장성, 기술적인 부분, 상황에 따른 대처법 등 전형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책에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란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하다.
독자 여러분이 젊은 미술가로서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인정받기 전에는 배고픔의 설움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었을 때 수입은 약속되어 있다. 능력 향상에 비례하여 수입은 증대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실용미술 분야에서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인원은 적어진다. 광고 대행사, 잡지 발행인, 미술상 등은 언제나 신선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미술가를 찾고 있다. 평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시작할 때 평범하다. 대체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미술가들의 대다수도 처음에는 극히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불과했다.
실토하지만, 나는 미술학교에 입학한 지 2주 만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아직 능숙하지 않은 초보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가르치는 것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다.
표현에 개성이 있다는 것은 미술가들에게 큰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자기 작품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모방을 목적으로 모방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실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사용 하는 것은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의 목발에 머물러야 한다. 특정한 경향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이는 날씨와 같이 변화무쌍하게 뒤바뀐다. 하지만 해부학, 원근법, 명암은 절대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이를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복제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확실히 쌓아야만 한다. 물론 처음에는 개성적인 표현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다소간의 모방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의 축적 없이는 어떤 예술이나 기술의 발전도 있을 수 없다. 경험은 자신의 노력이나 관찰, 독학, 책 읽기 또는 옛 스승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가장 잘 온다. 이러한 경험은 함께 묶어 작업 지식을 형성하며 프로세스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지식이 향상되고 이 과정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새롭고 창조적인 사고란 보통 옛것의 변형에서 나온다.
나는 이 책에 제시하는 그림의 형상을 살아 있는 것으로 취급했고, 인체와 관련된 움직임의 종류를 몇 가지로 나누었다. 옷을 입은 인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누드를 그렸다. 부피와 무게를 지닌 형상에게 빛과 그림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양한 방향의 평면을 가진 형태가 그것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얼굴과 그 구조를 별도로 구분했다. 즉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인물화를 그리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해석, 유형, 포즈, 의상, 액세서리는 모두 독자 여러분의 것이다. 여러분이 그린 그림이 광고를 위해 그려지든,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려지든, 포스터나 달력을 위해 그려지든 간에 독자의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는 눈에 띄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테크닉은 젊은 미술가가 믿는 것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생하고 정서적인 특성, 즉 생생한 감정을 얼마나 이상적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독자 여러분이 기본을 숙달하고 있으면 의상이나 상황 설정 등에 관한 판단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복장도 인물이 서툴러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구성이 확실하지 않은 얼굴에는 표정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채색을 잘하려면 빛이나 색에 관련된 지식을 쌓아야 하며, 인물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근법을 이해해야 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일상 속에서 주제를 찾고 이상적으로 미화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산꼭대기에 도착할 때까지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도달하고서는 목적지까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모델을 고용해서 그렸지만, 일반적인 젊은 예술가의 수입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 그림에서 선과 톤을 흉내 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델이 여러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 그림을 연구하면 결국 더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 옆에 스케치북을 놓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연필을 움직여 이미지가 떠오르는 즉시 스케치를 해보라. 책에 실린 인물을 상상하는 대로 변형하여 다양한 움직임을 그려보면 좋다. 학교나 다른 곳에서 실제 모델을 보면서 그릴 수 있는 경우 여기에 있는 기본 사항을 최대한 활용하여 반드시 그렇게 하라. 사진을 찍을 수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경우 사진에서 그림을 그리는 기술을 시도하고,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려 넣으면 된다.
밝은 색부터 어두운 색까지 다양한 범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연필 사용에 익숙해져야 한다. 명암이 단조로운 그림은 상업적 가치가 없다. 펜과 잉크로 전환하는 것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펜은 약간 부드러운 것을 사용해야 하며, 선을 그을 때는 문자 그대로 긋는 것이지 결코 종이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종이에 걸려서 잉크가 튈 염려가 있다. 목탄도 공부를 위해 좋은 도구이며, 큰 도화지나 레이아웃 용지를 사용하면 된다.
이 책을 독자 여러분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