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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88932038209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1-02-01
책 소개
목차
2014 미발간 원고_검은 노래 Czarna Piosenka
좀더 많은 걸 위해
어린이 십자군
단어를 찾아서
평화
음악가 야넥
9월에 관한 기억
1월에 관한 기억
이름 없는 병사의 키스
서방으로 보내는 편지
시에게 보내는 헌사
인생의 줄
위령의 날
정상(頂上)
방랑
미소에 대하여
쫓는 자들과 쫓기는 자들에 관해
돌아온 회한
유대인 수송
전쟁의 아이들
익살스러운 에로 시
검은 노래
현대의 발라드
1954 나에게 던진 질문 Pytanie zadawane sobie
사랑에 빠진 이들
1957 예티를 향한 부름 Wołanie do Yeti
하니아
기념
장례식 1
브뤼겔의 두 마리 원숭이
한여름 밤의 꿈
세상을 고찰하다
1962 소금 Sól
가르침
나머지
콜로라투라
시 낭송의 밤
묘비명
코미디의 서막
몽타주
1967 애물단지 Sto pociech
기억이 마침내
카산드라를 위한 독백
비잔틴의 모자이크
토마스 만
움직임
1972 만일의 경우 Wszelki wypadek
고인들의 편지
양로원에서
부활한 자의 산책
군중의 사진
어린이와의 인터뷰
확신
고전(古典)
1976 거대한 숫자 Wielka liczba
늙은 거북의 꿈
늙은 성악가
은신처
사과나무
1986 다리 위의 사람들 Ludzie na moście
옷
위대한 사람의 집
백주 대낮에
1993 끝과 시작 Koniec i początek
비운의 계산서
2002 순간 Chwila
플라톤, 그러니까 왜
공원에서
어떤 사람들
무도회
메모
2005 콜론 Dwukropek
교통사고
사건
위안
아트로포스와의 인터뷰
미로
부주의
옮긴이 해설 어느 위대한 시인의 수줍은 첫걸음
작가 연보
리뷰
책속에서
그렇게 총알이 몸을 관통하고 나니
인간의 모든 것이 내게는 낯설기만 하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뜨거운 돌풍과도 같은 그 시간을
나는 지나고 있다. 투쟁의 희열은 나를 배제했다.
희열을 위한 투쟁, 산산이 부서진 문(門)에 관한 꿈이
당신들과 마주하고 있으니. 동지들이여, 차렷!
시골길, 백발(白髮)의 그리움,
흐느끼는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어머니는 편지 두 통을 연거푸 부치고,
세 통, 그리고 또 네 통째 편지를 보내리라.
공중을 떠돌다 지쳐버린 연처럼
저 높은 곳과의 간격이 줄어들기 전에
나는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세상은 크니까, 너무도 거대하니까.
시인들이여, 주인공의 죽음에 통곡하는
이 묘비명은 잘못되었다.
그 병사는 당신들의 시가 될 수 있었다,
낯선 이의 죽음에 우울해하는 모습으로.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들은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어제의 손길이 여인들에게
믿음직한 농담처럼 키스를 보낸 그 순간에.
―「이름 없는 병사의 키스Pocałnek nieznanego zołnierza」
회한을 맛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나뭇잎에 묻은 축축한 얼룩을 털어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잎새가 훨씬 아름답고 가벼워지니까.
싸우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그저 미약한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해,
바람으로부터 그 흔들림을 막아주기 위해서다.
공간은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전나무와 과꽃 장식으로
보기 싫은 무덤을 덮어버릴 테니까.
그 순간 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 위로 공포가 아니라 적막이 내려앉을 테니.
그것은 수많은 시도가 깃든 적막일 테니.
여기서 시(詩)를 기다린 건 아니다;
내가 온 건
찾아내고, 낚아채고, 움켜쥐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다.
―「위령의 날Zaduszki」
질질 끌며 연주하는 색소포니스트, 어릿광대 색소포니스트에겐
아무 말도 필요치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기에.
미래 - 누군가가 예언하겠지. 과거에 누군가가 그랬듯이.
눈을 껌뻑이며 생각을 떨쳐버리고, 검은 노래를 연주한다.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춤을 춘다. 춤을 춘다. 갑자기 누군가가 쓰러진다.
장단에 맞춰 머리로 바닥을 치면서. 모두가 리듬 속에서 그를 지나친다.
그의 눈엔 춤추는 사람들의 새하얀 무릎이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인파를 뚫고, 기묘한 빛깔의 어둠 속에서, 여명이 창백하게 눈꺼풀을 뜬다.
우리 법석 떨지 말자. 그는 살아 있으니. 그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거나
관자놀이에 묻은 피는 립스틱 자국일 수도 있잖은가? 이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졌을 뿐. 혼자 넘어졌으니, 혼자 일어서리라,
하물며 저 끔찍한 전쟁통에서도 살아남았거늘. 사람들이 밀폐된 달콤함 속에서 춤을 춘다.
환풍기 바람에 뒤섞여버린 온기와 냉기,
색소폰 선율이 분홍빛 등불을 향해 강아지처럼 울부짖는다.
―「검은 노래Czarna piosen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