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88970908700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1-10-10
책 소개
목차
추천사 - 현실과 역사가 만나는 예리한 에세이들
제1부 거인들의 시대
지인(至人) / 안목 / 흘러간 거인들 / 에피소드
은퇴 / 성인과 등신 사이 / 눈물 / 원점 / 침략과 해방 사이
할복자살 / 구두쇠 / 소부와 대부 / 마리아 / 중국 / 입
제2부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 / 황사 / 아첨 / 철부지 / 소음 / 알 수 없는 일
안면도 / 어느 영국 학생 / 유-지신사 / 세상 / 가마와 안경 /
아이론에 대하여 / 상투에 대하여 / 한자 문화권 / 한글 전용
제3부 격랑의 시대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제하 30년대의 어느 날 새벽,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이다. 도산 선생을 비롯하여 동지들을 조사한 끝에 신문조서를 마무리 짓는 장면이었다. 지금처럼 구류 만기라는 것이 없는 시절로 사상범으로 몰리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유치장에 가둬두고 갖은 고문을 다 가하던 때였다.
장기간에 걸친 고초에 지친 피의자들을 한군데 끌어다 놓고 마지막 확인 작업을 하느라고, 경찰들이 밤을 새워가며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넋이 나간 듯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도산 선생이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본 사람들의 저런 정심을 배워야 하는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렇게도 참담한 상처를 입힌 상대를 이토록 사심 없는 심경, 평상심(平常心)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다.
기미독립운동의 33인의 한 사람인 이승훈 선생은 원해 무역으로 큰 재산을 이룬 사람이었다. 도산 선생의 권유로 오산학교를 세운 것도 이 분이었다. 일단 결심하자 선두에 나서 부지를 사들이고 건축을 독려하는 등 밤낮을 잊고 일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 건물에 이엉을 올리다 보니 기와가 모자랐다.
자금은 탕진되었고 수중에는 기와를 살 만한 돈이 없었다. 현장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승훈 선생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기 집을 가리켰다.
“자네들, 저 기와를 벗겨다 잇지.”
인부들은 머뭇거리다 독촉에 못 이겨 그 집 기와를 벗겨다 잇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리는 바람에 벗기는 일은 도중에 중지되었으나 그 후 오래도록 선생의 자택 지붕은 반은 기와, 반은 짚을 이은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장자(莊子)는 지인(至人: 인간으로서 극치에 달한 사람)은 자기가 없다고 하였다(至人無己). 도산 선생이나 이승훈 선생 같은 분이야말로 지인일 것이다.
어쩐지 거인들의 시대는 가고 차츰 인물들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도 시대의 흐름일까.
― 1장. <거인들의 시대> 중에서



















